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희는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살아 난 것이죠.
* 출판사와 출간협의 중이라 연재분을 매주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계약이 되면 작품 읽어 주시는 분들께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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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은 민소희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꺼져 있었다. 여러 곳을 수소문했다. 시민단체 <정의연>쪽에 연락을 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좀 쉬겠다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설마 민변호사가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것인가. 신정록이 신효선으로 위장해 사건을 의뢰하러 왔을 때 신효선은 숨진 뒤었다. 누군가 와서 사건에 대해 묻는다고 하면 알고 있는 그대로만 이야기 하면 된다고 했다. 안승민도 같은 말을 했다. 정혜는 그곳에 있으면 안 되는 아이였다’고 했다. 아니다. 그녀가 범인이라는 아무런 증거도 없다. 단순히 재조사를 해달라는 의뢰일수도 있다. 민변호사가 일하던 합동 법률사무소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변호사들이야 모두 개인사업자들이다. 역시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번 서부지방법원에서도 마지막 사건 심리였고 판결을 앞두고 있다고 했으니 그 일도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HEL>에 가 볼 필요가 있었다.
― 최실장 민변호사도 전화가 안 돼. 민변호사 관련된 자료 좀 다시 찾아봐. sns계정하고 단서가 될 만한 것. 최근에 뭔가 변한 게 있는지 알아봐줘. 신정록은 민소희의 부탁으로 사건을 의뢰 한 거야.
― 와우. 이게 뭔 드라마 같은 일이래요. 민변호사는 뭔 생각으로...... 아마도 대표님이 이 수수께끼 같은 모든 상황을 언론에 터트려주기를 바란것일 테죠. 흥미로운 사건이니.
― 근데 민변호사가 범인이라 단정도 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또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경찰 아니에요. 사건 수사는 대표님 몫이 아닙니다.
― 알았어. 일단 민변호사 전화가 안 되고 법률사무소도 연락이 없어. 지난번 서부지방법원에서 사건 때문에 만났는데 그 사건도 다 마무리한 것 같아.
― 캬. 깔끔하네요. 일단 저도 추가로 알아보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 응 시간되는 대로 퇴근해. 나도 정리하고 들어갈게
―알았어요.
통화할 때 느꼈지만 김선호도 할 얘기가 많은 듯 보였다. 풀리지 않는 의혹이 너무도 많다. 집으로 돌아가 현민은 욕조에 물을 받았다.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 생각에 잠겼다. 가만 이들이 살해된 이유가 한정혜의 죽음과 관련된 공모일까? 현민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살해범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인가? 김선호를 만나서 확인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들은 모두 최영은과 이들 무리의 폭력성과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을 하나같이 지적했다. 그럼 황정우도 한정혜 사건에 공모했나? 이들이 모인 이유는 논술반 기념이라고 했다. 그럼 그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정보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아... 민소희는 부작위라고 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데 하지 않았다. 황정우는 뭔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다. 황정우도 제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제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민소희의 역할은? 기획자? 설계자?
―앗 뜨거.
현민은 욕조의 물이 식이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잠그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우선 김선호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
김선호와 정주현은 상수역 근처 공용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홍대 일대를 걸었다. 날씨는 잔뜩 흐려있었다. 첫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이 불어서 인지 날씨는 상당히 쌀쌀했다. 11월 마지막 주였지만 이른 추위가 몰려왔다.
― 찾으셨어요? 정주현이 물었다.
―<HEL>이라는 술집이 있다는데 2층이래 그 앞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숍 에서 만나자고 했어.
― 역시 젊음의 거리네요. 외국인들도 많고 뭔가 활기가 넘치는데요. 밤에는 더 활발하데요. 와서 좀 분위기도 느끼고 해야 하는데 우중충한 사건이야기나 해야 하다니 원 제길...
