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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페르소나 논 그라타 3부 -2-

자신을 가장 흥분되고 스릴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by proofs

15

민형수는 반석동 일대의 땅을 가지고 있었지만 반석동 재개발추진위원회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민형수의 토지는 지역 일대의 핵심위치였다. 그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재개발 추진도 쉽지 않을 수 있다. 한민수는 민형수에게 이제 지분을 좀 넘기고 편히 살라고 여러 번 그를 설득했다. 수산물 작업을 끝내고 귀가한 민형수에게 한민수는 집에 들러 지분매각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 민사장 이제는 좀 결정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제 값을 받고 넘겨 이제는.... 지역도 살아야 하잖아. 황의원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 아, 정말. 이장님 오늘도 오셨네요. 요새 무슨 바람이 불고 있답니까? 뭐 하러 이렇게 뻔질 나게 드나 드신 데요. 반석동 땅은 조상대대로 물려 받은 것이라 처분하는 게 쉽지 않아요. 민형수는 작업복을 마당의 빨랫줄에 걸고 대야에 물을 받아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 알고 있네. 하지만 말야. 기회라는 게 그렇게 쉽고 오는 것이 아니야. 만약 자네가 기회를 놓친다면 도시정비법이나 도시 개발법으로 강제수용 될 수도 있어. 그럼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헐값에 지분을 넘겨야 해. 그럼 제 값을 못 치르기에 하는 얘기지.

― 이장님도 참. 엄연히 주인이 있는 게 그게 맘대로 됩니까? 민형수가 벗어 놓은 옷을 탁탁 털어냈다. 햇빛에 새 햐얀 먼지가 떨려 주변으로 떨어졌다.

― 답답한 친구로구만. 아니 그렇게 얘기해도 말을 못 알아 듣는 가. 그래서 사업은 어찌 해 나갈 것인가.

― 형주가 어떤 곳입니까? 여기저기 황의원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겠죠. 하지만 그곳은 주택지구입니다. 그 법에 해당이 되지 않은 구역이에요. 재개발 추진위도 도시개발하고 엮어야 하는데 다들 소유권도 복잡하고 해서 안 되는 것이죠. 이만 돌아가세요. 그는 소진이를 불렀다.

― 황의원과의 관계를 봐서도 자네도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한문수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표정이었다.

― 황의원님과는 이미 충분히 얘기를 했습니다. 그분도 저도 서로 약속을 했고 이미 끝난 얘기입니다. 서로 더 이상 얼굴 붉힐 일이 이제는 없었으면 합니다. 소진아. 와서 놀던 것 정리해야지. 마루에 저렇게 물건을 두먼 안 된다고 했지? 그 말을 멈추고 민형수는 몸을 돌려 마루로 올라갔다.


― 그거 참 고집도......

한민수는 입맛을 다시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몸을 돌려 대문으로 향했다. 그는 차를 몰아 신효선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준비는 거의 마무리가 되었고 내일 황정우를 대신해 한정혜에게 신내림을 할 예정이었다. 아무래도 소문이 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얼마 전에 돌아왔는지 신효선은 마당에 짐을 풀어 놓고 있었다. 굿에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하는 듯 보였고 집안을 꾸미고 있었다. 내일 오전 중 굿을 도와주기로 한 악사와 인원들이 올 것이다. 오후에는 황정우가 도착한다. 한민수는 황의원과의 인연도 있는지라 이번 일이 잘 끝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신효선에게 일러두었다. 하지만 의문도 있었다. 황정우에게도 황호민과 비슷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인가. 이 집안의 내력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한민수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문을 열었다. 그때 한 여자아이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동네 일대를 돌아다녔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아 법당의 신딸이라고 했던....... 이름이 뭐라고 했지. 그는 애써 모른척 정혜에게 다가갔다.

― 한정혜요. 정혜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 어디 다녀오니? 한민수는 시선을 낮춰 정혜를 보면서 물었다.

― 소진이를 보고 왔어요. 지난번에 인사도 못하고 헤어져서 너무 아쉬웠거든요.

― 그래? 둘이 친한가 보구나.

― 네 같이 책도 읽고 바닷가에서 놀고 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정혜는 이전보다 한층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그는 한정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뭔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해 웅얼거렸다.

― 저기 정혜야...

― 네? 왜요?

