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
어릴 적 우리 집 대문은 철로 만든 대문이었다. 아니 우리 집 대문뿐만 아니라 다른 집 대문들 역시 철문이었다. 손잡이 역시 철로 만들어져 손잡이를 위아래로 치면 챙챙소리가 났다. 저마다 똑같은 철문이다 보니 각 집마다 다른 색깔의 페인트로 색을 칠했다. 색이 벗겨지면 그다음 해는 다른 색으로 대문이 칠해졌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색이 벗겨지기도 전에 페인트를 다시 칠하는 집이 많았다. 그 이유는 바로 '한수'때문이었다. 그 당시 한수라고 불리던 사람이 있었다. 나이는 20살 남짓.
비가 오려고 날씨가 흐려지면 어김없이 나타나 야구배트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철문을 챙챙 치고 다녔다. 그럼 아줌마 아저씨들은 "한수야! 시끄러워! 대문 망가지겠다!"라며 고래고래 소리쳤고 꼬맹이들은 "한수가 또 미쳤나 봐~"하며 대문을 치는 한수를 구경했다.
골목길 첫 번째 집부터 마지막 집까지 대문을 치면 저 멀리 한수 엄마가 일을 하다 말고 "한수야!" 하며 버선발로 달려와 꿀밤을 때리고 집으로 억지로 끌고 갔다. 그럼 그제야 골목이 조용해졌다.
그래도 아무도 한수네 집에 페인트값, 대문 값을 바란 집이 없었다. 꼬마애들도 한수라고 부르긴 했지만 한수가 지나가면 가지고 있던 과자를 나눠 먹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