― 그래도 박현민 만나서 시간도 절약하고 사건관련해서 정보도 교환할 수 있으니 잘 된 거지
― 팀장님한테 꼭 필요한 출장이라고 하고 온 건데 뭐라도 가져 가야죠. 안 그러면 한 소리 들을 지도 몰라요거기까지 가서 뭐했냐고. 그런데 박현민은 왜 이쪽으로 오라고 했을까요?
―뭔가 알려줄게 있는지 모르겠네.
정주현이 커피를 마시며 잔을 내려놓자 감색 블레이져를 입은 박현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주현은 손을 흔들었다. 김선호는 그가 잠을 못 잤는지 수척해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박현민은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 오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서울은 오랜만이시죠? 현민은 자리에 앉았다.
― 네. 정말 몇 년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보자고 한 이유가 있으시죠? 현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돼 가는데 용의자는 아직 특정 안 된 것입니까? 현민이 물었다.
― 긴급체포 상태로 외노자를 심문 중에 있기는 합니다. 영장을 청구해야 하는데 딱히 나온 게 없어요. 그게 문제죠. 풀어줘야 할지도 몰라요.
― 그렇군요. 휴대폰으로 형주서에서 몇몇 유투버가 라이브 방송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 채널과 관련된 영상으로 그 내용이 뜨더라고요. 용의자가 잡혀가는 상황을 라이브 방송을 해서 조회수 올리고 수익을 내려 한 것 같은데 석방되면 그것도 활용하겠네요. 사람들의 관심을 끌 테니. 새로운 용의자 나타나면 그것대로 시끄러울 테고. 몇 가지 조사한 부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현민은 조사한 정보를 전달했다. 한정혜의 엄마로 자신을 소개하고 온 사람이 배우 신정록이며 신정록은 그 제안을 민소희 변호사로부터 받았다는것. 안승민과도 만나 민소희로 개명을 하기 전 민소진과 한정혜에게 있던 일들도 알게됐다. 민소희에게 연락을 했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는 상태이고 둘 다 누군가 찾아와 상황을 묻는다면 그냥 있는 대로 이야기를 해 주면 된다는 말도 전했다. 법무법인하고 시민단체에도 알아봤는데 민소희는 연락이 안 되는 상태이고 마지막으로 자신과 두 번 만났던 <HEL> 재즈 칵테일 바의 주인에게 물어보려 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 음.... 그렇군요.
김선호는 묵묵히 현민의 얘기를 듣고 납득이 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 그렇게 되는 것인가?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연락이 안 된다면 이유가 있을 테고. 민소진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겠네요. 유력한 용의자가 되겠죠.
― 사건과 관련해 민소희나 안승민은 만나보지 않으 신거죠? 현민이 물었다.
― 예. 아직. 수사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습니다.
― 신효선 아니 신정록의 얘기를 들어보니 부모라면 한정혜 자살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얘기해야 설득력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현민은 말을 마치고 김선호와 정주현을 쳐다보았다.
― 한정혜 사건은 너무 의혹이 많습니다.
―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책임을 느낍니다. 김선호가 말했다.
― 둘 사이는 긴밀해 보였습니다. 한정혜와 민소희는 같은 대학에 다녔습니다. 과는 달랐지만요. 당시 민소희의 몸이 많이 안 좋았다고 했어요. 수술을 하지 않으면 힘든 상황이라고. 졸업은 하고 싶었던 모양이고 한정혜가 민소희를 많이 도와준 모양입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도 민소희는 최영은에게 많은 괴롭힘을 당한 듯 했습니다. 민소희 입장이라면 경찰의 사건 조사도 납득이 잘 가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알았을 테고. 민소희가 변호사로서 뭔가 새로운 증거나 의혹을 발견했다면 재조사 의뢰도 가능은 하죠. <사건25시>를 활용하면 여론도 모을 수 있고. 민소희를 몇 번 만나봤는데 이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 음... 아무리 그래도 굳이 그렇게 사람을 시켜서 사건을 의뢰한다라......김선호는 팔장을 끼고 커피를 내려다 본 뒤 박현민을 보고 말을 꺼냈다.
