한정혜는 뭔가 진짜 신기가 있었나보네요. 신효선은 그런 아이를 착취했고.
*
― 여기야?
김선호와 정주현은 평탄읍 갈내면에 위치한 신효선의 이전 거주지를 방문했다.
― 어? 여기는 갈매리하고 가까운 곳 아냐? 저기는 당시 학교 당직 근무자 서호인 집인데. 김선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그러네요. 가깝네. 아. 서호인은 뭐라 합니까?
― 특별한 얘기는 없었어. 경찰에 진술하지 않은 이야기는 그 홍삼음료 이야기였고. 아무래도 윤영근을 의심하는 것이니까. 서호인은 한정혜 사건 이후 학교 일을 그만둔 모양이더라고. 사건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는다고 했고.
― 홍삼음료 얘기는 뭐에요?
― 당시에 이상하게 졸렸다는 거야. 윤영근 선생이 준 음료수를 마셨다는 것 같았어. 순찰을 하고 돌아와서 당직실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골아 떨어졌다는 것 같은데.
― 당시에 지성우형사가 조사를 해서.
―아. 여러 비리 때문에 그만뒀다고 하는 그 사람이군요. 흐음.. 뭔가 냄새가 나는데요.
― 김선호와 정주현이 탄 업무용 소나타는 작은 간이 버스 정류소에서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10여분을 달렸다. 추수시기를 놓쳐 처리하지 못한 밭작물들이 서리에 맞아 엉켜 있었다. 좁은 시멘트 길을 조심스레 운전해 마을을 지나 낮은 고개를 올라갔다. 김선호가 창문을 내리자 흐릿한 바다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바람이 이쪽으로 부는 모양이었다.
― 주소를 보니 맞는 듯 한데요.
신효선 거주하던 집은 길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에 잡초가 무성했다. 버려진 농가주택과 같은 집이었다.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집주인이 숨진 후 방치된 모양이었다. 김선호는 절반정도 기울어진 붉은 대문을 살짝 밀었다. 끼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은 열렸다. 대문 옆 담벽은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져 원래 형체를 잘 모를 지경이었다.. 대문과 담장 틈새에 시커먼 먼지가 늘어 붙었다. 둘은 조심스레 몸을 옆으로 돌려 철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말라붙은 누런 잡풀이 마당을 뒤덮었다. 툇마루에는 하얀 먼지가 쌓여 있었다. 고양이들이 돌아다녔는지 먼지 위에 동물의 발자국들이 보였다. 얼핏 보면 눈이 내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단층구조의 낡은 붉은 기와가 덮힌 오래된 시골의 집이었다. 마당 한 가운데에 녹슨 구형펌프가 눈에 들어왔다. 뒤편에 토끼와 닭을 기른 듯 작은 철망으로 만들어진 사육공간이 있었다. 케이지 한 가운데에 닭털들이 엉켜 뭉쳐 있는 것이 보였다. 다고 남은 양초와 굿에 사용했던 여러 용품들 흔적이 눈에 띄었다. 정주현은 방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낡은 벽지는 색이 바래 절반정도 뜯어져 있었고 햇빛에 누렇게 변색됐다. 방 내부에는 붉은 핏자국의 흔적처럼 보이는 얼룩도 보였다. 제단 같은 것으로 활용되는 듯 싶었다.
― 반장님. 정주현이 다급하게 불렀다.
― 여기 좀 보세요. 부적을 붙인 흔적들이 낡아 있었다. 제사용품들도 녹이 슬고 부서져 널 부러져 있었다. 오래된 깃털도 보였다. 사람의 피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 인적이 끊긴지 꾀 된 것 같아. 무속에 쓰이는 용품들이 보이는 것 보면 신효선은 여기서 거주를 한 모양이야. 굿을 했나? 이후에 반석동으로 이사를 한 것 같고. 무당집으로 이곳을 운영한 것 같기도 한데. 나가서 근처 사람들에게 물어보자고. 둘은 마을로 향했다. 밭을 메고 있는 할머니 한명이 김선호 일행을 보고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김선호는 차에서 내려 신분증을 꺼냈다.
― 어르신 근처에서 오래 사셨나요?
― 오래 살았지. 그녀는 신분증을 살펴보았다. 경찰이 웬일이랴? 누구를 찾소?
― 할머니 저기 농가주택은 비어 있는데 저기 살던 사람이 누군지 아시나요?
