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영화와 '셰퍼드 톤(Shepard Tone)' 음향심리학
Sound Essay No.42
영화가 끝나도 멈추지 않는 긴장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특히 <덩케르크(Dunkirk)>나 <인셉션(Inception)>,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때, 관객들은 종종 마라톤을 완주한 듯한 육체적 피로감을 호소하곤 합니다. 어깨는 뭉쳐있고, 손에는 땀이 흥건하며, 심장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진정되지 않습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위기(Tension) 뒤에 해소(Release)가 오기 마련입니다. 악당이 나타나면 긴장했다가, 그가 사라지거나 패배하면 잠시 숨을 돌리는 식이죠. 하지만 놀란의 영화는 이 익숙한 문법을 거부합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처럼, 혹은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는 롤러코스터처럼,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절정을 향해 끝없이 가속하기만 합니다. 관객에게 안도할 틈, 즉 '숨 쉴 구멍'을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2시간 내내 관객의 심박수를 그토록 강력하게 붙잡아두는 걸까요? 단순히 화려한 액션 연출이나 교차 편집의 힘일까요? 사운드 디자인의 관점에서 볼 때, 그 비밀의 열쇠는 시각이 아닌 청각, 그중에서도 '셰퍼드 톤(Shepard Tone)'이라는 아주 기묘한 음향학적 착각에 숨겨져 있습니다. 놀란은 이 소리의 원리를 단순히 배경음악으로 쓰는 것을 넘어, 영화의 시나리오와 편집 구조 그 자체에 적용하는 광기 어린 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귀로 듣는 '펜로즈의 계단': 셰퍼드 톤의 원리
'셰퍼드 톤'은 1964년 심리학자 로저 셰퍼드가 고안한 청각적 환영입니다. 쉽게 말해 "음이 무한히 높아지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제자리를 맴도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발소의 회전 간판(Barber's pole)이나, 영화 <인셉션>에 등장하는 '펜로즈의 계단(Penrose Stairs)'의 소리 버전과 같습니다. 시각적으로는 계속 올라가는 계단이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 셰퍼드 톤은 소리의 옥타브를 교묘하게 조작하여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속입니다.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음, 중음, 고음의 세 가지 옥타브로 이루어진 소리가 동시에 재생되면서 음정(Pitch)이 서서히 올라갑니다. 이때, 가장 높은 옥타브의 소리는 점점 볼륨을 줄여서(Fade out) 들리지 않게 만들고, 동시에 가장 낮은 옥타브의 소리는 볼륨을 서서히 키워서(Fade in) 은밀하게 등장시킵니다. 우리의 뇌는 '상승하는 움직임'에 집중하느라, 높은음이 사라지고 낮은음이 그 자리를 채우는 미세한 교체 과정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 결과, 청취자는 소리가 끝없이, 영원히 올라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마치 폭발 직전의 카운트다운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것과 같은 이 소리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긴장감, 다가오는 위협, 멈출 수 없는 불안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완벽한 도구입니다.
조커의 광기부터 덩케르크의 해변까지
이 '무한 상승'의 기법은 놀란의 필모그래피 전반에 걸쳐 정교하게 발전해왔습니다. 그 시작점 중 하나는 <다크 나이트>의 조커 테마입니다. 한스 짐머는 조커라는 캐릭터의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러운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단 하나의 첼로 음을 사용했습니다. 활로 현을 긁으며 점점 피치를 높여가는 이 소리는 셰퍼드 톤의 원리를 차용하여,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으면서 관객의 신경을 톱질하듯 자극합니다. 이는 조커의 광기가 어디까지 치달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청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 기법이 구조적 정점에 달한 작품은 단연 <덩케르크>입니다. 놀란은 아예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셰퍼드 톤의 구조를 차용하여 이야기를 설계했습니다. 영화에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시간대가 교차합니다.
잔교(The Mole): 일주일 동안 벌어지는 육지의 이야기 (가장 느린 속도 = 저음 옥타브)
바다(The Sea): 하루 동안 벌어지는 배의 이야기 (중간 속도 = 중음 옥타브)
하늘(The Air): 한 시간 동안 벌어지는 전투기의 이야기 (가장 빠른 속도 = 고음 옥타브)
영화는 이 세 가지 이야기를 끊임없이 교차 편집합니다. 톰 하디(하늘)의 긴박한 공중전이 절정에 달할 때쯤, 컷이 넘어가며 킬리언 머피(바다)의 위기 상황이 시작되고, 다시 핀 화이트헤드(육지)의 생존 투쟁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은 완벽한 '시각적 셰퍼드 톤'입니다. 하나의 사건(옥타브)이 해결(이완)되려는 찰나, 다른 시간대의 사건(다른 옥타브)이 치고 들어와 긴장감을 이어받습니다. 관객의 뇌는 '사건이 일단락되었다'고 느낄 새도 없이, 더 빠른 속도의 다음 위기로 내몰립니다. 일주일, 하루, 한 시간이라는 서로 다른 속도의 시간 층위가 겹겹이 쌓여,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번의 쉼표도 없이 상승하기만 하는 '무한한 긴장 곡선'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한스 짐머는 인터뷰에서 "우리는 영화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셰퍼드 톤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으며, 실제 배경음악에도 셰퍼드 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이 구조를 청각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시계 초침 소리: 시간을 가두는 리듬
여기에 더해, 놀란은 자신의 회중시계 초침 소리('틱-톡')를 직접 녹음하여 한스 짐머에게 보냈고, 짐머는 이를 신시사이저로 가공하여 영화 내내 흐르는 리듬 트랙으로 만들었습니다. 셰퍼드 톤이 음의 높낮이(Pitch)로 공간적 긴장감을 만든다면, 이 초침 소리는 시간적 긴박함(Rhythm)을 담당합니다.
일정한 속도로, 하지만 심장 박동보다 조금 빠르게 반복되는 이 '틱-톡' 소리는 관객의 생체 리듬을 영화의 속도에 동기화시킵니다. 셰퍼드 톤의 무한한 상승과 시계 소리의 강박적인 반복이 만났을 때, 관객은 탈출구가 없는 시간의 감옥에 갇힌 듯한 압도적인 서스펜스를 경험하게 됩니다.
해결되지 않는 불안을 디자인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토록 집요하게 '무한 상승의 착각'을 설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셰퍼드 톤은 본질적으로 '해결(Resolution)'이 없는 음악입니다. 으뜸화음으로 돌아와 편안하게 끝나는 음악적 안도감을 거부합니다. 이는 현대인이 느끼는 만성적인 불안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지만, 도착했다는 안도감보다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낍니다. 놀란은 이 현대적인 불안의 정서를 소리와 구조를 통해 완벽하게 포착해냅니다.
사운드 디자인은 단순히 장면에 어울리는 효과음을 입히는 후반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뇌가 소리와 시간을 인지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때로는 그 인지 시스템의 허점(착각)을 파고들어 관객이 경험하는 감정의 구조 자체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덩케르크> 속에서 우리의 심장이 그토록 세차게 뛰었던 진짜 이유는, 눈에 보이는 폭발 때문이 아니라, 편집의 호흡과 음악 속에 정교하게 설계된 '무한한 계단'을 우리도 모르게 계속 오르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