― 사건을 정리해 보죠. 과학수사대에 동료가 있습니다. 그가 최영은 살해 현장을 보고 이야기 하더군요. 이 살해 방식은 뭔가 이상하다고. 인간이 저지른 것 같지 않은 자창의 형태가 반복돼 있고 죽은 후 욕조에 머리가 담겼습니다. 뜨거운 물이 틀어진 채로. 피가 사방에 번져 있었죠. 국과수 검사결과 살해도구는 날카로운 칼이 맞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일한 곳을 무방비 상태에서 수십 번 찌른 듯 해 내장이 모두 형태가 없다고.
― 으...... 옆에 있던 정주현이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 최영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정주시 아파트 뒷산에서 일요일 새벽에 방준호가 외진 등산로 구석 도랑에서 낙엽에 머리를 쑤셔 박고 숨져 있는 것이 발견됐죠. 최초 발견자가 기겁을 한 모양입니다. 방준호는 목에 칼이 찔려 숨져 있었고 뒷목에는 칼이 박혀 있었죠.
― 검식결과로는 일단 먼저 칼로 살해 후 뒷목에 칼을 박았다는 겁니다. 시간 순서대로 보면 신효선의 죽음이 먼저 입니다. 신효선의 사망 그리고 방준호 다음은 최영은이 살해된 것이죠. 애초에 이 사건의 연관성을 알지 못하고 신효선은 지병으로 숨졌다고 생각했고 방준호 사건은 정주시에서 발생했죠. 탐문을 하면서 한정혜의 모친 신효선이 무속인이란는 것 그리고 한정혜가 어릴적 용한 신기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신효선은 한정혜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 듯 보이고 학교에 보내지 않고 정원 외 관리자로 집에서 관리를 했습니다. 신효선은 한정혜를 학대하고 무속과 관련된 일을 시킨 것일 수 있고요. 민소진과 한정혜의 고등학교 관계는 아실 테고.
― 딸한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안승민이 어릴적 형주항 근처에서 정혜가 굿판에서 일하는 것을 본적이 있었다고 했고. 그게 학교에 소문이 났다는 얘기를 들려주긴 했어요. 박현민이 말했다.
― 한정혜와 민소진이 유달리 친밀한 관계처럼 보였다. 그렇게 말씀하셨죠? 네. 신정록의 진술도 그렇고요.
―저도 그 둘 사이의 관계가 긴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한정혜의 사망과 관련해 민소진 아니 민소희가 그 죽음을 다시 조사하려는 이유도 설명이 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대학도 같이 다녔고 민소희가 몸이 좋지 않았다고 했는데 한정혜가 도움을 주었다고 했으니. 생각하지 못한 죽음이라면 민소희가 의혹을 가질만하고요. 민소희가 사건을 의뢰했다면 그녀의 사망과 관련해 다른 증거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죠.
― 그런데 민소희 변호는 지금 멀쩡해 보여요. 아픈 사람 같지 않아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운동도 열심히 하는지 몸도 건강한 듯 하고 변호사라는 사회적 지위에. 그녀가 살해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만약 교사를 했다고 해도. 연쇄로 몇 명을 살해하는 게 가능한지도 의문이고요.
― 민소희는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살아 난 것이죠.
― 네?
― 공여자는 한정혜고요. 수혜를 받은 사람 중 하나는 황호민이었습니다.
박현민은 크게 놀랐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럴수가.... 이제야 안승민의 말이 이해가 되는군요. 왜 그렇게 민소희가 힘이 없고 아팠다고 했는지. 민소희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고. 그렇다면.... 이건..... 현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아...
― 본청 감식팀 동료가 두 가지를 알려줬습니다. 우선 천재적인 사이코패스는 잡기가 어렵죠. 자신을 잘 드러내지도 않고 어떻게 하면 완전범죄에 가까울까. 그 생각을 할 테고요. 최영은 살해사건 현장 조사를 하면서 이 사건이 그렇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형주서에 사건을 수사했지만 뚜렷한 사건의 실마리를 잡아내지는 못했습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그는 현민에게 <신곡>의 원서와 해설서를 건 내 주었다.
