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트리밍 시대, '곡'이 아닌 '기분(Mood)을 산다

장르의 종말과 기능성 음악(Functional Music)의 부상

by JUNSE

Sound Essay No.47

스트리밍 시대, '곡'이 아닌 '기분(Mood)'을 산다

장르의 종말과 기능성 음악(Functional Music)의 부상

사진: Unsplash의 Viktor Forgacs

당신은 지금 무엇을 검색하고 있습니까?


스마트폰의 음악 앱을 켰을 때, 검색창에 무엇을 입력하시나요? 1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좋아하는 가수 이름이나 특정 앨범 제목을 쳤습니다. "비틀스", "라디오헤드", "조성진". 우리는 아티스트가 창조한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호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유튜브 뮤직이나 스포티파이의 검색창을 채우는 키워드들은 사뭇 다릅니다. '비 오는 날 듣기 좋은', '카페에서 일할 때', '운동할 때 텐션 올리는', '잠 잘 오는'.


우리는 더 이상 음악을 '작품'으로 찾지 않습니다. 우리는 음악을 나를 둘러싼 공기를 바꾸는 '도구'이자, 내 현재 상황을 보조해 주는 '배경(Background)'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과거 레코드 가게의 진열장이 '락', '재즈', '클래식'이라는 장르(Genre)로 나뉘어 있었다면, 2025년 스트리밍 플랫폼의 메인 화면은 철저하게 맥락(Context)기분(Mood)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이 글은 음악이 감상용 예술에서 일상의 배경을 채우는 '기능성 음악(Functional Music)'으로 변화해 온 과정을 추적하고, 이러한 소비 패턴의 변화가 어떻게 음악 창작의 문법까지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지, 그 거대한 산업적 흐름을 분석합니다.



린 백 리스닝(Lean-back Listening): 등을 기대고 듣는 시대

출처 www.whatsbestforum.com '"Lean back" or "Lean in" listening?'

음악 청취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가사와 멜로디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린 포워드(Lean-forward)' 방식입니다. LP를 턴테이블에 올리고 소파에 앉아 앨범 재킷을 읽으며 듣던 시절의 태도죠. 다른 하나는 몸을 뒤로 기대고 음악을 배경음악처럼 흘려듣는 '린 백(Lean-back)' 방식입니다. 현대의 스트리밍 시대는 압도적으로 '린 백'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음악을 듣기 위해 시간을 내지 않습니다. 일을 하거나, 운전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동안 'BGM'으로 음악을 소비합니다. 여기서 음악의 역할은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나의 활동'이고, 음악은 그 활동의 효율을 높이거나 분위기를 돋우는 '조연'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스트리밍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통해 가속화되었습니다. 스포티파이의 성공 요인은 방대한 음원 보유량이 아니라, 사용자가 고민할 필요 없이 "지금 기분에 딱 맞는" 음악을 끊임없이 틀어주는 큐레이션 능력에 있었습니다. 사용자는 이제 선곡의 주도권을 기꺼이 알고리즘에 이양합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네가 알아서 틀어줘, 단 내 집중을 방해하지는 말고." 이것이 현대 청취자의 무언의 요구입니다.



튀지 않아야 살아남는다: '칠(Chill)'과 '로파이(Lo-fi)'의 경제학

사진: Unsplash의 The Maker Jess

소비자가 '배경음악'을 원하자, 공급자(음악가)들은 그에 맞춰 음악의 형태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대중음악은 청자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 강렬한 훅(Hook)과 다이내믹한 전개를 무기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노동요'나 '수면용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튀는 음악은 죄악입니다. 갑자기 고음이 터져 나오거나 리듬이 급격하게 변하면, 사용자는 "어? 집중 깨지네"라며 다음 곡으로 넘겨버립니다.


그 결과, '튀지 않는 음악'이 스트리밍 시대의 새로운 미덕이 되었습니다.


미니멀한 구성: 복잡한 악기 편성 대신 단순하고 반복적인 루프를 사용합니다.


부드러운 질감: 자극적인 고음역대를 깎아내고, 따뜻하고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패드나 로파이(Lo-fi)한 질감을 선호합니다.


사라진 기승전결: 곡의 구조에서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없애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에너지를 유지합니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휩쓴 '로파이 힙합(Lo-fi Hip Hop)'이나 '칠(Chill) 바이브' 음악의 유행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린 백 리스닝'이라는 소비 환경에 가장 최적화된, 진화론적으로 선택받은 장르입니다. 사람들은 아티스트의 이름을 몰라도, 그 음악이 주는 '편안한 분위기'를 소비하기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구독합니다. 음악이 일종의 '청각적 인테리어 소품'이나 '향초'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기능성 음악의 미래 : 개인화된 사운드스케이프

출처 : www.digitalminimalist.com 'Popular focus music app Endel adds guided exercises'

이제 음악 산업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넘어 '웰니스(Wellness)'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독일의 스타트업 '엔델(Endel)' 같은 서비스는 아예 아티스트가 만든 음악이 아니라, AI가 실시간으로 생성하는 기능성 사운드스케이프를 제공합니다. 사용자의 심박수, 날씨, 시간대 정보를 바탕으로 집중력을 높여주는 주파수와 리듬을 실시간으로 합성해 냅니다. 여기서 음악은 예술이라기보다, 뇌파를 조절하고 신체 리듬을 최적화하는 '디지털 약'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더욱 '목적 지향적인' 음악 소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우울함을 달래주는 주파수", "창의력을 높여주는 템포", "깊은 잠을 유도하는 화음". 음악은 이제 감상의 대상을 넘어, 우리의 삶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최적화하는 도구로서 그 기능적 가치를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의 의미


물론, 이러한 흐름이 음악의 예술적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음악을 그저 '배경'으로만 소비하다 보면, 아티스트가 치열하게 고민한 메시지와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놓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분'과 '맥락'을 사는 시대는 우리에게 음악의 또 다른 힘을 일깨워 줍니다. 음악은 반드시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아야만 빛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지루한 출근길 버스 안에서, 외로운 자취방의 저녁 식탁 위에서, 혹은 치열한 업무의 현장 속에서,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위로하며 일상의 빈틈을 메워주는 힘.


우리는 지금 음악을 '감상'하는 시대를 지나, 음악을 '공간'으로, 그리고 '생활' 그 자체로 경험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는 당신에게 어떤 공간을 선물하고 있나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엘리베이터 뮤직 : 생성형 AI가 노리는 배경음악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