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인간 May 30. 2023

뜬구름

공백과 결단 

다산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조용해진 새벽 1시경.


모든 소음과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단절된 시간이 익숙해진지 어느덧 3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그만큼 정신적으로 또렷해지는 시간이 반갑기만 한 게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즈음. 난 불현듯 불면증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고통이라고 표현하기도 참 애매하지만 여하튼 잠을 자지 못하니까. 의사결정이라던지 사람답던 쾌활함과 호탕함이 사라지고 멍 때리는 것과 매우 가까운 주중 일상을 견뎌내기가 벅차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노동조합 때문이었다. 시작은 그리했다. 난 신의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아무래도 내 임무와 역할을 잘 알고 내가 의사결정할 수 있는 부분만이라도 다양한 요인과 대내외적인 여건을 고려한 최선을 택했다. 그것이 단 한 명의 직원이라도 피해보지 않는 것이라면 난 그것을 택했다. 그리고 그건 모든 구성원이 동의하리라 믿었고 그 결단이 최선이라고 생각해 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허상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사람만큼 남일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또한 회사의 소속된 누군가에게 큰 관심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견된 결과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열정과 나름의 희생이라 생각한 일들에 대해서는 누구나 인정해 줄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건 내가 내 입장에서만 추출해 낸 자의적 해석에만 불과할 뿐. 


누군가는 어깨를 툭치며 힘내라는 말 뿐이었고. 고생 많다는 영혼 없는 위로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이일로서 난 가족들에게 알게 모르게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첫째가 나를 애타게 부르고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에도 난 그저 '엉'이라고 영혼 없는 대답만 되뇔 뿐. 왜 아빠는 무엇을 물어봐도 '엉'이라고만 답하냐고 물었을 때. 난 이 모든 게 잘못된 것이라고 즉시 깨닫기 시작했다.


뜬구름은 업무로서만 잡은 것 아니었다. 사람관계에 있어서 내가 결단하고 내가 해석한 부분들로 인해 그리고 그것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거나 내가 내린 결론은 대다수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김칫국부터 마시게 되었을까? 이런 물음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바보처럼 내가 그럼 혼자 김칫국을 마신 거야? 김칫국은 저절로 차려진 거야? 그런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억지와 부정만 뇌 회로에 되뇔 뿐이었다.


애초부터 뜬구름 잡기는 나의 특성이 아니었다. 내가 잘하는 분야도 아니고 내가 모든 결과를 미리 유추하고 해석하고 그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 아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나조차도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뜬구름 잡기는 나의 장기는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지금도 이처럼 글로써 나의 김칫국 마시기 습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예견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기에 의미부여를 할 것도 아니고 모든 행동과 결과에 대해서는 감정적 부분을 일체 배제하기로 했다. 내가 스스로 옳고 정당했으며 정확한 신호라고 생각하는 업무와 결단, 행동, 표현 등 그 모든 것들을 이제 예단하지 않기로 했다.  팩트와 사실에 중심에서, 신출내기 1년 차 기자처럼. 그냥 주어진 사건과 사실에만 국한하여 그것이 메말라 있고 단조로울지라도 그것만 담아내고 기술하기로 다짐했다.


모든 입장정리는 2023년 5월부로 끝냈다.


한편으로는 참 대견하기도 하고 시원 섭섭. 땅에 처박혀 박살 난 유리잔의 조각들과 잔재들이 아직 러그 위에 남아있는 찝찝한 기분이 들어도. 어쨌거나 손을 베이거나 상처를 줄법한 큰 덩이들은 제거를 했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 잔재는 나의 몫이 아닐 것이다. 더 이상 그 깨진 유리잔의 부스러기를 바라보며 내가 상처받을 것을 염려하며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공백기의 시작. 


6월 15일부터는 그동안 희석된 나의 감정과 불투명해진 나의 존재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어가야 할 시간이다. 지금껏 직장과 결혼. 그리고 육아.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오며 주변의 꽃과 들풀조차 구경하지 못했던 그 고단하고 바쁘게 보내왔던 시간들을 다시 재고해 보는 귀중한 시간을 얻었으니까. 그리고 흘러왔던 흘려보냈던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값진 의미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과거들을 바라보며 올곧하게 진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얻었으니까.


뜬구름은 멀리하고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2개월의 길다면 길수 있는 공백기간 동안 나는 나를 더 채워나가는 연습을 하기로 다짐했다. 드라마를 보진 못했지만 '나의 아저씨'의 드라마 짤을 보면서 참 와닿았던 장면들이 불현듯 생각이 났으니까 말이다.


'외력과 내력'


특정 건물이 모진 비바람과 태풍을 감내할 수  있는 외력을 가지게 된 이유는 바로 내력이 튼튼해서다. 사람이 사는 집은 평당 300kg를 견딜 수 있는 내력으로 설계되었고 이 튼튼함이 겹치고 뭉쳐 하나의 건물의 외력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즉 강한 외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강한 내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뜬구름 잡기는 이제 그만하고 입장정리는 완곡하게. 

강한 내력을 위한 공백기간의 시작. 


이것이 6월 15일부터 시작하는 2개월 간의 병가를 맞이를 준비하는 나의 핵심 두 문장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단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