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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원 May 02. 2022

생각이 없어졌다.

아니 없앤 건가

    아무 생각이 없다.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 어떤 생각도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걱정이 있는 것도, 큰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하는 그런 자잘한 고민 몇 가지 안고 살아갈 뿐. 

그냥 크게 재미도 감동도 슬픔도 우울함도 없고 미동이 없다. 내 표정은, 내 껍데기는 평소처럼 똑같이 울고 웃고 하지만, 내 머리는, 내 안의 알맹이는 미동도 않는다. 그렇다고 미동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마음인가 싶겠지만, 정말 그렇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재밌는 걸 봐도 딱 그 순간이지 곧바로 잔잔해졌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게 아닐까, 쉼이 필요한 게 아닐까. 다양한 생각들을 해봤다. 근데, 당장은 그냥 아무것도,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이 상태를 그냥 내버려두고 싶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칠수록 더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아서 손쓰지 못했다. 내 인생에 새로운 자극들은 지난 몇 년간 충분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 미래에 대한 수없는 고민, 불확실한 미래와 현재에 대한 끝없는 불안감. 이 모든 자극은 날 0.1초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나는 항상 무언가에 씐 듯 성장해야 했고, 나아가야만 했다. 처음에는 나름 명확했다.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고, 실제로도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내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도전이 어디를 향하는 지를 알수 없었고, 나는 왜 그러한 도전을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지 못하는 무지성 도전은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나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지 못했다.

   " 너무 바쁘게 살았지, 좀 쉬어 제발." 내가 근 몇 달간 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쉰다고 뭐가 달라질까. 했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다들 바삐 제 갈길 가는 이 세상 속에서 잠시라도 쉬면 뒤쳐지 않을까 스스로를 계속 바쁘게 몰아세웠다. 돌아보면, 나는 항상 나 자신에게 숨구멍이 될만한 것들이 있어야 더 좋은 효율을 내고 삶을 더 즐기는 경향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삶이 공부와 일로만 가득해져서 일에만 집중하는 건 항상 1년이 한계점이었다. 중간중간 길지 않은 여행이어도 좋았고, 3-40분 정도의 간단한 운동이어도 좋았고, 그냥 책 읽고, 지금처럼 글만 써도 위로를 받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스스로 만들어냈었다. 이번에 종강하면 미련 없이 휴학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서비스 기획 공부랑 관심 산업군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 물론, 중간중간 열심히 놀기도 할 거다. 걱정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ㅎ..

    아무 생각이 없다더니, 이렇게나 많이 생각을 한다 내가.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내 안의 모든 건 내 마음이 만든 허상이다.' 나 자신이 스스로 보기에 되게 별로다 싶은 생각을 할 때, 이상적인 허상(생각)을 새롭게 만들어서 입히면 되지 않을까. 계속 스스로를 속이다 보면 그걸 진실이라고 믿게 되기도 하니까. 앞으로 지금같이 무기력한 생각이 들 때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열렬히 거짓말쟁이가 되어야겠다. '내 인생 이보다 더 잘살아 낼 수도, 재밌을 수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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