― 뭡니까? <신곡>이네요. 그는 책을 집어 들고 내용을 훑었다.
― 책의 주인공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으로 들어가죠. 지옥에서는 생전에 어떤 악행을 했는지 그에 따른 처벌을 받는 형식으로 이뤄졌습니다. 현민은 책을 살펴봤다. 원서와 해설서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친 부분을 그는 유심히 보았다.
― 말도 안 돼.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정주현이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이후 말을 꺼냈다.
― 예전에 <쎄븐>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과 비슷하기는 한데 그 영화는 지옥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죄를 지어 연옥에 머무는 내용이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건 진짜. 여기까지는 상상도 못하겠네요. 현민은 멍하니 둘의 표정을 살피고 커피잔을 들었다.
―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상황을 보니 사건이 왜 그렇게 연결되는지 알 것 같네요.
― 그럼 이 사건은 민소희 변호사 아니 민소진이 그 <신곡>에 나오는 방식대로 저지른 것이라고요? 어떻게 그 작은 체격으로.......
― 확신할 수 없습니다. 증거도 없고요. 더군다나 혼자서 그 일을 벌인다는 게... 하지만 민소희가 관련돼 있다는 것은 분명하죠. 방준호는 손에 방어흔적도 있고 칼에 찔린 후 뒷목에 칼을 맞아 숨졌는데 160cm 정도 되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오늘 박현민 기자한테 들은 정보를 취합하면 수사 방향이 재설정 됩니다. 담판을 지어야죠. 그 동기야 어떻든 저희는 범인을 잡아야 하고 그것이 일입니다.
― 그런데 왜 단테의 <신곡>에 나와 있는 형태로 살인을 저지를까요? 김형사님 말대로라면 그런 사건이 발생하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무작정 그런 일을 벌이지는 않을 테고요.
―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 봤는데 저는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박기자님이 좀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이 사건 방송 하실 거죠? 그 이유도 알아야 <탐정x>와 <사건25>시에 반향이 있지 않을까요? 어쨌든 도움을 주셨으니 제일먼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을 테고. 현민 기자님 특종으로 나갈 수도 있을 테니. 제 직감이기는 하지만 민소진 아니 민소희 변호사를 만나 물어보면 사건의 해결방향이 보일 겁니다. 물론 수사와는 다르겠죠.
― 학교 다닐 때 괴롭힘을 당했다고 <신곡>에 나와 있는 대로 살해를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 정도로 과감한 상상은......
― 지금은 사건과 관련된 가장 근접한 시나리오가 그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릴 때의 폭력 때문에 이처럼 잔혹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어릴 적 트라우마로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은 사실이기는 하죠. 사실 더한 사건도 있지 않습니까?
― 민소희가 신정록한테 사건의뢰를 부탁한 이유가 혹시 더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생각나는 것이라도. 정주현은 다른 정보가 있으면 달라는 취지였다.
― 민 변호사와 그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취재한 내용 중에 고등학생과 관련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그 변호를 맡았다고 하더군요. 방송국에도 물어본 모양이고. 이 사건이 공론화 되기를 바란 것 이죠. 그래서 의뢰를 한 것 같아요. 아. 생각이 나는 게 하나 있네요. 민변호사의 말로는 부작위에 의한 피해와 관련된 학생의 변호를 맡는다고 했어요. 마치 세월호 선장이 배를 버리고 도망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살릴 수 있는 수많은 사람을 죽인 것과 같은 것이라고. 청소년 사건에서 선생의 역할을 강조하더군요.
― 음... 그렇군요. 선생이라... 박기자 님은 무속을 믿습니까?
― 무속이요? 박현민은 갑작스레 뭔 뜬 구름을 잡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둘을 바라보았다.
