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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페르소나 논 그라타 -3부- 6

황정우는 교감의 말대로 학교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by proo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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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우는 교감의 말대로 학교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집에 다녀온 뒤로 뒤숭숭해 잠이 오지 않았다. 갑작스레 끝없는 생각에 빠져 들 때가 있다. 어떤 충동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아버지의 건강은 더욱 악화돼 이제는 투석을 연이어 진행해야 한다. 선거는 무리인 듯 싶지만 송민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문제다. 시내에 있는 내과에 주기적으로 다녀야 하고 집에서도 투석기계를 놓았지만 소문이 날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송민지는 재산을 다 차지하려 할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간다고 했지만 아직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다. 교감은 얼마 전 학교 재단에 은근히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인원들에 대해서 얘기를 해왔다. 저들부터 처리를 하는 게 시끄러운 일을 좀 줄이는 방법이다. 저들을 그만두게 하는 게 낫다. 소송이 시작되면 시간이 더 걸린다. 선거철로 접어들면 시선도 집중될 것이다. 학교에 대한 여론은 좀 잠잠해 진 게 분명하다. 집에 다녀왔을 때 아버지의 건강은 더욱 악화된 듯 싶었다. 황정우는 그날 송민지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여론조사가 결과가 나온 날이었다. 아버지는 양숙희에게 5퍼센트 열세였다. 선거운동기간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지만 불리하다. 이번 선거에 패배하면 안 된다. 황정우는 퇴근 후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그 때 최영은의 문자가 왔다. 오늘은 바빠서 안 돼. 황정우는 답변을 했다. ‘ 쳇. 너무하네’ 몇 번씩이나 연락을 할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다행이 더 이상 문자가 오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에서 몇 년 떠돌다가 형주로 왔다. 아버지의 요구였다. 몇 년간 교사를 하고 학교와 학원 분위기를 익히라는 것이었다. 어쩔수 없었다.

― 정우야. 아버지가 상태가 좀 안 좋다. 얘기할 것도 있으니 잠시 좀 들르렴. 이번에는 송민지의 문자였다. 그는 전화를 걸었다.

― 무슨 일이죠? 왜 몸이 안 좋아요?

― 요새 부쩍 선거를 앞두고 신경을 써서 그런지 투석 때문에 그런지 아무래도 한 번 더 와야겠다.

― 상태가 안 좋으면 의사를 부르지 왜 저를 부릅니까? 황정우는 툭 던지듯 말했다. 귀찮다는 투였다.

― 그래도 이따가 집으로 와. 얘기는 마저 끝내야지.

송민지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황정우는 전화기를 침대에 던졌다. 오피스텔에 서서 창문에 비친 가로등을 쳐다보았다. 일직선으로 펼쳐진 도심에는 10시가 넘었는데도 차량의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다. 나트륨 가로등이 노란 물감처럼 어둠속에서 번져가고 있었다. 송민지는 무슨 생각인가. 10년도 넘었으니 인내심이 바닥 날만도 하다. 그 여자 성격상 많이 참은 것도 사실이다. 송민지가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에게 했던 것처럼 방법을 써서 조금씩 그의 건강을 무너뜨렸을 수도 있다. 곧 계산을 끝내야 할 때가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신장이식 밖에 없다. 송민지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정혜에 대한 검사 결과가 나와야 일이 수월하다. 민형수가 도움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황정우는 생각을 가다듬었다. 결론이 나면 바로 실행하도록 움직여야 한다. 틈을 주면 안 된다. 시간을 끌 필요는 없다.

황정우는 한민수를 찾아갔다. 아버지의 일을 오랫동안 돌 봐 주던 사람이었다. 조금씩 친밀한 감정을 느끼도록 만들어 비밀을 은근히 물었다. 한민수는 모나거나 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의 기분에 맞춰주며 이런저런 흥미로운 얘기들을 캐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반민족 아니 친일 행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에 부역해 부를 쌓았다. 남들은 손가락질을 한다고 했지만 뒤에서 수근거릴 뿐이다. 우리집안이 가진 부와 권력에 대항할 생각조차 못한다. 비루한 인생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부와 지위에 대한 열등감을 표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시대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족속들이다. 약자들의 모자란 인생에 불과하다.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한민수에게 들으니 작은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버지의 성격은 더욱 의기소침해 졌다고 했다.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정략적인 선택이었다.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대하는 아버지에게서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도 아버지의 관심을 끌어야 했다.

