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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의 경제학 : 스트리밍 정산 시스템 작곡법

클릭 한 번이 돈이 되는 순간, 현대 상업 음악의 구조조정

by JUNSE

Sound Essay No.49

'30초'의 경제학: 스트리밍 정산 시스템 작곡법

클릭 한 번이 돈이 되는 순간, 현대 상업 음악의 구조조정

출처 : www.koreaherald.com 'YouTube Music's Android users more than double on-year in Feb: data'


당신의 엄지손가락이 작곡가를 해고하고 있다


지금 당장 스포티파이나 멜론 차트의 TOP 100을 들어보십시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나요? 1분 넘게 분위기를 잡으며 서서히 고조되는 전주(Intro)는 멸종했고,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보컬이 튀어나오거나 가장 자극적인 후렴구(Chorus)가 귀를 때립니다. 노래의 길이는 3분을 넘기기가 힘듭니다. 2분대, 심지어 1분 후반대의 곡들이 차트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왜 음악은 점점 더 급해지고, 짧아지고 있는 걸까요? 요즘 사람들의 참을성이 없어져서일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진짜 이유는 음악 플랫폼이 정해놓은 아주 단순하고도 잔인한 '정산 규칙' 때문입니다.



"30초 이상 재생되어야 스트리밍 1회로 인정한다."

출처 : magazine.musicow.com '1곡 재생에 0.7원? 스트리밍 수익 구조 완전정복'

이 한 문장의 경제학적 규칙이,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작곡의 문법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이 글은 '돈'이 어떻게 '예술'의 구조를 재조립했는지, 그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주(Intro)의 죽음: "지루하면 0원입니다"

출처 : /www.thinkwithgoogle.com 'To stand out in the Shorts feed, make ads that blend in'

과거의 음악, 예컨대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의 시대에는 1~2분에 달하는 긴 전주는 미덕이었습니다. 그것은 거대한 서사를 위한 웅장한 예고편이자, 청취자를 음악의 세계로 천천히 초대하는 '전희(前戱)'였습니다.


하지만 스트리밍 시대에 긴 전주는 '재무적 자살행위'입니다. 청취자가 전주를 듣다가 지루함을 느껴 29초에 '건너뛰기(Skip)' 버튼을 누르면, 아티스트와 작곡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정확히 '0원'입니다. 29초 동안 당신의 음악을 들었어도, 시스템상으로는 아무도 듣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생존을 위해 전략을 바꿨습니다.


전주의 삭제: 전주를 아예 없애거나 5초 이내로 줄입니다.


두괄식 구성 (Chorus First): 노래의 하이라이트인 후렴구를 맨 앞으로 가져옵니다. "일단 맛있는 것부터 먹여줄게, 제발 나가지 마"라는 애원입니다.


보컬의 즉각적 등장: 연주곡보다는 사람의 목소리가 청취자를 붙잡아둘 확률이 높습니다. 시작하자마자 가수가 노래를 부르거나 랩을 뱉습니다.



이제 음악은 '기-승-전-결'의 드라마가 아니라, 첫 30초 안에 모든 승부를 봐야 하는 '숏폼 광고'가 되었습니다.



노래는 왜 점점 짧아지는가: 회전율의 경제학

출처 : www.listenfirstmedia.com 'What Short Form Video Platform Should Your Brand Be Using?'


또 하나의 흥미로운 현상은 곡 길이의 축소입니다. 90년대만 해도 4~5분짜리 대곡들이 흔했지만, 최근 빌보드 히트곡들의 평균 길이는 3분 미만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2분 30초짜리 곡도 흔해졌죠. 여기에도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스트리밍 수익은 '재생 횟수'에 비례합니다. 10분짜리 대곡을 한 번 듣는 것과, 2분짜리 짧은 곡을 한 번 듣는 것의 정산 금액은 (플랫폼마다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그렇다면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무엇이 이득일까요?


당연히 곡을 짧게 만들어 청취자가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곡을 듣게 하는 것(회전율 높이기)입니다. 앨범 전체를 짧은 곡들로 채우면, 팬들이 앨범을 통으로 들었을 때 발생하는 총 스트리밍 횟수가 늘어납니다. 이는 곧 수익의 증가로 이어집니다.


과거에는 LP판의 물리적 한계 때문에 곡 길이를 조절했다면, 지금은 '수익률 극대화'를 위해 곡을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불필요한 간주(Bridge)는 삭제되고, 2절이 끝나면 가차 없이 곡을 끝냅니다. 음악의 호흡이 경제적 효율성에 의해 재단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킵(Skip) 방지턱을 설계하라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곡가들은 사운드 디자인에도 '스킵 방지 기술'을 적용합니다.


다이내믹의 평준화: 도입부부터 볼륨을 크게 키워 귀를 사로잡습니다. (라우드니스 워의 연장선)


ASMR적 요소의 도입 : 도입부에 빗소리, 라이터 켜는 소리, 속삭임 같은 흥미로운 효과음을 배치하여 청취자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어?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귀를 기울이는 순간, 30초는 지나가고 정산은 완료됩니다.



예술인가, 콘텐츠인가


기술과 플랫폼의 변화는 언제나 예술의 형식을 바꿔왔습니다. 라디오 시대에는 3분이라는 제한이 생겼고, CD 시대에는 74분이라는 앨범 길이가 생겼습니다. 스트리밍 시대의 '30초 룰'과 '짧은 곡' 역시 환경에 적응한 결과일 뿐, 그 자체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짧고 강렬한 곡만이 줄 수 있는 쾌감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자본의 논리가 창작의 가장 내밀한 구조, 즉 곡의 길이와 구성까지 결정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가?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은 예술가의 의도가 담긴 '작품'인가, 아니면 이탈률을 최소화하도록 설계된 효율적인 '콘텐츠'인가?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는 음악 역사상 가장 성격 급하고, 가장 가성비를 따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30초의 벽 안에서, 음악은 오늘도 치열하게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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