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고, 영재학교 입시 Story #9
“엄마 어쩌죠? 엄마는 제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묻는 아들.
아들은 고심하는 표정으로 묘한 미소를 머금고 저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다름 아닌 학원 레벨 테스트를 보러 갈 것인지 말 지를 놓고 중대한 고민 중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는 입시 학원에 발을 들여놓을 것인가 말 것인가, 나아가 영재학교 입시 준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결국 홈스쿨링을 계속할 것인가 중학교 입학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남들이야 아이 수학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고 싶다며 쉽게 가는 학원 레벨테스트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서 학원 레벨 테스트가 의미하는 바는 그랬습니다.
“엄마는 네가 충분히 고민해 보고 결정했으면 해. 그리고 어떤 결정을 하든 환영해. 모든 결정에는 장단점들이 따르기 마련이고, 그저 그 과정이 즐거웠으면 해”
내 말을 듣던 아들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더니, 그럼 장단점이 무엇인지 이야기해달라고 합니다.
자, 일단 네가 레벨 테스트받으러 가지 않는 결정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제가 좀 피곤하게 생각하는 스타일 ㅎㅎㅎ)
학원에 가서 대부분의 시간 수업을 듣고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입시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일 테니 영재고 준비에 에너지를 쏟지 않겠지. 엄마는 네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초등 6학년이라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늘 말하지?
너는 운이 좋게도 네가 좋아하는 종이접기를 실컷 하며 종이접기 책 출간도 준비하고 있고, 좋아하는 로봇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었지. 덕분에 로봇대회에서 상도 받고, 영재 발굴단도 출연해보고, 학교 밖에서 충분히 즐겁게 많은 성과들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즐겁게 좋아하는 것들 하면서, 검정고시 보고, 네가 원하는 것들을 이룰 수 있을 거야. 원한다면 대학도 충분히 갈 수 있을 테고. 시간 적으로는 더 자유로 울테고, 더 많이 놀 수도 있고, 더 많이 여행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것들 위주로 하면서 말이지.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길은 아니지만, 충분히 경쟁력 있고 즐겁고 가치 있는 길이라 생각해.
홈스쿨링을 지속해 나갈 확률이 클 테니 앞으로 계획하고 해 나가야 하는 것들에 대해 조금은 더 막연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과정들이 지금껏 그래 왔듯 쉽지는 않을 거야.
얼마 전 네가 로봇 대회 나갈 때 네와 협업할 팀원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처럼, 너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배울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은 집단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야. 그만큼 관심사가 비슷한 동료나 멘토를 찾아 나서는 길이 조금은 어렵기도 하겠지.
이번에는 학원을 다니며 수·과학 공부하고, 영재고 입시를 준비하는 결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영재고를 들어갔다고 가정했을 경우, 지금보다는 비슷한 것들을 공유하고 협업할 수 있는 친구들, 멘토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서 좋을 것 같기는 해.
학교 생활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시시하거나 지루해서라기 보다는 너를 도전하게 하는 것들이라 나쁘지만은 않을 거야. 그리고 지금이야 너를 로봇영재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만, 엄마는 네가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꼭 그 틀 안에 너를 가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수학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모인 그 집단에서 로봇보다 더 흥미롭고, 너를 빠져들게 하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로봇에 대해서 협업할 친구들을 만나서 신나게 팀워크를 경험해볼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거야. 혹시 알아? 거기서 만난 학교 친구랑 나중에 창업하게 될지~
그리고 누구보다 자유롭게 생활하던 네가 학원을 다닌다는 것은 더 힘든 과제일지도 몰라. 하지만 네가 그 과정들을 잘 해내고 난 후 분명히 배우고, 얻어지는 것들 또한 있으리라고 생각해.
일단 영재고를 지금 당장 입학할 자격이 충분치 않고, 그만큼의 천재도 아닌 이상 학교 입학에 필요한 기본 자질들을 갖추기 위해 학원을 다니게 될 텐데... 엄마가 알아본 바로는 학원에서 해야 하는 공부 양도 어마어마한 데다 그 과정이 꽤나 힘들다고 해.
지금 이렇게 충분히 즐겁고 하루하루를 자유롭게 보내던 네가 그 답답한 학원 교실에 앉아 별로 궁금하지 않은 공부를 하는 게 과연 옳은지 잘 모르겠어. 그리고 그간 네가 흥미를 가지고 로봇이나 종이접기를 해왔던 방식과는 사뭇 달라서, 어쩌면 공부가 재미없어질 수도 있어. 또한 네가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했더라도 결과가 합격이 아닐 수도 있어. 물론 합격이 꼭 좋은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과정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들은 분명 있을 테니까! 그리고 설령 영재고에 합격해서 들어갔다 하더라도, 막상 다녀보니 그 학교가 네가 기대했던 곳이 아니라 관두고 싶어 질지도 모르는 일이고.
이렇듯 두 선택지 모두 장단점이 있어. 다만 어떤 선택을 하든 네가 그 과정에서 너무 지옥 같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해. 이왕 선택한 것이라면 그 과정에서 좀 더 즐겁게 의미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라.
길고 긴...
