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사 Y Aug 08. 2023

어떤 가난한 어머니의 기품

 학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어머님’들을 경험할 수 있다. 복이 많은 나는 흔히 말하는 ‘진상’ 학부모님을 경험한 적은 없으나 유독 기억이 나는 어머님 한 분이 있다. 그 분은 내 어머니가 생각나게 만들었다. 키가 작고 추레한 옷을 입었지만, 유쾌하던 우리 어머니 말이다.


 그 어머니의 아들인 학생 A는 중학교 때까지 공부를 아주 못했다. 그러다 우리 학원으로 오게 되면서 무언가에 시동이 걸렸는지, 갑자기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성실하고 예의도 아주 바른 터라, 모든 선생님들이 그 학생을 아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A를 예뻐하는 선생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원장님이 일찍 퇴근하시고 반대로 나는 그날따라 일이 늦게 끝났다. 학생들이 모두 떠난 10시 30분, 누군가 학원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본인을 학생 A의 ‘엄마’라고 소개했다. 나는 꼭 한 번은 뵙고 싶었던 분인지라, 반갑게 그 분을 맞았다.


 여기까지 오신 김에 나는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자 상담실로 어머님을 안내하려 했다.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굳이 로비에 서서, 채소 가게 아주머니들이 입으시는 조끼의 주머니에서, 쌈짓돈 같은 원비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번 달은 이만큼만 내도 될까요? 다음 달은 꼭 더 챙겨 오겠습니다.”


 키도 작으신 분이, 허리까지 숙이며 말씀하시자 그 모습이 더 작게 보였다. 팀장인 나는 학생의 원비를 관리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어머님이 꺼내신 금액이 얼마건 기꺼이 원비를 깎아드릴 생각이었다. 그 초라한 행색에, 어머님께서 가지신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럼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그리고 학생 A를 가르치는 건, 정말 제 생에 큰 행복입니다. 좋은 아이를 보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어머님은 내 칭찬을 입바른 소리라고 생각하셨는지, “뭘요. 그저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시고는 학원을 떠나셨다. 


 다음 날 나는 원장님께 어제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원장님께서는 A의 어머님은 매달 그렇게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 오셔서는 원비를 깎아 달라고 말씀하신다고 하셨다. 또, A가 워낙 바른 아이고 어머님도 최선을 다하고 계시다고 느껴졌기에, 원장님께서는 매달 그 아이의 원비를 깎아 주고 계신다고 하셨다.


 다시 며칠 뒤, 나는 학생 A와 이야기 할 기회가 생겼다. A와는 워낙 많은 이야기를 나눠왔고 서로 사적인 이야기도 많이 했기에, 나는 A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A야 혹시 가정형편이 좀 어렵니? 그러면 샘이 좀 도와줄게, 정말로!”


“저희 집이요? 아뇨. 딱히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보통 원비 할인을 요청할 정도면, 가정형편이 아주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에 A의 답변은 조금 의외였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A야, 그럼 어머님께서 학원비가 부담된다고 하진 않으셨어?”


“음.. 딱히 그런 말씀을 하시진 않으셨어요. 엄마만 믿으라고 하셔서..”


 오래 산 인생은 아니지만, A의 말에서 나는 정말로 처음으로 ‘엄마’가 된다는 것의 무게감을 알 수 있었다. 흔히 말하는 자식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정도의 평범함이 아니었다. 


 A의 어머니는 매달 학원에 오셔서 고개를 숙이신다. 매번 스스로 수치스러워 하시면서도 원비를 깎으신다. 몇 번 그렇게 했으면, 다음부턴 우리가 알아서 어련히 깎아 드릴 줄을 아실 텐데도, 지금껏 몇 년 동안 매달 찾아 오셔서 매번 고개를 숙이신다. 


 자식을 위해서 스스로 부끄러워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엄마가 된다는 것임을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또 동시에 덜컥 겁이 났다. 교육계에 있음에도 나는 내가 저런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니 사실 더 겁이 나는 것은 내 앞에 앉은 A였다. 저런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이 아이가 커서 뭐가 될 줄 알고 이 아이를 쉽게 대한단 말인가. 그간 A가 보였던 묵묵함과 성실함 그리고 예의바름까지 모두 미래의 성공을 위한 조건들처럼 보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A의 가족들은 악세서리 등을 포장하는 부업을 매일 밤마다 함께 한다고 했다. A는 학원이 끝난 10시에 집에 들어가면, 새벽 1시까지 그 일을 돕다가 기껏해야 5시간을 자고 학교를 향한다고 했다. 


 나는 A와 A의 어머니를 보며, 가난이 결코 한 인간의 품위를 낮추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유해도 비굴하고 천박한 사람이 있는 반면, 가난해도 당당하고 기품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엄마들은 ‘엄마’가 가져야 할 ‘기품’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이에게 그저 비싼 것,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을 ‘사주기’만 하면 그게 엄마 노릇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10년의 교육계 생활에 비추어 볼 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시대의 젊은 엄마들이 A 어머님이 가지신 기품을 배우길 바란다. 스스로 고개를 숙이면서도 누구도 그 사람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당당한 인간은, 그 자식에게도 그 품위를 유전하기 마련이다. 

작가의 이전글 엄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