― 아니다... 엄마를 많이 닮았구나.

― 네? 정혜는 뜬금없는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한민수의 휴대폰 전화가 울렸다. 그는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 다음에 보자꾸나. 그는 말을 마치고 통화를 하며 차로 향했다.

― 네 의원님.... 지금 다 준비돼가고 있습니다.......음..... 알겠습니다. 일단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한민수는 심각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차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한정혜는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차량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다. 정혜가 대문으로 들어와 문을 열자 십 여명의 사람들은 곧 있을 굿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정혜는 이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신엄마의 말대로 하면 며칠간 앓아 누워야 한다. 그녀는 온몸에서 여러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그녀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신효선은 민소진과 같이 놀 수 있게 해 준다고 아이를 달랬다. 아이의 평온한 상태가 굿을 하고 공수를 듣는 데는 더 효과적이었다.


*

― 정우야. 일어나 너무 오래만 누워있으면 안 좋아.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였다. 자신에게 잘해주는 편이라 황정우는 가급적 그녀의 말이라면 잘 따라주었다. 아버지가 없을 때 밑반찬을 만들어 주었고 집안일을 돕고 자신을 챙겨주었다. 집에만 머문지 일주일째였다. 그녀는 민형수와 한민수와도 안면이 었었다. 그녀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민형수와 잘 지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민형수는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였지만 자신에게는 아들이 없다며 여러 호의를 보여준 사람이다.


― 오늘 한 번도 밖에 안 나갔지? 바람 좀 쐬야 해. 바닷가 한번 갔다 와. 그리고 이것은 민형수 아저씨한테 갔다 주고. 밑반찬이야. 내가 통화는 했어. 너 한테 들러서 보낸다고. 그녀는 얼마 전 민형수가 부인과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 네 조금 움직여 볼게요. 그게 나을 것 같아요.

황정우는 바람도 쐴 겸 오랜만에 밖에 나갈 생각을 해 보았다. 쇼핑백에 무겁지 않게 포장된 반찬들이 담겨 있었다. 집 밖으로 나가 큰 길가를 걸어 버스를 탔다. 반석동을 통과해 갈매리 쪽으로 움직였다. 일주일 전 굿을 한 곳 근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자신 옆에 있었던 작은 여자 아이의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악몽을 반복해서 꿨다. 굿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그저 당분간은 아버지의 말을 듣는 척 할 뿐이었다. 그런 미신을 믿는 아버지라니. 집안에 그런 얘기들이 돌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좀 이상한 기분이들었다. 특히 그 기묘한 여자아이가 이상하게 눈에 밟혔다. 설명하기가 힘든 어떤 정체모를 기운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냥 기분 탓이려니 생각했다.


갈매리 부근에서 내렸다. 오후에 먹은 약기운 때문인지 머릿속이 쿵쿵대며 울렸다. 나른함과 졸림 정신과 약의 특징이다. 생각해 보니 밤에 먹어야 할 약을 잘못 먹은 것 같기도 했다. 기분 탓인지도 몰랐지만 굿을 한 이후 잦은 머리 통증과 울림은 좀 줄어든 느낌이 들기는 했다. 정신을 집중하자 기억이 떠올랐다. 작은 여자 아이가 자신과 함께 앉아 있었고 무당이 소리를 지르며 무엇인가 말을 하던 그날이었다. 저 멀리 그 집이 보였다. 기억이 났다. 무당이 굿을 하던 집에서 한참을 내려가야 민형수 아저씨의 공장이었다. 버스에서 너무 빨리 내린 것이다.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다음 버스를 기다릴 수 없어 걷기로 했다.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했지만 40분이상이 걸렸다. 낡은 농공단지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간에 거대한 억새밭이 보였다. 다 온 것 같았다. 갈대밭을 가로질러 중간쯤 걷다가 황정우는 갑작스레 어지러움이 느껴졌고 졸음이 쏟아졌다. 의식이 흐려져 제대로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마치 눈꺼풀을 밑에서 당기는 것 같았다. 갈대 주위의 바위에 잠시 걸터 앉았다. 민형수의 공장이 이 근처인 것은 분명했다. 간판을 확인해야 한다. 쓰러지면 당장 잠에 빠질 것 같았다. 꾸벅꾸벅 졸면서 걸음을 옮겼다. 주머니를 뒤졌다. 전화기를 놓고 왔다. 제길.