두 선택지의 장단점들과 온갖 변수들을 쭉 이야기를 해주고,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보라고 하자 씩 웃습니다. 아들은 퇴근 후 돌아온 아빠에게 정황들을 설명하고, 의견을 묻습니다. 아빠에게서도 비슷한 답이 돌아오자, 얼마 안 있어 방에서 나오는 아들.
엄마 아빠, 저 결심했어요.
일단 학원 레벨 테스트받으러 가볼래요.
영재학교 입학시험 공부 한번 해볼래요.
“미리 고등학교 과정 수학 과학을 공부해 놓는 것,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엄마 말씀처럼 꼭 합격하는 것만이 좋은 결과가 아니라면, 혹시 떨어지더라도 미리 해놓은 공부를 고등학교 가서도 써먹을 수 있을 테니 미리 해놓는다고 해서 손해는 아닐 것 같아요. 엄마 말씀처럼 떨어지는 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라고 하시니 공부해서 나쁜 건 없을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레벨 테스트 하나를 놓고 깊은 이야기와 고민 끝에 아이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운 좋게도 교육 관계자분이면서 준규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고 계신 어른 한 분을 통해 한 입시학원을 소개받고, 원장님께 전화를 드리기 위해 아들과 머리를 맞대고 앉았습니다. 저는, '네 일이니 네가 전화해봐라', 아들은 '부끄럽다' 하며 서로에게 미루다 결국 함께 앉아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인사를 전하자 학원 원장 선생님께서 내일 테스트하러 올래라고 묻습니다. “내일요?” 하고 잠시 당황하던 아이가 원장 선생님께 말합니다. “선생님 제가 지난주까지 로봇 대회 출전을 하느라 한 달 넘도록 로봇만 했어요. 수학 공부를 한 달 넘게 잠시 멈춘 상태라 중학교 개념 정도라도 한번 복습을 하고 가고 싶어요”라고요.
원장 선생님이 웃음 띤 목소리로 “얼마 정도 시간을 주면 되니?”라고 묻자 “3~4주 정도?”라고 대답하는 아이. 예상 못했던 아이의 반응에 은근 대책이 없는 아이는 아니다 싶더군요. 그렇게 아들은 그날부터 3주 정도 계획표를 짜는 것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물론 3주 동안 엄청 열심히 복습하는 모습을 기대했지만, 뭐 그 정도는 아니었답니다.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허술했지만, 겨우겨우 개념 정도를 한번 훑어보고 레벨테스트를 드디어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이후의 이야기를 추후 포스팅에서 이어서 들려드리겠지만, 부모님들께 꼭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내 아이의 학습 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 한번 체크해보고 싶다며 학원 레벨 테스트를 많이들 데려가십니다. 물론 그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사실 레벨테스트만 했다고 해서 갑자기 학원 가서 공부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기란 어렵습니다. 어떤 동기나 전후 사정없이, 엄마가 그냥 테스트만 해보자는 설득을 거절할 수 없어 따라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마저도 안 간다고 하는 아이들도 많고요.
좋은 성적이 나와 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다 해도 준비된 마음으로 간 것이 아니라서 아이는 싫다고 말할 확률이 높습니다. 혹은 성적이 엄마 바라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엄마는 또 고민이 시작됩니다. '공부를 너무 안 시켰나, 그 아래 학원에 레벨테스트를 다시 봐서 지금부터라도 공부시켜야 하나' 하고 말이죠.
결국 레벨 테스트 이후 돌아오는 것은 불안감일 수밖에 없습니다. 갈 수 있는데 가지 않겠다는 아이를 마주해야 하거나 갈 수 없어서 불안하거나...
자기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할 수 있다면 참 좋죠. 레벨테스트라는 것이 자기 수준에 맞는 학습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거라 테스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가볍게 여기고 테스트를 자꾸 하게 되면 결국 아이는 테스트에 끌려다니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기 쉽습니다. 잘 봐도 갑자기 뜬금없이 학원 설득이 들어올 테고, 못 보면 또 다른 학원의 레벨테스트가 이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사실, 이 레벨테스트를 가기 전의 상황들에 좀 더 신중하고, 아이가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공을 들이는 과정이 더 필요합니다. 그래야 테스트 이후 아이 스스로, 내가 너무 공부를 못하나?, 혹은 좀 더 잘하고 싶은데 학원을 다녀야 하나하나? 하는 마음을 키울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는 학습동기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을 만큼 너무 어린 나이이거나 너무 빈번하게 이런 경험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학원을 '보낸다'고들 표현합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부모 주도적으로 보냈다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뭐 학원 하나 보내는데 그리 복잡하고 진지하냐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 하나에서부터 아이가 고민하게 하고, 부모는 아이에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지난 경험을 기반으로 장단점 정도를 이야기해 줌으로써 아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하거나 헤아리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알려주는 역할 정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아이 인생에 결정권자가 되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저라고 왜 마음속에 아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영재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 없겠습니까. 어찌 보면 홈스쿨링보다 훨씬 더 편하고, 제가 신경 쓰지 않아도 너무나 좋은 멘토들이 넘쳐나는 학교일 텐데 당연히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부모는 한 발짝 뒤에서 뒷짐 지고 태연한 모습(진심이 아니더라도 그런 척^^)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아이는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작은 경험부터 해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