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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와 DJ: 창조의 두 가지 얼굴

톰 포드의 '완벽함'과 버질 아블로의 '3%'는 어떻게 다른가

by JUNSE

Sound Essay No.41

작곡가와 DJ: 창조의 두 가지 얼굴

톰 포드의 '완벽함'과 버질 아블로의 '3%'는 어떻게 다른가

출처 : www.vogue.de

저는 지난 글에서 영화감독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톰 포드의 세계를 탐구하며, 그가 보여준 숨 막히도록 완벽한 통제와 미학적 강박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했습니다. 그는 마치 고전주의 작곡가처럼, 백지상태에서 악보를 그리고, 악기를 배치하고, 모든 음표가 자신의 의도대로 연주되도록 지휘하는 '창조주'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의 세계에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고통스럽지만 가치 있는 작업입니다. 그는 완벽한 미장센을 위해 배우의 눈썹 움직임 하나까지 다듬으며, 그 결과물은 빈틈의 여지가 없는 매끄러운 대리석 조각상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직전글에서는 버질 아블로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루이 비통이라는 견고한 럭셔리 시스템 내부에 스트리트와 비주류 문화를 이식하는 구조적 변혁을 일으켰습니다. 또한 ’17세의 아웃사이더'였던 자신을 투영해 기득권의 성벽에 새로운 사다리를 놓음으로써,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하고 진입 장벽을 허물었죠. 결국 그는 홀로 빛나는 스타가 되기보다 폐쇄적인 경계를 지우고 사람과 문화를 잇는 ‘관계의 건축가'가 되는 길을 택하며, 옷보다 더 위대한 유산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 둘을 '구세대와 신세대', 혹은 '전통적 럭셔리와 스트리트 패션'이라는 단순한 대립 구도로 나누곤 합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단순히 옷을 만드는 스타일의 다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창작자가 세상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태도(Attitude)'와 '방법론(Methodology)'의 차이입니다.


저는 이 두 사람을 소리를 다루는 부류 중 양극단에 위치한 '작곡가(Composer)'와 'DJ(Sampler)'에 비유하여 설명하려 합니다. 톰 포드가 무(無)에서 유(有)를 쌓아 올리는 고전적인 건축가이자 마에스트로라면, 버질 아블로는 이미 존재하는 유(有)를 비틀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적인 편집자이자 믹서(Mixer)라고요.


이 글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이 두 가지 창조의 방식이, 각자 어떤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고 어떻게 세상을 매혹시켰는지에 대한 탐구입니다.



창조의 방식: 쌓아 올리는가(Build), 가져와서 비트는가(Twist)?

사진: Unsplash의 Nick Möllenbeck

톰 포드의 창작 방식은 철저한 '작곡(Composition)'이자 '구축(Construction)'입니다. 그는 빈 캔버스 위에 자신만의 완벽한 왕국을 건설하는 절대적인 통제자입니다.


완벽한 통제와 미장센의 구축: 90년대, 파산 직전의 구찌(Gucci)를 부활시킬 때 그가 보여준 것은 옷 디자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매장의 조명 온도, 향수병의 무게감, 모델의 눈빛, 광고 사진의 톤 앤 매너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완벽한 통제하에 두었습니다. 그의 세계에는 '우연'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는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처럼, 모든 악기(요소)가 자신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연주되어 하나의 웅장하고 관능적인 교향곡(브랜드 이미지)을 완성하도록 조율합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그의 커리어(<싱글 맨>, <녹터널 애니멀스>)가 결코 외도가 아닌 본질의 연장선에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감독'이었습니다.


압도적인 몰입감과 동경(Aspiration): 이러한 그의 방식은 '폐쇄적'이라기보다는 '몰입적(Immersive)'이라고 표현해야 옳습니다. 그는 대중에게 어설픈 참여를 권하는 대신, 전문가의 손길로 완성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환상을 선물합니다. 관객은 톰 포드가 만든 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현실의 지루함을 잊고 그가 직조해 낸 우아한 꿈 속에 완전히 빠져들게 됩니다. 이는 20세기 럭셔리 산업이 추구했던 '동경(Aspiration)'의 가치를 정점으로 끌어올린 방식입니다. "나도 저 완벽한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시대적 맥락: 톰 포드가 전성기를 맞이한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은, 대중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명확한 트렌드와 비전을 갈망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지 룩(Grunge Look)의 혼돈 이후, 톰 포드의 '타협하지 않는 완벽함'과 '섹시함'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패션의 환상을 심어주는 미적인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그의 창조는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결정체이며, 우리는 그 밀도 높은 완성도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출처 : smarthistory.org "Dada readymades by Dr. Charles Cramer and Dr. Kim Grant"

반면, 버질 아블로의 창작 방식은 '샘플링(Sampling)'이자 '편집(Editing)'입니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재배열하는 큐레이터라고 믿었습니다.