― 글쎄요. 갑작스레 그렇게 물으니 뭐라고 해야 할지절대적으로 믿지는 않습니다만 나름 과학적 합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왜 그러시는지.
― 공나영이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정혜와 민소진에 대해서 신기한 얘기를 하더군요. 한정혜는 뭔가 신기가 같은, 설명할 수 없는 기운 같은 게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직접 봤다고. 그리고 한정혜와 민소진의 친밀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 말하더군요. 그는 잠시 턱을 쓰다듬고 말을 계속했다. 신효선은 한정혜의 그 특별한 능력을 통해 점집을 운영해 경제적 이득을 취했고요. 두 사람의 관계가 친자 관계까지 아닐 것으로 생각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속과 관련된 부분은 또 있습니다.
― 최영은 살해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기묘한 굿을 하는 무당을 봤습니다. 차가운 인상이었고 뭔지 모를 격렬한 살기 같은 기운을 느꼈습니다. 아, 이건 그냥 제 생각입니다. 제가 굿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굿을 멈추게 하고 사건현장에 가서 최영은 사망현장을 확인했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조사하던 중 오래전 사건을 맡았던 알고 있는 무당에게 연락해 CCTV 영상을 보여주며 이날 굿을 하던 사람이 법당이라고 불리던 신효선이 맞냐고 물었습니다.
― 뭐라고 하던가요? 현민이 그의 얼굴 표정에 집중하며 물었다. 김선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꺼냈다.
― 그 사람은 법당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무당이 벌이던 그날의 굿은 저주를 내리는 것이라고 얘기했어요, 신효선의 사망날짜를 확인하면 죽은 지 일주일은 넘어서 발견됐고 그녀의 휴대폰은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대신해서 그날 굿을 한 것이고 그 상황을 이용해 최영은을 살해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더 이상한 부분도 있어요. 그 무당 신원 확인이 안 됩니다.
― 네?
― 굿에 온 사람들 대부분을 조사했습니다. 굿은 혼자 할 수 없죠. 법당이라고 불리는 신효선은 성격이 까탈스러웠답니다. 굿을 하기 전에는 아무도 자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를 해서 그날도 그러려니 했다고 하고 준비가 되자 와서 보니 다른 사람이 굿을 하더랍니다. 다들 깜짝 놀랐다고. 하지만 그만둘 수가 없어서 일단 진행을 했죠. 그때 택배 기사가 현장을 방문에 최영은 현장 신고를 했죠. 굿이 막 끝나려는 때였고..
― 사건을 확인하고 근처 지구대 경찰이 현장을 정리하고 폴리스 라인을 칠 때 굿을 하던 그녀가 사라졌습니다. 함께 굿을 도와주던 사람들은 평소처럼 법당에서 문자가 와서 하겠다고 했고 준비 사항을 알려줬다고 하고 그날 굿을 진행했습니다.
―그렇다면?
―네. 그 사람도 의심스럽죠. 이 연결고리를 찾은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지금 팀장님에게도 아직 얘기하지 않은 부분입니다. 자. 이제 왜 이 사건에서 민소진 아니 민소희에 대해서 조사가 필요한지 아실 것입니다김선호는 남은 커피를 마셨다.
― 안승민은 만나보셨습니까? 뭐라고 하던가요? 김선호가 물었다.
― 안승민은 한정혜 민소진과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엔젤 메카닉스>라는 회사를 운영 하는데 몇 년 전 회사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민소희가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주고 도움을 준 모양입니다. 정혜 사건 이후로 연락을 안 하고 있었는데 벤처 펀딩 모임에서 만난 듯 하고요.
― 그렇군요. 정주현은 수첩에 현민의 말을 적고 있었다.
― 안승민은 장애가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잘 걷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민소희가 안승민한테 자신에게 맞는 로봇을 맞춤 제작해 달라고 했답니다. 안승민은 몸이 불편해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고 있는데 그 제품을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네요.
