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활 가이드 #8
예전에 준규가 초등 3학년 즈음인가, 지인이 자신의 딸들과 준규를 데리고 어떤 행사에 다녀오신 적이 있습니다. 통제가 어려운 아이라 살짝 걱정이 되면서도 어머님이 워낙 씩씩한 편이라 준규를 함께 데려가시겠다는 말에 얼씨구나 하며 아들을 딸려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 거의 도착해간다는 전화에 마중을 하러 나갔는데, 저만치 계동길에 신난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쇼미 더 머니'에서나 볼법한 몸짓으로 앞장서 걷는 준규가 보입니다.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온 어머님을 보며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힘들었죠~"라는 저의 말에 “언니, 언니는 준규를 어떻게 데리고 다녀요? 저 오늘 기빨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라고 합니다.
계동길에서 온몸으로 래퍼처럼 걷고 있는 준규 뒷모습을 가리키며 '저런 거요?" 했더니, 격하게 공감하며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넘치는 에너지에 적잖이 당황했다고 말합니다.
자기 딸들처럼 손잡고 조용히 동행하는 게 아니라 앞서가며 몸으로 신나는 기분을 마구 표현하며 걷는다던가 택시에서 운전수 아저씨와 수다를 떨기도 하는 등 뭔가 크게 잘못을 한 건 아니지만 통제되지 않는 느낌에 기 빨리는 기분이었다고요.
제가 막 웃으며 “힘들었죠? 원래 좀 그래요~ 오늘 엄마 없이 친구랑 같이 가서 기분이 엄청 좋았을 거예요, 너무 고마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의 그런 행동에 대해, 실내나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곳에서는 조심하는 법을 가르쳐주지만 야외에서는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되도록 그냥 두는 편이었습니다. 말린다고 갑자기 얌전해지지도 않거니와 모든 상황에서 통제하기보다는 실내나 협소한 공간, 타인에게 피해를 미칠 영향이 큰 곳에서만 제한을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아이의 그런 성향들을 고려해 웬만해서는 사람 많은 실내보다는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게 하는 편이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단둘이 해외 배낭여행을 다닐 때면 아이의 그런 자유분방한? 행동은 오히려 문제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그네들에게 호감을 살 때가 더 많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기도 했습니다.
엄마들 입장에서는 참하게 “저 오늘 함께 공연 보러 가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로 기분을 표현하면 참 좋으련만 그런 정답 같은 아이는 늘 내 자녀가 아니라는 게 현실인 법이죠 ㅋㅋㅋ
그나마 긍정적인 기분을 몸으로 표현하는 건 난감? 하고 때론 붉어지는 얼굴을 감내해야 하지만 그래도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하지만 불쾌하거나 화가 나는 부정적인 기분을 몸으로 표현하면 난감함을 넘어 불란이 생기거나 사고가 나고 맙니다. 그 부분은 분명히 어른이 제한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네가 나하고 놀아주지 않아서 화가 나” 라던가 그냥 아이처럼 울어버리기라도 하면 차라리 달래면서 마음을 공감해주면 됩니다. 하지만 성격이 강하거나 급한 친구들은 저도 모르게 조절보다 감정이 앞서서 친구를 밀치거나 때리거나 감정을 격하게 몸으로 표현하고 마는 실수를 합니다.
화난다고 친구를 밀어버리거나, 때리는 행동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아이가 고쳐야 할 행동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알려주고 끝나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도 서툴기에, 남들 앞에서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하고, 혹은 상대 피해자의 부모들을 의식해 내 아이를 과하게, 혹은 지나치게 비난하고 추궁하고 감정적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그런 행동을 한 내 아이를 나쁜 아이로 몰아가는 실수들을 하기도 합니다. "왜 그랬어, 엄마가 친구 때리면 나쁜 사람이랬지? 빨리 사과해, 사과 안 해? 그렇게 하면 돼, 안돼" 하면서 아이를 궁지로 몰아가기도 합니다.