다시 둑길을 따라 걸었다. 거대한 질량의 바위덩어리로 의식을 내리누르는 것 같은 졸음이 다시 쏟아졌다. 수산물 가공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공장 주변은 잡풀이 무성했고 슬레이트 지붕은 낡아 있었다. 기억을 더듬었다. 여기가 맞는 듯 했다. 낡은 철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와 생산물품 옆에 놓인 의자와 낡은 소파쪽으로 몸을 옮겼다. 최근 공장 설비를 옮긴 것인지 생산라인이 있던 흔적이 눈에 띄었고 생선을 담은 목재와 낡은 파레트가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수산물을 가공 M&H푸드라는 포장지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폐비닐을 비롯한 잡다한 쓰레기 더미가 곳곳에 놓였다. 물건을 지게차로 옮기는 작업이 최근까지 이어졌는지 수분을 머금은 바닥에 타이어자국이 보였다. 공장직원이 사용하는 휴게소 구석의 낡은 소파에 몸을 누이자마자 곧 잠에 빠졌다. 정신을 차리자 한밤중이 돼 있었다. 황정우는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에 든 쇼핑백은 공장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없다.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졸음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초겨울 한기가 온몸에 들러붙었다. 소리는 선명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남자 두 명과 여자 한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높이며 상대를 비난하는 듯 했다.


― 무슨 말이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어쩌라는 거야. 대체.

민형수는 붉은 모자를 쓴 사람과 소리를 높여 말다툼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붉은 색 모자를 쓴 남자가 소리쳤다. 민형수는 한민수를 대신해 아버지의 일을 도와 준적이 있었다. 한민수가 병으로 더 이상 일이 힘들다고 했다. 당분간 일할 사람을 구해달라고 해 민형수가 아버지의 일을 맡아 처리한 것이다. 아버지는 민형수를 자신에게 소개하며 앞으로 자신의 일을 도와줄 사람이라고 인사를 하라고 했다. 가끔 그가 운영하는 이곳 공장에 와 본적도 있었다. 이후 민형수는 한민수를 대신해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자신의 기억에 그는 과묵한 사내였다. 무뚝뚝한 면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둘의 몸싸움이 거칠어지자 옆에 있던 여자는 이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조용히 말해. 그녀는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 듣기는 누가 듣는다고 씨발. 그래 여기 누가 있다고. 네년도 결국 시선을 돌리려고 하는 것 같은데 어림없어. 몇 번 더 이야기를 주고 받더니 둘은 드잡이를 시작했다. 모자를 쓴 사내가 민형수의 멱살을 잡았다.

―내가 그것 받으려고 황호민의 여편네를 죽게 만든 것일 줄 알아? 사내가 소리쳤다. 감정이 격해 졌는지 둘은 바닥을 구르며 싸움을 벌였다. 삼년 전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황정우는 그날을 떠올렸다. 사고를 낸 트럭운전자는 과실치사로 2년형을 선고 받았다. 예상보다 낮은 형량이 나왔다고 수군 거렸던 그 사건이었다.

― 여러 번 전화했는데 네놈은 전화를 안 받고 나를 무시해? 그 여편네는 황호민의 마누라였어. 나한테 그런 일을 시키고 네놈은 얼마를 처 먹 은거야? 비율정산을 다시 해야지. 내가 다 불어버릴 수도 있어.

― 한민수한테 가서 얘기해. 나도 솔직히 그런 일인 줄을 몰랐어. 너한테도 얘기 했잖아. 겁만 주고 당분간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고. 어머니의 죽음이 사고가 아니라고? 고의적인 것이라고? 황정우는 분명 그렇게 알고 있었다. 브레이크 파열로 트럭이 교차로에서 정지하지 못해 과실치사로 사망한 것이다. 분명 그게 원인이라고 했다. 붉은 모자를 쓴 사내가 다시 민형수를 거칠게 몰아세웠다.


― 아니라고 했잖아.

― 한민수한테 다 들었어. 한민수가 다 털어놨다고. 네가 먹은 절반은 뱉어 내야 할 거야. 그는 민형수를 몰아세웠다. 이들은 분명 그렇게 얘기했다. 황정우는 숨죽여 이들을 확인했다. 분명 자신이 알고 있는 그가 맞았다. 여자는 둘 사이에 끼여 들어 떼어 놓으려고 했지만 몸부림에 튕겨 나가 벽에 머리를 부딪쳤는지 바닥에 널 부러져 정신을 잃은 듯 했다. 둘은 더욱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였다. 사내는 민형수에 올라타 그를 팔뚝으로 짓눌렀다.

