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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ul 19. 2023

화려한 지옥의 찔레꽃 -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리뷰

1951년의 이야기가 2023년에도 의미 있는 이유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를 보고 왔다. 연뮤덕들의 커뮤니티에서 장안의 화제였던 작품. 화제가 된 이후에 더 빨리 빛을 보지 못했다며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던 작품. 필자가 보러 갔을 때는 이미 화제가 된 이후라, 관객석이 꽉꽉 들어차있었다.(매진이라고 문자가 오기까지 했다!) 화제성에 걸맞은 작품이었는지 돌이켜본다면 그러하다고 평하고 싶다.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라고 외쳤던 김말봉의 작품세계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작품이므로.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포스터(출처 : 인터파크 티켓)


극중극 형태, 조금은 삐걱거리지만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김말봉의 작품세계를 정말 말 '그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해설자들이 등장해 김말봉과 김말봉의 작품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작품 3개가 극중극의 형태로 표현된다. 물론 이 형식이 아주 자연스럽지만은 않다. 초반에는 조금은 삐그덕거리지만, '찔레꽃'과 '화려한 지옥' 등에서는 소설의 내용 자체에 관객들이 몰입하게 되면서 괜찮아진다.


김말봉 작품의 매력,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위에서 말했듯 이 작품에서는 '고행' '찔레꽃' '화려한 지옥' 등이 극중극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때 김말봉 작품이 가지는 매력이 빛을 낸다. 이 작품의 제목,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처럼 통속소설만의 재미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꼬이는 인물들의 관계, 갈등으로 점철되어 절정으로 치닫는 이야기...! 사람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내용이 펼쳐지고, 몰입도는 높아진다. 과거에는 연재소설이었던 '찔레꽃'의 경우 연재가 하루만 걸러도 사람들의 항의가 쏟아졌다고 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몰입도는 비슷한 듯하다.


통속소설은 언제나 낮은 평을 받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순수문학과 달리 너무 '대중적'이라는 게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렇게 생각한다. 독자 없는 글이 어떤 의미가 있지? 


서사의 중심에 선 여성

주체성 또한 가지는가?


김말봉 작품의 중요한 '의미'는 또 다른 곳에도 있다. 바로 '여성'이 서사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든간에, 말이다.


물론 시대적 한계가 있다. 가부장제 아래 여성들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만 주체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 또한 그렇고, 지금의 기준에서는 주체적이라고 판단할 수 없지만 당시의 기준에서는 당당한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번 작품 안에서도 해설자가 여자 주인공이 '사랑'보다는 '정의'를 택했다고 했을 때도 그것이 과연 정의인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뭐, 이건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기준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페미니즘적 소재의 채택


특히나 김말봉의 작품 '화려한 지옥'은 공창폐지운동의 필요성을 외쳤던 김말봉의 생각이 짙게 반영된 인물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공창폐지위원회 위원장 정민혜가 김말봉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공창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성매매 관리제도를 의미하는데,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조선에 확립되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도 존재했던 공창제를 폐지하는 것에 김말봉은 목소리를 높였고, 이런 생각은 '화려한 지옥'에 담긴다.


이는 여성해방을 외치는 페미니즘적 사고방식이 담겨있는 것으로, 김말봉은 그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페미니즘적 소재를 채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여성이 주체성을 가지고, 여성이 온전히 해방되는 것. 이것은 1951년에도, 2023년에도 중요하다.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통속소설이라는 이유로 김말봉이 낮게 평가받는 것에 대해서도 외치고 있지만 동시에 여성을 중심으로 작품을 써 내려갔던 것에 대해서도 외치고 있다.


그 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음악극의 형태


김말봉의 작품 세계를 다루고 있는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사실 연극이 아닌 '음악극'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봐온 음악극은 사실상 뮤지컬에 가깝게, 연극을 하다가 노래를 부르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연극과 음악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밴드 더튠이 중간중간 나와 그 당시 노래를 하고, 다시 공연이 이어지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은 낯설었고 가끔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괜찮았다. 특히 노래 하나만으로 그 시대로 돌아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마지막 노래, '그네'가 나올 때였다. '그네'는 김말봉이 작사한 노래였는데, 그때는 전 배우 모두가 나와 노래를 불렀고 따라 부를 수 있는 관객은 따라 불렀다. 사실 필자는 그 노래를 알지 못해 따라 부르지 못했지만, 객석 곳곳에서 어?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따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소름이 돋았던 느낌은 잊기 어려울 듯하다. 시간이 흘러도 노래가 기억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매우 놀랐었다.


안타깝게도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는 9일 막을 내렸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이 다시 올라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작품이 2023년에도 가지는 의미 때문이리라. 다시 올라온다면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고픈 공연이었던 작품이었다.


(참고. 이 작품은 김말봉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훨씬 통찰력 있게 리뷰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진 지식이 이번 작품이 준 지식과 공연 후 찾아본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조금의 지식 정도다. 수많은 김말봉 연구자가 있는 것으로 판단해 볼 때, 혹시 내가 그에 대해 잘못 작성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피드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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