― 저기?....... 아 저 신령집을 말하는 거유?
― 신령집?
― 저기 오래전에 무당이 살았어........ 원래 주인이 있었는데 병원에서 죽고 무당이 그 집에 살았지. 집주인 아들은 서울에 있고. 빈집이라 가치도 없고 하니 상관도 안 하더라고. 그 무당이 아주 용했지. 형주항에서 풍어제 이후에 굿을 하잖아. 거기서도 굿을 한 모양이야. 당시 몇 년간 아주 난리가 났었어. 그때.
― 그게 언제인데요? 난리요? 무슨 일인데요?
― 오래됐지. 벌써 십년 아니 십년이 뭐야. 그때가 언제였어. 벌써 이십년은 된 것 같은데.
― 그때 한 무당이 저기서 사당을 차려서 점을 봐주고 굿을 했는데. 그 애가 정말이지 용했어. 아예 다 맞추더라고 사람들 사연을. 그 뭐시냐. 어린애가 어찌 그리 신통하던지 신기를 가지고 태어났나 벼. 다들 용허다고 난리도 아니었지.
― 어린애요? 김선호가 물었다. 무당이 점을 보는 게 아니고요?
― 아. 그 무당은 엄마 같은 사람이었는데. 좀 이상하더라고. 오히려 애가 뭔가를 얘기하면 그 엄마가 전달해 준다 뭐 그런 느낌이었고. 애가 신기가 좋다. 그래서 다 그거 때문에 소문 듣고 전국에서 왔어. 친엄마 느낌은 아니고 관계가 좀.... 암튼 관광버스까지 대절하고. 마을에서도 너무 사람이 많이 와서 시끄럽다고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니까.
― 그 정도였습니까? 이후는요?
― 글쎄 그렇게 갑자기 떠들썩하더니 어느 순간에 갑자기 없어지더라고 얘기를 들으니 형주시내 쪽으로 나간다고 하던데. 시내에 나가서 무당집을 차렸는지는 모르겠어.
― 자세한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 글쎄. 여기 오래전에 집을 소개해고 마을 일을 보던 사람이 한민수 이장이었던가 그랬는데 요양원에 있다가 저세상으로 떠났지. 한 오년 됐나?
―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노인은 그 말을 마치고 밭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어떻게 생각하세요?
― 몇몇 사람한데 더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기도 한데. 한번 돌아보자고. 둘은 몇 사람을 더 만나 탐문을 했다. 크게 다른 부분은 없었다. 오래전 신효선이 한 아이를 데리고 형주에 굿이 있을 때 이곳에 머물렀고 이후에 신당을 차려 점집을 운영하고 가끔 굿을 하고 부적을 써줬다는 것이다. 용하다는 소문이나 사람들이 모이다 갑작스레 사라졌다는 애기였다.
― 대체 무슨 일 이었을까? 신효선이 살던 반석동의 그 주택가로 이들은 움직였다. 반석동은 적막했다. 신효선이 사망한 채 발견된 주택에는 폴리스 라인이 설치돼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밤이 되자 동네에 적막이 감돌았다.
― 한정혜는 뭔가 진짜 신기가 있었나보네요. 신효선은 그런 아이를 착취했고. 돈벌이를 한 것이고. 드러난 것 외에 다른 것 도 있을 거예요. 이런 경우는...... 정주현은 집 근처를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 음... 일단 돌아가자. 둘은 차를 돌렸다. 대문앞 담벽으로 붉은 감이 탐스럽게 익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김선호는 염형사한테 전화를 걸어 신효선과 관련된 재산변동사항과 채무관계 등 모든 개인정보를 더 모아 달라고 전화를 했다.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차가 막히기 전에 서둘러 경찰서로 향했다. 김선호는 서에 도착해 염형사가 건 내 준 자료를 보고 있었다. 신효선이 반석동으로 이사를 온 것은 9년 전이었고 반석동의 작은 단독주택을 매매했다. 소유권이 신효선으로 이전된 상태였고 추가로 근처의 지분도 취득했다.
― 당시 신효선이 어떻게 자금을 마련해서 반석동의 주택과 토지지분을 인수할 수 있었지? 여기는 학교 이전부지와 관련이 있는 지역 아냐? 이 지역으로 형주고가 이전하고 지역개발과 관련된 소문만 무성한 곳인데.