― 이 새끼 너 오늘 죽어봐. 그는 몇 번씩이나 상대방의 머리를 몇 번이고 바닥에 내리쳤다. 민형수는 폭행을 견디다 몸을 옆으로 밀어 붉은 모자의 결박에서 빠져나왔다. 두 사내는 몇 번 바닥을 굴러 몸싸움을 벌이다 파레트쪽으로 밀려갔다. 민형수의 몸이 위태롭게 쌓여 있던 파레트에 닿자 수 십개의 파레트와 생선용 나무상자가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민형수는 가쁜 숨을 몰아쉬다 의식을 잃고 바닥에 엎어졌다. 그곳에 깔려 실신한 듯 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황정우는 살짝 고개를 내밀어 소리가 난 쪽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그때 붉은 모자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 누구야? 거기 있는 거 아니까. 나와. 쥐새끼가 숨어 있었네.

사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려 황정우가 앉아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황정우는 숨이 멎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다리가 떨려 움직여지지 않았다.

― 이 새끼 다 봤어? 어린놈이네. 너 뭐야? 그는 이성을 잃은 듯 흥분한 상태였다. 온몸은 시멘트 먼지로 덕지덕지 먼지가 묻어 있었고 왼쪽 빰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흥분상태인지 제대로 걸음을 걷지도 못하는 듯 했다. 술 냄새가 풍겼다. 비틀거리며 그는 황정우에게 다가왔다. 황정우는 뒷걸음 하다 바닥에 놓인 널판지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 야. 일루와. 이 새끼가 진짜. 사내는 비틀거리며 달려들었다. 누워서 상체를 들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사내는 안심한 듯 했다.

― 어린놈이네. 너 뭐하는 거야. 그는 황정우의 멱살을 잡아 당겼다. 앞뒤로 황정우의 몸이 흔들렸다. 황정우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날려 그의 턱을 후려쳤다. 사내는 휘청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사내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황정우 에게 달려들었다.


― 햐. 이거 어린놈의 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 그는 황정우의 목을 조르고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황정우는 처음으로 강한 주먹을 맞았다. 충격은 거대한 기둥에 부딪쳤을 때의 느낌 같았다. 머리가 멍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공포가 아니라 어떤 쾌감이 밀려왔다. 황정우는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어께로 그의 상체를 밀어 넘어뜨렸다. 사내는 이미 상당한 체력을 소모한 상태였다. 그는 뒤로 넘어졌고 쉽게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기회였다. 황정우는 사내에게 달려들어 발로 그의 상체를 짓밟았다. 악악 하는 그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사내는 움직이지 못했다. 팔로 머리와 온몸을 감싸 쥐고 황정우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황정우는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그를 내리쳤다. 팔과 몸통 머리에 맞았을 때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근육과 뼈에 나무가 닿는 소리와 두개골에 닿는 느낌은 차이가 있다. 살아있는 대상에 폭력을 가할 때 더할 나위 없는 흥분이 폭발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황정우가 아무리 각목으로 그를 내리쳐도 사내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숨은 멎어 있었다. 각목을 벽 쪽으로 집어 던졌다. 퍼억 소리와 함께 각목이 벽에 맞아 튕겨져 나왔다. 황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첫 번째 살인이었다. 초겨울 한 밤중에 일어난 일이다. 민형수의 의식은 살아 있었다. 그곳에 있던 여자는 최영은의 어머니인 방인주였다, 방인주는 정신을 차리자 곧바로 119와 경찰에 신고전화를 걸었다. 방인주의 남편이자 최은영의 아버지인 최규호는 그렇게 숨을 거뒀다. 당시 민형수는 부인과 헤어지고 방인주와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다. 방인주는 최규호와 별거 상태였다.


