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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ul 26. 2023

사명감, 그거 진짜 있는 거 맞아?

나는 기자였다 - 09

한 달에 100건씩 기사를 쓰는 기사 공장


나 기자 왜 하지?라는 질문의 답 중 일부는 바로 '사명감'이었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고, 그럴 수 있는 방법이 기사를 쓰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내가 쓰는 기사가 정말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의 방침으로 나는 매일 5개의 스트레이트 기사를 써야 했는데, 보통 스트레이트 기사는 보도자료를 기사화하거나 통신사 기사를 우라까이(베껴 쓰다의 은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1년 2개월 간 쓴 기사만 1,300개가 넘었다. 나는 기사 쓰는 공장이 되어 있었고 사명감은 느끼기 어려웠다.


스치고 지나가는 뿌듯함


물론 종종 뿌듯할 때도 있었다. 특히 사람들로부터 반응이 왔을 때 좋았다. 한국 사회에 마약이 큰 화제가 되어, 마약 관련 이슈를 다룬 적이 있었는데 그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아주 소소한 반응이 있었다. 그때 기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마약, 그중에서도 '여성'의 마약을 소재로 다뤘기 때문이었다.


여성은 마약 이슈에 있어서 남성과 다르게 다뤄져야 한다. 남성과 다른 사회적 맥락 속에서 마약을 겪게 되고, 이후 신체적으로 남성과 다른 부작용을 겪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다룬 기사였다.


하지만 여성과 마약을 결부시킨 경우 자체가 많지 않았고, 여성 마약 사범을 만나기도 어려웠고, 여러 가지 이유 등으로 인해 취재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은 기사였다. 힘들게 출고되었던 기사는 커뮤니티에 공유가 되었고 사람들에게서 반응을 얻었다. 이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뿌듯한 기사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일은 흔하지 않았다. 내가 매일 하는 것은 5개의 스트레이트 기사 개수를 채우기 위해 보도자료가 오기를 기다리거나 우리 신문사가 다룰 만한 통신사 기사가 뜨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은 같은 회사의 다른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때로는 서로 보도자료를 누가 쓰냐고 순서를 정하거나 암묵적으로 양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일종의(?) 동지애 같은 거였다.


기자, 왜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사명감이었는데, 사명감이라는 답이 흔들릴 때쯤 사내 사건이 터졌다. 바로 편집권 침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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