― 음... 네? 로봇이요? 어떤 겁니까? 입는 로봇이라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몸에 착용하는 그런 형태인가? 김선호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투로 물었다.
― 아. 뭔가 다른 것을 상상하신 듯 한데 보통 웨어러블 로봇은 활동에 도움을 주고 근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형태입니다. 보통 이렇게 생겼죠. 현민은 홈페이지의 사진과 로봇의 착용형태를 보여주었다.
― 신기하군요. 그럼 이 제품을 통해 근력을 강화하거나 보행에 도움이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 그렇다고 합니다. 안승민은 다리가 불편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데 이 제품을 착용하고 평범하게 걷더군요. 신기했습니다. 안승민이 특허와 장치에 대해 설명해 주는데 인간 신체의 근육을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김선호는 갑작스레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을 가다듬는 듯 했다.
― 잠깐. 정형사. 혹시 최영은도 방준호도 모두 여러 번 자창에 찔렸지? 현장에 아무런 의심 없이 다닐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제품처럼 근력을 활용하면... 그 로봇 좀 다시 보여주시겠어요? 감식팀 동기가 일반적 족적이 아니라고 했는데. 김선호는 제품을 꼼꼼히 다시 살펴보고 있었다.
― 이 제품은 양산형이라 부피가 좀 크죠. 안승민이 착용한 것은 신체와 별 차이 없이 잘 융합이 되더군요. 팔과 다리에도 착용할 수 있고 다리를 제품에 얹어 걸을 수도 있고요. 맞춤형 특별제품인 듯 했습니다.
― 음... 아... 이것은.. 이렇게도 걸을 수 있군요. 잠깐만요. 이 기능이 제품에 있는 겁니까? 김선호는 갑작스레 정신이 든 것처럼 제품에 대해서 정신없이 묻고 있었다. 그는 ‘ 기계장치 같은 것으로 반복해서 찌른 것 같다’ 는 정현모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하려는 모습이었다.
― 안승민이 착용한 것을 보니 기능이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저도 자세한 것은.... 직접 확인을 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양산품 느낌은 아니었어요. 특별 제작한 제품처럼 보였고.
― 음. 이 로봇의 스텝기능에 쓰이는 로봇 발의 족적과 그때 현장 검증에서 조사한 족적을 확인해 봐야겠군요. 박기자님 일단 오늘은 이정도로 얘기를 마치는 게 좋겠습니다.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제 뭔가 보이는 것 같군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여러 단서를 얻게 되는군요
― 아, 다리에 이렇게 착용을 하는군요.
정주현은 제품을 검색해 특장점을 체크하고 있었다. 민변호사와 안승민 대표를 보는 게 먼저겠네요. 김선호와 정주현은 인사를 하고 나왔다. 현민은 따로 들러볼 곳이 있다고 얘기하고 조금 더 머물다 가겠다고 말했다. 둘은 아무래도 민 변호사가 참고인 이상으로 그녀가 이 사건에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이들과 헤어진 후 박현민은 잠시 자리에 앉았다. 안승민의 말에 따르면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괴롭힘 당한 것은 민소진이다. 그럼 민소희는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정혜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아이다’ 아... 설마. 민소진은 한정혜와 자신의 상황을 바꿔서 말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앞뒤가 맞는다. 한정혜는 민소진을 도와주었다. 둘은 서로 친밀한 관계이다. 서로 의지하거나 신뢰했을 것이다. 한정혜는 어릴 때부터 학대를 당했고 민소진은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행으로 힘들어했다. 둘의 인연은 어릴 적 부터였다.‘ 그녀는 부작위라고 말했다. 황정우는 논술반에서 이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고전도 읽었다고 했고. 자료를 복사해서 주었다고. <신곡>은 그때 읽은 것이 아닐까. 그 반에는 한정혜와 민소진도 있었고 민소진은 한정혜가 독서를 많이 해서 글을 잘 쓴다고 했다. 최영은도 그렇게 말했다. 민소진은 황정우를 달가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황정우가? 현민은 퍼뜩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