방법은 집안의 내력을 조금 비틀어 활용하면 된다. 결혼 전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안수정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중학교에 다니던 무렵이었다. 어느날 아버지와 어머니가 큰 소리로 싸우는 것을 들었다. 히스테릭한 성격 때문에 둘은 결혼 초부터 갈등이 않았다. 어머니의 의심은 정도가 커지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 만나던 안수정이라는 여자 때문이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만났던 교포였다. 아버지가 살던 빌라건물을 관리하는 집 딸이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종종 해외출장을 이유로 오랫동안 외국출장을 다녀오고는 했다. 그때마다 귀국했을 때 싸움소리가 커졌다. 황정우는 그럴 때마다 신기를 연기해 위기를 모면했고 주위를 끌었다. 연기는 설득력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물론 약을 먹거나 한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부분이 고통스러웠다.

― 뭐 딸이 있다고? 그 애가 정말 당신 애인 게 확실해? 어떻게 할 생각인데? 아이를 데려오기라도 할 생각이야.

―뭐 호주? 거기다 데려다 놓은 거야? 미쳤어? 그 여자야? 결혼하기 전에 만났다던 그 일본 교포?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 이런 식으로 구니까 내가 마음을 다잡지 못하잖아.

― 뭐? 이렇게 된 게 내 책임이야? 그래 어디 어떻게 할 건데? 이미 헤어졌다고 했잖아.

― 그만해?

― 뭘 그만해 그만하긴. 어떻게 할 건지 묻잖아. 어머니가 소리쳤다. 어머니의 성격은 그런 식이었다. 날카롭고 집요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기준에 맞아야 했다. 아버지로서도 숨이 막혔을 것이다. 아버지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황정우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뭔가 짜증스러웠다. 어머니도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원래 자신에게 그런 감정 자체가 결여돼 있는지도 몰랐다. 이후부터 아버지는 의정활동을 이유로 집에 오는 것은 거의 연례행사처럼 되어 버렸다. 명절이나 지역에 참여해야 하는 행사가 있을 때 들르기도 했지만 냉랭한 분위기는 식사시간에도 이어졌다. 음식을 삼키는 것인지 이물질을 삼키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밥을 먹고는 몇 시간 후 수행비서와 함께 그는 집을 떠나버렸다. 일년 후 교통사고가 났고 황정우의 어머니는 트럭에 치어 그대로 즉사했다. 모두들 황호민과 자신을 위로했다. 신내림과 더불어 이제는 슬픔도 연기해야 했다. 매번 약을 먹어가면서 말이다.

힘든 일이었다. 한민수는 아버지를 설득해 무속인 법당을 불러와 자신에게 들린 신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여자아이에게 대신 신내림을 받게 만들어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얘기를 털어 놓고 있었다. 사실 그런 얘기를 지금 시대에 늘어놓는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우유부단한 아버지는 그 말을 믿었다. 아니 믿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민수에게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이후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송민지였다. 송민지는 아버지의 보좌관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황보인과 황호민의 내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젊음과 미모를 무기로 아버지에게 접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를 떠올렸다.

‘어머 이쁘게 생겼네. 얼굴 빨개지는 것 봐’

그녀가 한 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송민지는 여자로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그녀의 본심을 안 뒤부터 그녀의 그 얼굴과 몸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거대한 요괴처럼 보였다.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연기를 했지만 어릴적 그날의 굿은 좀 달랐다. 한정혜라는 그 아이에게서 뭔가 독특한 기운이 느껴졌다.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그 여자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한민수에게 물어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딸이라고 하는 아이도 궁금했다. 아이에 대한 진실을 알고 있다면 민형수와 한민수일 것이다. 아버지가 일을 맞길 사람은 이 둘이다. 민형수의 공장에서 오래전 들은 이야기도 확인해야 했다. 민형수는 최규호 살해에 누명을 썼다. 자신도 최규호를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하다. 알고 보면 인생은 우연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가는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선택의 연속이 아닌가. 그곳에서 들었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어머니를 숨지게 한 것이 결국 아버지와 송민지란 말인가.


민형수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운영할수록 적자인 것은 분명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이는 따돌림을 당하고 건강도 좋지 않다. 민형수는 공장운영비와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반석동 일대의 토지를 학교법인에 결국 매각했다. 그 돈을 운영자금으로 썼지만 그것도 많이 남지 않았을 터다. 비싼 값에 매매를 할 수 있었지만 버틸 여력이 많지 않았고 때를 놓쳤다. 법인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황정우는 공장작업이 종료될 시간이 돼 평탄면 갈매리의 S&M 수산푸드를 찾았다. 최규호를 죽인 이후 처음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인원은 많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정도 돼 보였다. 열 명 남짓한 인원들은 흰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이들은 생산라인에서 기계처럼 물건을 만드는 중이다. 작은 유리병 안에 끊임없이 만들어진 물건들이 채워지고 있었고, 명란젓을 생산했다. 외노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일렬로 늘어서 뚜껑을 닫는 작업을 반복하고 했다. 그는 멀리서 작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 아저씨 안녕하세요?

