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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트리 Nov 12. 2024

소중한 인연

마음의 도미노

아끼는 친구의 아버님이 위독하셔서 임종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꽤 오랜 기간 병환 중이셔서 영정사진을 따로 찍어놓은 게 없어서 

사진 편집을 의뢰해야 할 것 같은데, 가족들은 경황이 없기도 하고, 급히 인터넷으로 알아본 업체들이 맘에 안 든다고 아침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이쪽 분야의 전공자도 아니고, 잘 모를 수 있다는 거 알지만, 

친구가 나에게 이런 연락을 했을 땐 내가 잘 알고, 전문가여서가 아니라, 

이렇게 급하고, 이렇게 중요한 일을 

그래도, 진. 심. 으.로. 알아봐 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서 부탁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회사엔 미안하지만 오전에 모든 일을 제쳐두고, 

나는 누구에게 부탁하면 좋을까를  떠올려봤다. 


퇴사를 한 예전 직원들(후배들) 중에  IT관련해서 이직을 한 친구가 하나 있고, 

최근 연락 안 한 지 꽤 오래 지났긴 했지만 사이가 꽤 좋았던 사진을 전공한 후배도 하나 있었지.

아침 9시가 막 지난 이른 시간부터 카톡으로 호출 


한 친구가 바로 연락이 와서 포토샵을 잘한다는 친구를 한 명 소개해줬고, 

정작 사진 전공한 진구는 연락이 안 돼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혹시나 몰라 지금은 육아로 쉬고 있지만 예전에 아이 성장 사진을 찍어주신 작가님 생각이 나서 

한 군데 더 연락을 드려보기로. 


오전에 친구가 최대한 신경 덜 쓸 수 있게 필요한 사진과 원하는 분위기, 의상 이런 걸 몇 가지 체크하고, 

연락이 안 되는 후배 녀석을 제외한 두 분께 연락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후배가 소개해준 지인은 인스타에 작업 결과물을 보니 너무 젊은 감성이라 내게 부탁한 친구가 좋아하진 않을 스타일이라, 

마지막에 연락드린 작가님께 안부톡과 함께 사정을 급히 설명드리고 부탁을 드렸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흔쾌히 작업을 해주시겠다고 해서, 

친구가 준 사진 두 장과 원하는 의상콘셉트, 분위기로 이래저래 몇 가지 샘플로 

여러 차례 수정의견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성의 있게 작업을 해주셔서 

친구가 아주 맘에 들어하는 영정사진을 완성해서 보내주었다. 


영정사진은 부모님 당신들이 직접 자발적으로 찍겠노라 하지 않으시면 자식들이 미리 찍어두라 하기도 애매한 사진인 데다가 (우리나라 문화상), 또 미리 찍는 시기의 적절성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필요한 상황이 되면 가족의 입장에선 준비할 때 다소 당황하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그 친구에게 이런 중요한 부탁을 믿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었고, 

내가 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는 소중한 인연들이 있어 너무 다행이었다. 


친구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결국은 자식을 바르고 착하게 잘 키우신 아버님의 -> 효심 깊은 자녀의 마음에서 출발해서

-> 그 자녀를 끔찍이 생각하는 친구의 인맥 발품(노력)을 거쳐

-> 그래도 한 때 그 친구의 도움과 보살핌을 받았던 회사 후배, 지인의 손끝의 도움 끝에 

이윽고 완성이 되었다. 


결국 누구 한 사람 덕분이 아닌, 

인연과 인연 사이의 고마움과 애정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함께 만들어낸 마지막 가시는 길의 선물. 


그 어느 날 생일상을 받으시고 환히 미소 짓던 모습을 바탕으로 만든 영정사진에

생전의 온화한 미소와 성품을 오롯이 담아낸 

여러 귀한 인연들의 마음이 모여 완성된 마지막 사진, 

마지막 가시는 길 - 모두에게 보일 인생의 마지막 얼굴   


마지막 가시는 길 

친구의 아버님은 나의 마음에도 

가까이에서 서로를 믿고 지켜줄 있는 지금 내 주변의 소중한 "인연"에 대해 큰 가르침을 주셨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덧) 연락이 안 되었던 후배 녀석은 뒤늦게 전날 새벽까지 작업이 있어 늦잠을 잤다며 연신 미안해했고

괜찮다는 말에도 굳이 이번주에 오랜만에 회사 앞으로 점심을 먹으러 오겠다고 했다. 

1년도 넘게 연락을 안 하다가 부탁하려고 아침부터 연락한 내가 미안한데 말이다. 

고맙고, 따뜻하고,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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