민형수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이 상황을 이들 사이의 벌어진 치정 때문에 발생한 비극으로 결론지었다. 민형수는 폭행치사 사건으로 구속됐지만 혐의를 부인했다. 민형수는 최규호를 죽게 만들지 않았고 자신은 의식을 잃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민형수는 5년 형을 받고 출소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황정우는 며칠간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온 몸에 열이 들끓었다. 황호민은 여의도에 머물고 있어서 황정우를 돌봐 줄 수 없었다. 가사도우미가 이런저런 조치를 취해보았지만 기력 없이 늘어져 있는 황정우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황호민은 한민수와 신효선에게 전화를 걸어 굿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지만 황정우의 신내림을 다른 사람으로 돌렸기에 일단 시간이 걸려야 진정이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가사도우미가 그를 데리고 병원에 다녔지만 병원에서는 해열제를 처방해주고 뚜렷한 이상은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황호민은 속이 타들어갔다. 황호민은 송민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송민지는 보좌관으로 등록이 돼 있지만 의정준비보다 결혼과 혼수 예물을 알아보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혼식에 부를 사람을 초청하기 위해 약속을 잡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 네 의원님.

송민지는 친구들과 강남의 한 브런치 카페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 중이었다.

― 정우가 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 이번 주에 내가 움직이기가 어려워서 그런데 좀 가 볼 수 있겠나?

― 아휴, 의원님 정우 어린애가 아니에요. 곧 대학 간다고요. 의원님은 정우를 너무 오냐오냐 하고 키우고 있어요. 그게 문제가 될 수도 있거든요.

― 알고 있어. 하지만 아픈 놈 아냐. 자기 엄마 사고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건 아직 얘기하지 않은 게 있는데. 그놈이 좀,.....

― 네? 뭐가요? 그때 누군가 송민지를 불렀다.

― 알았어. 잠깐만 그대로 해...... 아. 의원님 뭐라고 하셨죠?

― 아냐. 그 얘기는 다음에 해. 오늘 일보고 이따가 보자고. 오늘 내가 당 중진연석회의가 있어서 늦게 들어 갈 거야. 며칠간 좀 일정이 많아.

― 의원님 지금 저한테 압력 넣으시는 거죠? 알았어요. 알았어. 오늘 일정 확인하고. 내일 내려가서 상태를 좀 볼게요. 일단 이따가 미팅 잘 하시고 내일 뵈여. 알았죠? 송민지는 황호민의 의중을 파악하고 내일 내려간다는 말로 그를 달랬다. 몇 년간 그를 봐왔기에 그의 성격과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여기서 한발 물러서 주는 게 장기적으로 나을 것이다. 그날 저녁 일정을 마무리 하고 송민지는 며칠 묶을 짐을 챙겨 형주 황호민 집으로 출발했다. 오전에 일을 처리하고 저녁때쯤 도착할 예정이었고 황정우가 좋아한다고 하는 닭죽과 볶음탕을 해주려 재료를 준비해 놓았다. 형주 톨게이트를 지나 가사도우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이모님...... 네 저 곧 도착해요. 미리 퇴근하셔도 돼요. 정우는 좀 어때요? 네? 하루 종일 잔다고요? 뭘 먹지도 않고? 방에 틀어박혀서? 아 알았어요.

반석동 구 도심지나 외각으로 빠져 나오기 시작하자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며 황호민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세미나 중인지 받지 않았다. 집 앞에 차를 주차하고 송민지는 차 문을 열고 재료를 들고 현관으로 뛰어 들어왔다.

― 아우 웬 비가 이리 내린담.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며 부엌으로 들어와 재료를 손질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요리를 시작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자 그는 정우를 부르기 위해 그의 방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여러 번 노크를 했지만 대답이 없어 살짝 문고리를 돌려 방문을 열었다.

― 이모님이 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다고 해서 너 좋아하는 것 차렸어. 나와 볼래? 송민지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명을 내질렀다. 황정우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침대에 걸터 앉아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웃고 있었다. 송민지는 흠찟 놀랐다. 뭔가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황호민으로부터 건강이 조금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했다. 몇 번 황정우와 만날 기회가 있기는 했지만 아직 그와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전 처음 만났을 때의 긴장하고 얼굴이 빨개지던 그 아이의 얼굴은 바뀐 지 오래였다.


― 어서 나와. 그녀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목소리는 미묘하게 떨렸다.