민형수는 초췌해 보였다. 허리는 굽어 있었고 수염은 잘 깎지 않아 푸릇한 얼굴빛과 알콜로 누런 황달증상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몸은 말라 옆에서 보면 나뭇가지가 휘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 뉘신가?

― 황정웁니다. 황호민의원 아들이요. 민형수는 그 얘기를 듣고 그는 황정우를 힐끗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 오랜만이네. 이제는 몰라보겠다. 벌써 서른이 넘었나? 어릴 적 얼굴이 조금 남아있기는 하구나. 민형수는 그를 공장의 작은 직원 휴게실로 안내했다. 낡은 가죽 소파는 군데군데 헤져있었고 비릿한 남성호르몬과 오래된 담배냄새가 났다. 바로 옆의 공간을 보자 최규호를 죽일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 앉아. 그는 그렇게 말하고 정수기에서 물을 내려 스틱커피를 타서 테이블위에 놓았다.

― 줄게 이것밖에 없다. 마셔라. 정수기 통에서 쿨렁 소리를 내며 물이 내려가고 있었다.

― 날 찾아온 이유는? 좋은 소리 하러 오지는 않았을 테고. 민형수는 잔뜩 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 몇 년간 고생하신 것 압니다.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소진이도 아프고 공장운영도 힘들 것이라는 것도.

― 그런 얘기 하려면 가봐. 그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황정우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냈다.

― 몇 달치 공장운영비와 소진이 치료비료 당분간은 충분할겁니다. 민형수는 봉투를 살펴보고 책상에 던졌다. 누명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그 말은 하지 않았다. 민형수의 표정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 너하고 나 사이에 겉치레나 입바른 소리는 할 필요가 없어. 서울에서 학교 다닌다더니 졸업도 했을 테고. 형주학원 물려받으려면 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 황의원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 아직 진로는 모르겠습니다. 그는 본론을 꺼냈다. 정보에 대한 댓가라고 민형수는 알아들을 것이다. 그것을 모를 위인은 아니다.

― 안수정 아시죠? 그는 흠칫 놀랐다.

― 네가 그 일 때문에 찾아왔다니 의외로구나. 뭐 다 지난 애기를 들춰서 뭐하게.

― 그 때 아이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저씨가 행방을 아시나 해서요.

― 그게 너한테 의미가 있나? 아.. 참 그렇지 의미가 있겠지. 그 애가 네 동생이라고 한다면 다른 얘기가 될 테니. 안수정한테는 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엄마가 당시에 워낙에 엉망이라서 보육원에 데려다 놓는다 어쩐다 했는데. 그 일은 내가 하지 않고 한민수 이장이 처리 했을 거야.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 하고 있었다.

― 가봐라. 용무 끝났으면..... 민수형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입을 열지 않는다면 당시 어머니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슬쩍 꺼내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민형수는 자신에게 악의가 없다. 어릴 적 그가 자신을 귀여워해줬던 기억도 있었다. 황정우는 몸을 돌려 나가려다 고개를 돌리고 멈칫하다 이야기를 꺼냈다.

― 혹시 말입니다. 송민지가 아저씨한테 뭔가 부탁한 게 있나요? 아버지도 알고 있는 거죠? 민형수는 별 관심 없다는 듯 한 말투로 말했다.

― 송민지를 조심해라. 내가 너하고 그래도 정이 있어서 마지막으로 해주는 얘기야. 더 묻지는 말고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

―네. 그러죠. 황정우는 그의 표정을 보고 짐작했다. 민형수는 어머니 사망과 관련된 배후를 알고 있을 것이다. 송민지 얘기도 하는 것을 보니 대충 짐작이 맞는 것 같다. 황정우는 공장을 나와 오피스텔로 향했다. 사실관계는 확인했으니 한민수를 만나는 것은 사실을 좀 더 확인한 뒤가 낫다. 한민수에게 사실을 확인하면 마무리 된다. 한민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수 십 년간 아버지 밑에서 일을 한 사람이다. 이제 건강이 좋지 않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진실을 알려달라고 설득하면 넘어올 것이다. 요양원에서 여생을 더 편하게 해 주거나 자식들에게 뭔가를 좀 찔러주겠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자신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한민수는 단순한 인간이다. 상황을 알아야 대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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