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과 결단
다산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조용해진 새벽 1시경.
모든 소음과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단절된 시간이 익숙해진지 어느덧 3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그만큼 정신적으로 또렷해지는 시간이 반갑기만 한 게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즈음. 난 불현듯 불면증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고통이라고 표현하기도 참 애매하지만 여하튼 잠을 자지 못하니까. 의사결정이라던지 사람답던 쾌활함과 호탕함이 사라지고 멍 때리는 것과 매우 가까운 주중 일상을 견뎌내기가 벅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노동조합 때문이었다. 시작은 그리했다. 난 신의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아무래도 내 임무와 역할을 잘 알고 내가 의사결정할 수 있는 부분만이라도 다양한 요인과 대내외적인 여건을 고려한 최선을 택했다. 그것이 단 한 명의 직원이라도 피해보지 않는 것이라면 난 그것을 택했다. 그리고 그건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리라 믿었고 그 결단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허상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사람만큼 남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회사의 소속된 누군가에게 큰 관심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견된 결과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열정과 나름의 희생이라 생각한 일들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해 줄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내 입장에서만 추출해 낸 자의적 해석에만 불과할 뿐.
누군가는 어깨를 툭치며 힘내라는 말 뿐이었고. 고생 많다는 영혼 없는 위로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이일로서 난 가족들에게 알게 모르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첫째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에도 난 그저 '엉'이라고 영혼 없는 대답만 되뇔 뿐. 왜 아빠는 무엇을 물어봐도 '엉'이라고만 답하냐고 물었을 때. 난 이 모든 게 잘못된 것이라고 즉시 깨닫기 시작했다.
뜬구름은 업무로서만 잡은 것 아니었다. 사람관계에 있어서 내가 결단하고 내가 해석한 부분들로 인해 그리고 그것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거나 내가 내린 결론은 대다수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김칫국부터 마시게 되었을까? 이런 물음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바보처럼 내가 그럼 혼자 김칫국을 마신 거야? 김칫국은 저절로 차려진 거야? 그런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와 부정만 뇌 회로에 되뇔 뿐이었다.
애초부터 뜬구름 잡기는 나의 특성이 아니었다. 내가 잘하는 분야도 아니고 내가 모든 결과를 미리 유추하고 해석하고 그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뜬구름 잡기는 나의 장기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지금도 이처럼 글로써 나의 김칫국 마시기 습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예견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기에 의미부여를 할 것도 아니고 모든 행동과 결과에 대해서는 감정적 부분을 일체 배제하기로 했다. 내가 스스로 옳고 정당했으며 정확한 신호라고 생각하는 업무와 결단, 행동, 표현 등 그 모든 것들을 이제 예단하지 않기로 했다. 팩트와 사실에 중심에서, 신출내기 1년 차 기자처럼. 그냥 주어진 사건과 사실에만 국한하여 그것이 메말라 있고 단조로울지라도 그것만 담아내고 기술하기로 다짐했다.
모든 입장정리는 2023년 5월부로 끝냈다.
한편으로는 참 대견하기도 하고 시원 섭섭. 땅에 처박혀 박살 난 유리잔의 조각들과 잔재들이 아직 러그 위에 남아있는 찝찝한 기분이 들어도. 어쨌거나 손을 베이거나 상처를 줄법한 큰 덩이들은 제거를 했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 잔재는 나의 몫이 아닐 것이다. 더 이상 그 깨진 유리잔의 부스러기를 바라보며 내가 상처받을 것을 염려하며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공백기의 시작.
6월 15일부터는 그동안 희석된 나의 감정과 불투명해진 나의 존재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지금껏 직장과 결혼. 그리고 육아.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오며 주변의 꽃과 들풀조차 구경하지 못했던 그 고단하고 바쁘게 보내왔던 시간들을 다시 재고해 보는 귀중한 시간을 얻었으니까. 그리고 흘러왔던 흘려보냈던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값진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과거들을 바라보며 올곧하게 진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얻었으니까.
뜬구름은 멀리하고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2개월의 길다면 길수 있는 공백기간 동안 나는 나를 더 채워나가는 연습을 하기로 다짐했다.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나의 아저씨'의 드라마 짤을 보면서 참 와닿았던 장면들이 불현듯 생각이 났으니까 말이다.
'외력과 내력'
특정 건물이 모진 비바람과 태풍을 감내할 수 있는 외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바로 내력이 튼튼해서다. 사람이 사는 집은 평당 300kg를 견딜 수 있는 내력으로 설계되었고 이 튼튼함이 겹치고 뭉쳐 하나의 건물의 외력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즉 강한 외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강한 내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뜬구름 잡기는 이제 그만하고 입장정리는 완곡하게.
강한 내력을 위한 공백기간의 시작.
이것이 6월 15일부터 시작하는 2개월 간의 병가를 맞이를 준비하는 나의 핵심 두 문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