물론 부모가 잘못된 행동을 이성적으로 명료하게 꼬집어 준다고 해서 단번에 고쳐지지 않을 수도 있기에, 혼내는 강도를 높여서 혼쭐을 내줘야 하나, 아예 친구랑 못 놀게 벌을 줘야 하나 별별 생각들을 하지만 어떻게 단기간에 쉽게 고쳐지겠습니까? 또 이야기하고, 안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가이드해주고, 끊임없이 한계를 설정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과하게 화를 내며 아이를 쥐 잡듯이 혼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이성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면서도 솔직히 뜨끔할 때가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어른인 나부터도 상대에게 기분이 나쁠 때 아이들처럼 상대를 밀치거나 때리지는 않지만, 나빴다고 솔직히 말하기보다는 “괜찮아요~”라고 세상 좋은 사람인 척 말해놓고 가스 라이팅 하듯 상대 속을 교묘히 뒤집어 놓거나 속으로 “내가 너하고 앞으로 상대를 하나 봐라’ 하며 생각할 때도 많았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어쩌면 아이들은 감정 표현이 조금 서툴지는 모르지만 감정 자체를 인식하고 표출함에 있어서는 오히려 어른보다 더 솔직하기 때문에 개선될 여지도 크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처럼 아이들은 말을 배우기 전에는 울음과 웃음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말을 배우면서는 그 감정 표현에 있어서 조금 더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워나갑니다. 그런데 저처럼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 아래서 자라서 그런가 준규도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참 서툽니다.
생기기는 예민해서 느끼는 감정들이 엄청 더 복잡하고 까다롭고 예민한데 표현하는 감정의 언어들이 너무 부족해서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 화가 났다로 일축되는 경우도 참 많았습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EQ의 천재들이라는 책 시리즈를 읽어줘 보기도 하고, 감정을 수치로 표현해, 이해하기 쉽게 1 아니면 10 만큼이 아니라 3만큼의 화, 7만큼의 화가 날 수도 있다는 것들을 가르쳐주던 기억도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묵이나 회피로 감정 표현을 하는 것에 익숙한 제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감정 표현을 말로, 그것도 상냥하게,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언제나 숙제였고 여전히 숙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러한 상대에게서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표현하고 나누려면 그만큼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였기에 물리적으로 그런 빈도는 또래에 비해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늘 제게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만드는 것을 0순위로 두게 만들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잠깐 있는데, 초등 4~5학년 즈음 영재학교 존재를 알고 학원에 대해 궁금증을 갖는 아이에게 학원을 미루고, 오히려 뮤지컬 극단을 권했던 적이 있습니다. 평소 박치, 음치에 몸으로 하는 것도 썩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 얼핏 보기에는 그 부분들을 메우고 개선하려던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른 연유가 있었습니다.
우연히 뮤지컬 극단 소개를 받고 설명회에 가서 느낀 것은 ‘아 바로 이거다’ 였어요. 그날 아이들이 했던 샘플 수업은 아이들을 네 그룹으로 나눠 각 그룹별로 계절을 표현하는 미션이었답니다. 아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표정과 몸짓으로 가을을 어떻게 표현할지 의논하고 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즐거웠다고 하더군요.
제가 극단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건
아이들이
몸으로 에너지와 감정들을
마음껏 발산하며
몸의 언어들을
긍정적으로 표출하는 방식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매주 친구들을 주기적으로 만나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싸우기도 하고, 투닥거리고,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공감해주고, 내 감정을 표현하며 서로 화해해 나가는 과정들을 경험할 수도 있고, 공연을 준비하며 협업의 경험들까지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이 아이가 초등학교 때 익혀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몸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익히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서 어우러지며 협업을 경험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들을 뿜으며 예술을 몸으로 익히고 배울 수 있는 너무나 좋은 기회였습니다.
극단을 다니던 중 1박 합숙 캠프를 다녀온 준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엄마, 저 드디어 이상한 나라를 찾은 것 같아요"
에너지 넘치고, 엄청 튀는 아이들 같지만, 그런 친구들이 다 모여 있어서 그게 너무 정상처럼 느껴진다고 하더군요. 학교 같으면 가만히 있도록 자제시키기 바쁜 아이들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여주고 오히려 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환경이라 너무 감사했습니다. 아들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다중인격에 에너지가 저보다 넘치는 친구들은 태어나 처음 봤어요 엄마"라고 말하며 아들은 너무나 신나 있었습니다.
