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이 아닌 '생성'의 시대, 인간 창작자는 어디에 서야 하는가
Sound Essay No.48
유튜브에서 '브이로그(Vlog)'나 '카페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해 보십시오. 세련되고 듣기 편하지만, 누가 불렀는지, 제목이 무엇인지는 딱히 궁금하지 않은 음악들이 몇 시간이고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스톡 뮤직(Stock Music)' 혹은 '라이브러리 뮤직'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이미지 스톡 사이트에서 사진을 사서 쓰듯, 영상 제작자들이 저작권료를 내고 구매해서 쓰는 기능적인 음악들이죠.
지금까지 이 시장은 수많은 무명 작곡가들의 생계 수단이자, 음악 산업의 거대한 하부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2024년 이후, 이 시장에 거대한 지각 변동이 일어났습니다. Suno, Udio와 같은 고성능 생성형 AI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누구나 "청량한 여름 느낌의 브이로그 음악 만들어줘"라고 입력하면, 30초 만에 꽤 그럴듯한 곡이 뚝딱 나옵니다.
이 글은 AI가 가장 먼저 잠식하고 있는 '배경음악' 시장의 변화를 통해, 음악이 '작품(Art)'에서 '유틸리티(Utility)'로 전락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인간 창작자가 설 자리는 어디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왜 하필 배경음악일까요? 배경음악의 본질이 '주인공이 되면 안 되는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영상 뒤에 깔리는 BGM이나 매장에 흐르는 음악은 튀어서는 안 됩니다. 적당히 분위기만 맞춰주고(Mood), 거슬리지 않아야(Unobtrusive) 합니다. 독창성보다는 '장르적 관습'과 '안정감'이 훨씬 중요한 시장입니다.
이것은 AI가 가장 잘하는 분야입니다. AI는 수백만 곡의 데이터를 학습하여 '가장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패턴을 뽑아내는 데 선수입니다. "재즈 힙합 스타일로 해줘"라고 하면, AI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딱 그 느낌의, 실패하지 않는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게다가 AI는 지치지 않습니다. 영상 제작자가 "좀 더 밝게", "템포를 좀 더 빠르게"라고 수십 번 수정 요청을 해도 불평 없이 1분 만에 새로운 버전을 내놓습니다. 저작권료 걱정 없는 '무한한 공급'과 '압도적인 가성비'. 이 경제 논리 앞에서 인간 작곡가가 설 자리는 급격히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 20세기 초반, '뮤작(Muzak)'이라 불리는 회사가 엘리베이터나 사무실에 트는 배경음악을 대량 생산하며 큰돈을 벌었습니다. 당시 뮤작은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생산성과 심리적 안정만을 위해 공장처럼 음악을 찍어냈기에, '엘리베이터 뮤직'이라는 멸칭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AI 시대는 이 '엘리베이터 뮤직의 귀환'과도 같습니다. 다만, 생산 주체가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이 맞춤형 엘리베이터 뮤직을 생성하는 시대를 살게 됩니다. 명상이 필요할 때, 집중이 필요할 때, 혹은 영상에 넣을 BGM이 필요할 때, 우리는 아티스트를 찾는 대신 AI에게 "음악을 생성하라"라고 명령합니다. 음악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혹은 공간을 채우는 '디지털 벽지(Wallpaper)'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양극화의 미래: 예술가 vs 오퍼레이터
그렇다면 인간 작곡가는 사라질까요? 아닙니다. 하지만 시장은 극단적으로 양분될 것입니다.
기능의 영역 (AI의 몫): 광고 BGM, 유튜브 배경음악, 매장 음악, 명상용 앰비언트 등 '목적'이 뚜렷하고 '개성'보다 '보편성'이 중요한 영역은 AI가 빠르게 대체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인간은 직접 작곡하기보다 AI를 조작하고 큐레이션 하는 '오퍼레이터'가 될 것입니다.
예술의 영역 (인간의 몫): 반면, 자신의 고유한 서사와 철학, 불완전함 속에 깃든 인간미를 노래하는 '아티스트'의 가치는 오히려 더 희소해지고 높아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완벽한 음악'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 뒤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AI가 만든 실연 노래가 아무리 슬퍼도 우리가 진심으로 울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결국 생성형 AI의 등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음악은 '기능'입니까, 아니면 '이야기'입니까?" 기능적인 소리를 만드는 기술자는 위태롭지만,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 창작자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AI는 소리를 생성할 수는 있어도, 삶을 살아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