―제 기억으로는 형주 중학교 이전이 결정되기 전에 황호민 의원의 건강이 갑작스레 안 좋다는 뉴스가 있었죠. 그 때 한번 출마를 포기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갑작스레 좋아지긴 했다 네요. 그리고 당선이 됐죠. 선배님은 그 때 여기에 안계셨죠?
― 그렇지.
― 아들이 황정우잖아요. 황호민의 인맥으로 황정우는 학교 그만두고 방송프로그램으로 띄워줬을 거예요. 기회를 잡은 거죠. 검정고시로 대학을 들어갔다 하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으니 학벌도 되고. 학교에서 근무도 했고. 교육업체인가 뭔가 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익활동 비슷한 것을 했어요.
― 아. 정치인 황정우라...... 그렇게 연결되는 것인가. 그럼 신효선은 그 집안과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지 않아? 일을 도와줬다든가. 뭐 그런 것.
― 뭔가 연결되는 지점이 나오는 게 있을까요?
― 한정혜가 사망하고 여러 명의 금융 재산이 늘고 재개발 지분취득이 이뤄지고 있어. 우연일까? 무슨 이유가 있을까? 김선호는 중얼거렸다.
― 황호민 의원쪽을 한번 파보자. 오래전 일이지만 신효선과 관련돼 있는 게 있는지. 그리고 신효선과 관련된 인물들이나 가장 최근에 연락한 사람들 확인 다시 해보고.
― 반장님 국민의 당 대표 경선 이후에 곧 선거철로 접어드는데 황호민 내사 들어간다고 얘기라도 나오면 뭐라고 할 수 있어요. 황호민 잘못 건드리면.... 말도 마세요.
― 선거는 일 년도 더 남았어. 얘기 안 들어가게 하면 되지. 합동수사본부하고 2반은 지금 여죄 캐내느라 정신없을 텐데. 우리는 팀장한테 얘기도 했으니 이걸 더 파봐야지. 그림이 그려져야 다음단계가 나올 수 있어. 강수연 사건 조사는 어떻게 되는 거야?
― 실족사로 처리되는 모양인데요.
― 대구의 그 험한 바위산은 왜 올라 간 거야? 주말에 등산이라도 갔대?
― 그쪽 형사랑 통화해 봤는데 등산동호회를 했고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대요. 동호회에 열심히 였다는데. 그날 기분이 좋아서 남편한테 우리 상황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고 나갔대요. 그러다 실족사가 발생한 거죠. 강수연이 몇 주 전부터 얼굴표정이 좋지 않았대요. 최영은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더욱 뭔가 좇기는 것 같고 그런 느낌이 있었다고는 해요. 그러다 그날 한층 얼굴이 밝아져서 나갔다가 변을 당했다고 남편도 황망한가 봐요.
― 휴. 김선호가 한숨을 쉬었다. 나올 듯 나올 듯 하면서도 뭔가가 안 나오네.
― 당시 학교 선생님들 애기는 어때? 윤영근은 오래전에 만나보셨죠?
― 응. 비협조적인 인물이었지. 아예 관심이 없었어. 틱틱거리기만 하고.
― 윤영근은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고 하네요. 윤영근은 학교에 호의적인 인물이니. 그때 학교와 소송한 사람중 윤영근 선생도 있었는데 한순간 돌아섰어요. 뭐 약점이 잡혔나? 그 삼악산 수련회 오주희 사건은 그냥 유야무야 됐나 봐요. 그 사건도 지성우가 담당했으니까.
― 학교 화재 있던 날 최초 신고자도 윤영근이지?
― 네. 전기합선으로 밝혀졌고요. 온열기기 과부하로. 그 시간에 잊은 물건이 있다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음...
― 아. 그리고 황호민의 보좌관 중에 실종된 사람이 있어요. 누군데? 송민지라고 실종된 지 9년째인데 사건 해결이 안 된 것 같아요. 황호민 의원의 보좌관출신이에요. 주변에서는 황호민과 사실혼 관계였다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보좌관쪽 집안에서 연락이 안 된다고 실종신고가 있었죠. 황호민 의원도 잘 모른데요. 어떻게 된 일인지. 그 집에서 나와서 그냥 증발하듯 사라졌어요.
― 뭐? 그래서?
― 아직 실종중인 상태죠 뭐. 성인이니 지금까지 연락도 안 되고 생활반응도 없으면. 뻔한거죠.
― 으음... 김선호는 거대한 벽화의 일부분을 마주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답답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