― 네. 그는 건조하게 대답하고 천천히 거실로 나왔다. 송민지는 황정우의 몸이 점점 야위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뭐라고 한마디 하려 하다가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황정우는 갑작스레 말을 꺼냈다. 집에서 한마디도 안하고 방에 틀어박혀 있다는 가사도우미의 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 정우야. 이제는 집에서 좀 나오는 게 어때? 너 학교 안간지도 거의 일 년에 접어 든다는 것 같던데. 바깥에 나와서 운동도 하고 그래야 몸도 회복되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황정우는 히죽 웃음을 지었다.

― 뭘 그런 것 까지 걱정하세요. 보좌관님답지 않게... 그냥 하는 대로 하세요. 어머니 자리 차지하고 싶어 들어오신 것 아니에요?

― 뭐? 그의 말에 그녀는 갑자기 깜짝 놀랐다. 침착하게 그녀는 애써 담담한척 하며 답했다.

― 정우야. 그런 말하면 안 돼. 너도 알다시피 나는 황의원님 보좌관일 뿐이고.

― 하하...... 아이고.. 놀라셨어요? 그냥 농담 한 건데. 정색하는 거보니 더 이상한데요. 어서 드세요. 제가 차린 것은 아니지만요.

송민지는 황정우가 아닌 마치 전혀 다른 사람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뭐가 저 아이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잘못알고 있었나? 아니면 다른 일이 있었나? 그녀는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아냐. 그 사실을 알 수는 없어. 황호민 의원이 이야기 할 수도 없었을 테고. 둘은 묵묵히 밥을 먹고 있었다. 상을 치우며 송민지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꺼내 대화를 잇고 긴장감을 좀 누그러뜨리려 하고 있었다. 학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인 무엇이 있는지. 황정우는 조금전과 또 말투가 달라졌다. 평범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송민지는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은 뒤 송민지는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 한때 유행하던 로맨틱 코미디였다. 남녀 주인공의 서로 속마음을 숨긴 채 상대를 떠 보기위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곧이어 미끄러져 넘어지며 케익에 얼굴을 묻는 장면에서는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 했다. 조금전의 상황은 잠시 잊고 있었다. 황정우는 2층 방에서 내려와 냉장고에 물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 재밌어요? 그는 건조한 말투로 소파에 앉아 있는 송민지에게 물었다.

― 어?. 어? 뭐? 정우야. 뭐라고 했지?

그녀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황정우의 말에 당황했다. tv의 볼륨을 줄이고 황정우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좀 확실하게 자신의 위치를 좀 잡아 놓아야 한다. 그녀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말투가 그게 뭐니. 좀 고쳐. 앞으로 나하고 오래봐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앉으라고 말했다.

― 왜요? 뭘 오래 봐요? 아주 여기에 눌러 붙어 있을 생각이에요? 황정우는 소파에 기대듯이 앉아 못마땅한 말투로 말했다.

― 히키코모리처럼 틀어 박여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실망스러운가요?. 앞으로 귀찮기도 하고 여러모로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하하. 그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 정우야.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 뭐 사실 아니에요? 이제 조금만 참고 있으면 아버지랑 결혼도 하고 그러면 뭐, 집안의 재산도 차지할 수 있을 텐데 안 그래요? 그는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 에이 다 알고 있으면서. 뭘 그리 모른 척 하세요. 솔직한 게 좋아요. 아버지도 이 일에 개입돼 있나요?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 이상한 그 모습이었다. 도저히 그 나이의 아이로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소름이 돋았다.

― 이게 어디서. 그녀는 황정우의 뺨을 후려쳤다. 짝 소리와 함께 황정우는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 그렇게 나오셔야지. 본성을 보여요. 설마? 아버지와 함께 사람을 시켜서 어머니를 사고로 처리한 것은 아니겠죠? 너무 뻔한 스토리라서 사실일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황정우는 고개를 숙이고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래 자르지 않아 묶은 그의 검은 머리가 폭포수처럼 소파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송민지는 움찔했다. 설마? 아냐. 황의원이 이야기를 했을 리가 없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 뭐 무슨 말은요. 다 알고 있으면서 뭘 그리 시치미를 떼요. 그 사람한테 얘기 들었어요. 어머니 사고는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요. 황정우는 확신은 하지 않았다. 그냥 송민지의 반응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눈동자가 커지는 것을 황정우는 눈치 챘다. 그녀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 잡아떼도 소용없어요. 아버지와 둘이 엄마를 그렇게 만든 거군요. 황정우는 추궁하듯 그녀를 몰아붙였다.

