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나이에 대하여

by 최구길

올해 3월이었는가 보다. 도로에서 우회전으로 방향을 트는데 길가에 서 있던 차가 갑자기 뛰쳐나와 사고가 날 뻔했다.


나는 욱한 마음에 창문을 내리고 “아니, 그렇게 막 들어오면 어떡합니까?”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상대방도 창문을 열고는 냅다 말을 뱉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나는 순간 멈칫했다. 서른 초반의 그는 당당했고 별 시답지 않은 사람을 다 봤다는 투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원래의 나라면 바로 “아니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다시 소리를 지르고 싸움을 이어나가야 하는데 “아이고 됐습니다.” 하고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그런 나의 행동이 무척이나 못마땅하고 당황스러웠다. 누군가 낫으로 등짝을 찍더라도 하던 연설은 마저 다 마쳐야 한다는 주의로 살아왔는데 그런 기회를 피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의 일은 며칠간 잔상으로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뿔싸 그걸 알아버리고 말았다.


‘나이가 먹었구나. 이제 욕을 할 수가 없구나.’


마음과 생각이 아니 뇌의 기제(機制)와 메커니즘이 ‘이제 개싸움이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낸 거였다. 바로 정신적 노화의 시작이다.


사실 이런 조짐들은 마흔예닐곱부터 시작됐는데 쉰이 되니 딱 그렇게 되어 버렸다. 이른바 철이 드는 거고 주위를 의식하는 무생물 어른으로 전이 중인 셈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나이 먹음을 알아차린 건 십수 년 전인 서른네 살 때다. 내가 아닌 외부로부터의 경고였다.


강화도 어느 수로에서 2박3일 낚시를 마치고 차를 돌려 나가려던 순간 저 멀리서 어르신 한 분이 멈추라는 손짓을 하며 다가오셨다.


“아니 이걸 이렇게 해놓으면 어떡해?”


“네?”


차에서 내린 나는 뒷바퀴에 짓이겨진 콩싹들을 목도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몰랐습니다.”


“모를 나이가 아닌데...”


‘모를 나이가 아닌데...’


‘모를 나이가 아닌데...’


‘아, 이제 내가 삼십대구나.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봐달라고 말할 수 없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잊고 있었던 바로 그 나이가 다시 쉰에 찾아온 거다.


그러고 보면 몇 년 전부터 나는 두 가지 생활 습관을 고쳐먹었다.


하나는 젓가락 짝 맞추기고 또 하나는 빨래 뒤집기다.


귀찮기도 하거니와 생각해보면 별 의미도 없는 걸 수십 년 타성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 하기 시작했다.


모양이 좀 달라도 젓가락질에 지장이 없고 굳이 거슬리면 쓰는 사람이 바꾸어 먹으면 될 일이다.


빨래도 그런데 자기가 뒤집어 벗어놓은 걸 왜 양말이며 바지를 빨래해주는 사람이 일일이 뒤집어 널어줘야 하는가. 뒤집어 논 사람이 뒤집어 입으면 될 것을.


젓가락 짝 안 맞추고 빨래도 뒤집어진 채 너니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줄었다.


그러고 보면 마흔 중반부터 중독과 집착을 덜어내기 시작한 거 같다.


중학교 2학년부터 삽십여 년 간 피워대던 담배를 마흔넷에 끊었다. 삼사년 전부터는 사소한 욕도 안 하려고 노력 중이고 지난해부터는 모르는 사람 있는 자리는 안 간다. 올가을부터는 개인 SNS를 중단했고 며칠 전부터는 집술을 줄이고 있다. 말도 덜어내고 있는데 움직임까지 멈추면 다시 우주의 원자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부터 눈이 침침해지고 이가 흔들린다. 피부는 푸석해지고 머리는 주저앉고 있다. 눈물 콧물은 왜 또 이렇게 수시로 나오는 건지...


요즘 아내와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준영아~" "야, 최준영!" 아들 녀석 이름 부르기와 “내가 뭐 할라고 그랬지?” 혼잣말이다.


나이는 말과 생각, 행동과 체력 심지어 기억까지도 줄여준다. 생로병사의 주기에 따라 돌아갈 준비를 하는 건데 초기엔 막연히 두려웠지만 지금은 나름 자연스런 일이란 생각에 신기하고 재미있다. 호기심 기자의 관찰자 전환이다.


“생각을 조심해라. 생각이 말이 된다. 말을 조심해라. 말이 행동이 된다. 행동을 조심해라. 행동이 습관이 된다. 습관을 조심해라. 습관이 운명이 된다.”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의 말이라는데 생각이 운명이 되니 생각머리부터 바르고 참하게 하라는 소리다.


홀로 있을 때부터 언행을 삼가라는 말이 신독(愼獨)인데 아예 문제의 싹을 싹 다 자르거나 살아가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할 만큼 조심하면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일흔 살이 되어 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는 공자의 자기 성찰이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심장에 몇 발의 거대한 발끈이 남아 있음을 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맞섰던 93세 레지스탕스 투사의 “분노하라”는 일갈과 김수영의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는 말을 아직 되내이기 때문이다.


다시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기 전 나는 모든 중독으로부터 해방되고 발전적 사랑을 깨치고 현명한 어른으로 지구를 떠날 수 있을까?


晩愚 최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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