어딘가 책에서 읽었던 20세기 최고의 발레리나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의 안무가 질리안 린(Gillian Lynne)의 일화가 생각나더군요.
그렇게 준규는 당시 토요일이 가까워지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극단 가는 날이 다가오기 때문이라더군요. 나비효과처럼 극단을 다니고부터 인생 자체가 즐거워졌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로 인해 일주일이 기다리는 고통과 설렘으로 가득하다고도 말했습니다. 비단 준규뿐만이 아니라 극단의 같은 팀 친구들도 모두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동네 백수처럼 집과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준규는 토요일 아침이면 아침잠조차 설치고 일찍 일어나 극단 가는 길에 나섭니다. 극단 마치고 전철역까지 친구들과 함께 걸어오는 길이 좋아서 아빠가 회사 근처 갈 일 있다고 차로 태워 온대도 손사래를 치며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합니다.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장벽이 높은 준규 때문에 걱정이 많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함께 논다고 해서 친구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고, 친구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다 보니 아무 나하고 서슴없이 잘 놀면서도 준규 기준에서는 늘 친구가 별로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랬기에 항상 홈스쿨링을 하며 또래와 어울림이 적은 상황들은 늘 마음이 쓰이는 구석이기도 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시작해서 우리 집 대문을 늘 친구들에게 열어두어야 했고 늘 친구들 밥 해먹이기, 우리 집에서 실컷 놀도록 해주기, 우리 집에서 며칠씩 재우기까지, 저만의 방법으로 우리 집 문턱을 낮춰놓고 준규만의 친구가 생길 수 있도록 참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네 집에 초대받거나 함께 하기에 준규는 늘 상대에게 부담스러운 아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 눈에, 아들은 늘 외로워 보였습니다. 자기를 온전히 받아들여주고 자기를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없어서 쓸쓸해 보였습니다. 때론 Airbnb로 온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고 북촌 탁구 관장님이 친구가 되어주시기도 하고 옆집 꼬마들과 생활 속에서 늘 만나며 준규 옆에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갔습니다.
물론 지금은 친구 걱정 안 합니다. 동네 친구, 같이 공부하는 친구 등 사춘기니만큼 친구가 젤 중요한 시기이고 자기들끼리 깔깔거리기 바빠 제가 걱정할 틈도 없습니다.
'극단 날자(나는 자동차)'를 5학년 봄부터 2년을 다니며, 7~8년을 기다려온 준규의 친구에 대한 목마름이 한꺼번에 해소되었습니다. 늘 극단에 다녀오는 날이며 극단 친구들 이야기로 재잘재잘 조잘조잘…. 어느 주말이면 친구들을 떼로 데려와 방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친구에게 고백한다는 친구를 두고 다들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며 감정 표현에 대해 자기만의 방식들을 서로 주고받기도 하고, 외모 꾸미기에 관심이 없던 준규라도 친구들의 관심사를 맞추며 장단을 맞춰주기도 하더군요.
아이는 감정 표현이 때로는 과해 보이고
에너지와 텐션이 너무 세서,
때론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내내 주눅 들어 있다가
드디어 자기만의 이상한 나라를 찾은 듯했습니다.
처음에는 준규처럼 에너지 넘치는 친구들이 단순히 많아서 인가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본능적으로 몸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때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으로 친구를 때린다거나 너무 기쁠 땐 춤을 추며 감정 표현을 합니다. 그리고 조금씩 커가며 몸의 언어보다는 말의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법에 서툰 아이나 어른들은 그 안에서 오해가 생기고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극단 안에서 아이들은 감정을 몸의 언어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예술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뮤지컬 작품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법부터 배우게 됩니다. 때로는 노래로, 눈빛으로, 춤으로, 몸짓으로, 심지어 목소리 톤으로 다양하게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보통 선진국들에서는 어린이들의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예술과 관련된 활동들이라고 합니다. 학습보다 훨씬 더 중요시한다고 들었습니다.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극단 친구들을 만난 지 한 달 만에 몽땅 자기 친구들이라고 친구의 영역 안에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음이 통했고, 마음이 통하도록 어른들이 그 안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언어를 읽고, 공감해주고, 때론 자기의 다른 의견을 내가며 몸의 대화와 언어의 대화를 모두 할 수 있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보여주기도 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나갈 수 있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