― 아냐. 네가 뭘 잘못알고 있는 거야. 절대로 그렇지 않아. 송민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황호민과 자신 그리고 민형수 밖에 없다. 최규호는 죽었다. 한민수가 알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민수가 그 일을 말 할리는 없다. 그렇다면 저애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넘겨짚은 것인가?


― 음... 암튼 이후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해 봐야겠네요.

황정우는 그 말을 남기고 천천히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얘기를 꺼냈으니 송민지는 이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내일 상황을 보면 송민지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가능하다. 당장 아버지가 내려오거나 전화를 하겠지. 황정우는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를 생각했다. 이상한 기분은 들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어머니와 자신이 각별한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머니 역시 자신을 그렇게 대했다. 황정우는 대충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한 여자 그리고 그 사이에 아이가 있었고 어머니와 자신에 대한 애정은 없다는 것을. 어머니와의 결혼은 정략결혼과 마찬가지였다. 그때쯤 황정우는 자신이 일반인들과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슬픈 장면이나 사고를 당해 죽음을 당했다는 생각에 왜 슬퍼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저들이 슬퍼하는데 같은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자신이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 사람들은 자신을 나무랐다. 하지만 대 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없이 무리에 섞이려면 그들과 같은 반응을 보여야 편하다. 피곤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지켜보고 조금씩 그들의 행동패턴을 모방했다. 그렇게 되면 이상한 눈치를 주지는 않았다. 황정우는 그게 자신과 사람들을 가르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의 상황을 송민지가 얘기를 한 것이 틀림없다.


― 무슨 일이냐? 송 보좌관한테 얘기 들었다. 너를 보살펴주러 온 사람한테 무슨 짓이야. 그의 목소리는 흥분상태였다.

―네 엄마 사건은 또 무슨 말이야. 누구한테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일은 사고였어. 네놈은 지금 아픈 것이고. 조금 나아졌나 했는데 아직도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따위 짓을 해?

―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면 어머니 죽음에 아버지도 관계가 있어요? 송 보좌관을 두둔하는 것 보니. 저는 분명히 확인했어요.

― 네놈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송 보좌관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당장 올라오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네놈은 집에서 나와서 당분간 다시 서울로 가 있어. 그게 나을 거야.

― 그래요? 송 보좌관이 어떻게 나올지 확인해 봐야겠네요.

― 네 놈 마음대로 생각해. 내림굿까지 해서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다 나은 게 아니었나. 어리석은 놈. 정신 좀 차려.


통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황정우는 전화를 침대에 집어 던지고 자리에 누웠다. 뭐 어찌되든 상관은 없었다. 일단 아버지에게 자신이 상황을 알고 있다는 말을 해 놓았기에 앞으로 원하는 대로 상황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아버지 역시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원하지 않을 테니. 송민지를 다룰 좋은 무기가 생긴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한민수를 조만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여러 비밀을 알고 있을 것이다. 며칠 후 황정우는 집을 나와 서울의 친척집으로 향했다. 대치동의 학원에 다니며 검정고시를 준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 준비과정으로 들어갔다. 황정우는 학교 보다 학원에서의 생활에서 만족감이 더 컸다. 굳이 주변인들의 반응에 신경 쓰며 소통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치동 학원의 강의는 명확했다. 입시를 위한 최적화된 시스템이었다. 그는 마음이 놓였다. 타인의 기분에 맞춰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학원 시스템은 효율적이고 정확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왜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 시골구석에서 수준 낮은 아이들에 맞춰주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순식간에 성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성적향상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상담실장은 그를 인재라고 추겨 세웠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몇 년정도 수험생활을 하면 정시로 서울대에 갈수 있는 실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호민은 송민지와 황정우의 관계가 껄끄러워 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황정우가 서울로가 입시를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가 줄었다. 그래. 그놈은 차라리 떨어져 있는 게 더 낫다. 상담실장이라는 사람이 전화해서 학업에 적성이 있다는 말까지 해 준 듯 하다. 아버지는 이전보다는 반응이 좀 누그러져 있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황호민은 생각했다. 황정우는 2년간 입시에 몰두해 서울대 정치학과에 합격했다. 이후를 생각했다. 자신을 가장 흥분되고 스릴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이제 천천히 그것을 준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흐뭇한 미소가 얼굴에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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