3%의 법칙과 리믹스(Remix)의 미학 : 그의 디자인 철학인 "3%의 법칙(기존의 것에 3%만 수정해도 새로움이 탄생한다)"은 결코 게으름의 산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힙합 DJ가 기존의 명곡(샘플)을 가져와 비트를 쪼개고(Chop) 속도를 바꿔 전혀 다른 뉘앙스의 곡으로 재탄생시키는 '리믹스'의 미학을 디자인에 적용한 것입니다. 나이키 조던 운동화에 "AIR"라고 헬베티카 서체로 적어 넣은 행위, 이케아의 영수증을 그대로 러그로 만든 행위는 뒤샹의 '샘(Fountain)'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그는 사물의 기능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사물이 놓인 '맥락(Context)'을 바꿨습니다. "이것은 운동화이지만, 동시에 예술품이다", "이것은 영수증이지만, 동시에 인테리어 소품이다"라고 선언하며 사물의 의미를 전복시킨 것입니다.


연결과 개방(Connection & Open Source): 버질 아블로는 톰 포드처럼 완벽한 성을 쌓는 대신, 서로 다른 성들을 연결하는 '다리(Bridge)'를 놓았습니다. 스트리트 웨어와 하이엔드 럭셔리, 흑인 문화와 백인 주류 문화, 스케이트보드와 루이 뷔통. 그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을 충돌시키고 연결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작업 파일(소스 코드)을 대중에게 공개하며 "너희도 할 수 있어"라고 격려했습니다. 그의 창조는 완벽한 결과물이라기보다, 누구나 들어와서 참여하고 변형할 수 있는 '오픈 소스 플랫폼'에 가까웠습니다.


시대적 맥락: 버질 아블로가 활약한 2010년대 이후는 인터넷과 SNS로 모든 정보가 연결된 초연결 사회입니다. 이미 너무 많은 물건과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골라내고(Curating),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Mixing) 능력이 창의성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버질 아블로는 이 시대의 흐름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읽어낸 선구자였습니다.



고귀한 살롱 vs 소란스러운 광장

사진: Unsplash의 Andrea Mininni(왼), Simone Mascellari (오)

두 사람의 차이는 그들이 지향했던 공간과 소통의 방식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톰 포드의 공간은 '살롱(Salon)'입니다. 우아하고, 은밀하며, 선택받은 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도로 정제된 대화가 오가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소음은 차단되고, 조명은 완벽하며, 오직 검증된 아름다움만이 허락됩니다. 이는 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순수성'과 '희소성'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반면, 버질 아블로의 공간은 '광장(Plaza)'입니다. 시끄럽고, 정신없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뒤섞여 춤을 추는 곳입니다. 그는 파리 패션 위크 런웨이에 모델 대신 스케이트보더와 래퍼, 자신의 친구들을 세웠습니다. 이곳에는 고귀한 순수함은 없지만, 날것의 에너지와 예측 불가능한 충돌이 만들어내는 활력이 있습니다. 이는 예술이 대중과 만나는 '확장성'과 '다양성'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창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출처 : producersociety.com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A Music Producer And A DJ?"


톰 포드와 버질 아블로. 두 거장은 우리에게 창조로 향하는 두 가지 다른, 하지만 모두 유효하고 위대한 길을 보여줍니다.


하나는 톰 포드처럼 자신의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끈질긴 장인 정신과 타협하지 않는 완벽주의로 세상에 없던 고유한 세계를 '구축(Build)'하는 길입니다. 다른 하나는 버질 아블로처럼 세상을 넓게 바라보고, 흩어져 있는 가치들을 발견하여 독창적인 관점으로 '연결(Connect)'하고 재해석하는 길입니다.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대는 때로 톰 포드의 완벽한 아름다움에 위로받고, 때로는 버질 아블로의 파격적인 연결에 열광합니다. 작곡가가 없으면 DJ는 틀 음악이 없고, DJ가 없으면 작곡가의 음악은 댄스 플로어에 닿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는 어떤 창작자가 되고 싶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나는 나만의 악보를 그리는 작곡가입니까, 아니면 세상이라는 레코드판을 돌리는 DJ입니까? 당신의 기질과 당신이 놓인 환경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곧 당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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