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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ul 28. 2023

부사장님, 기사를 수정하라고요?

나는 기자였다 - 10

이 이야기는 쓰기가 조심스럽다. 만일 문제가 된다면 삭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언론사를, 특히 그 회사를 그만두게 된 가장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다뤄보려 한다.


연초에 우리 회사엔 인사발령이 있었다. 부사장님이 새로 영입되셨는데, 내가 퇴사하기 몇 달 전부터 그분이 본격적으로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하셨다. 부사장님의 정확한 포지션은 알 수 없지만 명확한 것은 딱 하나였다. 편집국 소속은 아니라는 것.


사실 우리 회사의 한 가지 부끄러운 점이 있었다면, 경영을 하는 대표에 의한 편집권 침해가 공공연하게 자행되어 왔다는 것이다. 신문의 마감날이 되면 마감 직전의 종이를 전부 대표가 가져간 뒤 하나하나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몹시 부끄러웠다. 경영진은 사실 편집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언론사의 가장 기본적인 룰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회사의 '대표'가 그렇게 한다는데 일개 직원인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대표가 죽죽 그어놓은 밑줄이 보일 때마다 애써 외면했을 뿐이다. 때로 나를 불러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다. 여러모로 뼈아프게 그 조언을 듣고는 했다. 그리고 우리 회사 대표가 기자 출신이었으므로, '좋은 게 좋은 거지'하고 합리화했다.

그러나 부사장의 개입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부사장의 개입은 두 번이나 있었는데, 나한테 있었던 일은 아니고 동료에게 있었던 일이었다. 갑자기 어느 날 동료가 곤란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더니 사무실에 있던 국장에게 부사장이 인터뷰 질문지를 바꾸라고 제안했다고 얘기했다.


거기서 나는 상황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러나 국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답했다. 그때까지도 나한테 벌어진 일은 아니니까, 그리고 인터뷰 질문지를 바꾸는 정도의 일은 일어날 수 있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부사장의 개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역시나, 본격적으로 기사에 개입했다. 신문의 마감날, 기사의 내용을 고치라고 지시했다. 나는 이것이 매우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정 상 더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수정하라고 지시한 기사의 내용마저도 기자의 입장에서 봤을 땐 전혀 수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내용이었다. 철저히 경영진의 입맛대로 기사를 수정하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힘없는 일개 기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런 상황을 조율할 수 있는 국장 또한 힘이 없는 건 마찬가지인 회사에서, 나는 매우 큰 무력감을 느꼈다.


그때 완전히 깨달았다. 이 회사에서 '언론사다움'을 바라기엔 너무 늦었구나. 지난 글에서 말했던 언론사의 '사명감', 언론사의 '프라이드'같은 건 없구나. 내가 나에게 하는 질문인, '기자 왜 하지?'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는 회사구나.


그렇다면, 그만둬야겠다. 나는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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