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고, 영재학교 입시 Story #12
아이의 중학교 입학하기 전, 8월쯤이었던 같네요.
레벨테스트 약속을 잡으며 한 달 정도 중학교 수학 3년 치 개념들을 복습하고 가겠다던 아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서툴게나마 채우고, 학원에 레벨 테스트를 하러 가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살짝 긴장하고 상기된 듯한 표정을 머금고 학원으로 향했습니다.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시험을 보고, 채점 후 원장 선생님과 마주하고 앉았습니다.
점수는 겨우 턱걸이였습니다. 얼마 전 같은 시험지로 학원 전체 시험이 있었고, 개강을 앞두고 꾸려진 그 반에서 성적이 가장 낮은 아이와 점수가 비슷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이윽고 “그럼 저 그 반에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라고 여쭙자 학원 원장 선생님께서는 그 반에 자리가 이미 꽉 찼다고 하십니다. 아마도 아이가 한 달 복습을 하겠다던 그 사이 재원생들의 시험이 치러지고, 반편성이 마무리된 듯했습니다.
아들은 그럼 언제 자리가 나는 거냐고 묻습니다. 중도 하차하는 아이가 생겨서 결원을 채워야 하거나 혹은 3개월 후 반편성 고사가 다시 치러질 때라야 자리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하십니다.
유일하게 빈자리가 하나 있는데, 3개월 전에 이미 영재학교 준비 과정을 시작한 반으로 현재 개강을 앞둔 반보다는 점수가 좀 높다고 하십니다. 과정을 시작한 지 3개월 지났기도 했고, 아들의 점수가 아랫반에서도 겨우 턱걸이라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지 잠시 과목 선생님들과 상의를 해보고 오시겠다고 합니다.
원장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신 그 사이, 아들에게 소곤소곤 '그래도 혼자 공부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결과네?' 라며 말을 건네며 긴장한 아들을 다독였습니다.
그 사이 아이의 시험지를 들고나가셨던 원장 선생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선생님들과 의논해봤는데, 학원을 다니면서 중학교 과정을 익힌 게 아니라, 혼자 공부해서 이 정도 풀어낸 거면 초반에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수업에 넣어줄 수는 있다고 하시네”라고요.
곰곰이 생각하던 아들이 재차 묻습니다. 새로 개강하는 반에는 진짜로 추가 인원으로도 못 들어가는 거냐고요. 불가능하다는 답을 듣자, 상급 반은 거절하겠다고 하는 아들.
에잉?? ㅠㅠ
조심스럽게 아들에게 “준규야 그래도 선생님들이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판단하셔서 자리를 내주시겠다고 하시는데 한번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아쉬운 마음에 권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는 않다며 단호하게 거절하는 아들. 아들은 이내 원장 선생님께 다음 반편성 고사가 언제인지 재차 묻습니다. 자기는 중간에 상급 반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3개월 후 다시 와서 시험을 치르겠다고 합니다.
에잉?? ㅠㅠ
그동안 공부도 조금 더 하고, 다시 시험을 보고 점수에 맞춰서 다른 친구들과 같이 시작하겠다고 말하는 아들.
의외의 반응에 원장 선생님도 빙그레 미소를 띠며, “그래~ 꼭 일찍 시작한다고 영재학교 합격하는 것도 아니야”라고 하십니다. 아들이 공부 조금 더해서 다음 레벨테스트에서 좋은 점수로 들어오겠다고 말씀드리자 원장 선생님은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책장에 꽂힌 교재를 꺼내십니다. “아이들이 앞으로 3개월간 공부할 교재야, 너도 이 책 가지고 공부해봐, 그리고 네 말처럼 3개월 후 개강 맞춰서 다시 시험 보러 와”라고 하십니다.
집에 돌아오며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지만,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아이의 반응에 빙그레 웃음이 났습니다. 그리고 허수아비처럼 앉아 있었던 제 모습과 학원 상담에 열성적으로 임하는 아들을 떠올려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잘 컸구나 싶었습니다.
그 정도 적극적인 마음이면 됐다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들에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야, 아들 멋지다, 그래도 혼자 공부한 것 치고 결과가 나쁘지 않네~"
"그런데 상급반에 넣어주겠다고 하시는데 왜 거절한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솔직히 공부하겠다 마음먹었을 때 얼른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도 한편 있어서 엄마 입장에선 마음먹었을 때 보내버렸으면... 하는 그런 마음에 조금 아쉽기도 했거든요.
“엄마, 저는 그래요. 남들은 이미 다 잘하고 있는데 혼자만 서툴고 어설픈 건 싫어요. 성적이 더 높은 반에 들어가는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거긴 공부해서 올라가면 되니까요"
"아예, 시험 성적이 턱없이 부족하면 학원 다니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었는데, 턱걸이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요. 좀 더 공부해서 3개월 후에 같은 조건에서 시작하고 싶어요.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라고 말합니다.
그러고 생각하니 레벨 테스트를 보러 가기 전, 학원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심 있으면 한번 정도 들어보고 학원을 갈지 말지 정하라며 관계자분을 통해 특별 혜택을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일언지하에 그렇게 들어보는 것은 별로 달갑지 않다며, 자기 혼자만 낯설게 수업 청강하는 것은 싫다고 하던 게 기억나더군요.
7살이 되기 전까지 도서관 수업, 문화센터 수업 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는 아들. 낯선 곳에서 긴장도도 높고, 불안도 높고, 잘하지 못할까 봐 아예 기회를 거부하던 아이였기에 한편 이해도 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아이가 학원에서 의외로 잘 적응하고 공부하며 성적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때 아이 스스로 내렸던 결정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비록 반에서 꼴찌 성적을 담당하며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배우며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올라갈 수 있었으니까요.
수업을 시작하고 어느 정도 지나 시험을 볼 때마다 아들은 차에 타자마자 오늘 시험이 어땠고, 몇 등을 했고 가 단골 멘트였습니다. 늘 신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처음엔 15등, 9등, 7등 이렇게 올라가더니 4등의 문턱에서 어느 날 그러더군요. 1~3등의 아이들과 4등의 점수 격차가 높아서 진입장벽이 높다나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자신이 말하던 그 진입장벽을 깨고 만년 2등을 하더니, 반년이 조금 지나자 상급반으로 친한 친구 몇 명과 올라가더군요. 그렇게 다음 목표를 잡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뭉클하기까지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게임에서 다음 레벨을 깨듯 자신이 노력하는 만큼, 시간을 들이는 만큼 향상되는 경험들을 하며 다음 목표를 세워 노력하는 모습은 내 아들의 새로운 면모이기는 했습니다. 하마터면 남들 다 잘하는 무리에 들어가 혼자만 서툴러서 자신감을 잃고, 지레 포기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아이 스스로 자신이 어떤 컨디션에서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아이 스스로 자기가 최상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겠구나 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일상을 살피고, 아이의 행동과 상태들을 면밀히 관찰하기도 하며 누구보다 아이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어떤 다른 이보다 엄마만큼 아이를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아이 자신이라는 점.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실력 발휘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주눅이 많이 드는지 스스로 너무나 잘 안다는 것이죠.
그래서 가끔은 엄마가 생각하는 정답보다 아이가 풀어가는 해답이 더 현명한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