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성 Oct 10. 2023

안나의 이야기?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 리뷰

늘 지적됐던 안나 캐릭터의 활용, 개선됐을까?

(※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 포스터. (출처: 컴인컴퍼니)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이하 블메포)를 보고 왔다. 사실 내게 블메포는 양가감정이 들게 만드는 극이다. 가장 취향인 캐릭터가 있지만 가장 취향이 아닌 서사가 있는 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6년에 처음 이 공연을 보며 취향저격을 당해놓고도 눈물을 흘리면서 공연을 재예매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 극이 취향이 아닌 이유는 명확했다. 여성 캐릭터의 활용 때문에. 그런데 이 극이 그런 여성 캐릭터의 시점으로 내용을 바꿔서 돌아왔다는 사실을 듣고 솔깃했다. 내가 불편했던 부분이 달라졌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 변한 부분은 있었지만 기대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목소리를 줬지만

잘 들리지 않는 이유


블메포에는 한스, 헤르만, 안나, 요나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현재, 네 명이 인물들은 과거 있었던 화재 사건에 대한 기억을 찾으려 한다. 사실 어린 시절, 네 명은 고통을 준 후 최면을 걸어 이를 잊게 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실험의 도구였다. 자신들이 실험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들은 최면을 피하는 데 성공하지만 실험실로 향하고, 그날의 실험 대상이었던 안나는 실험을 당하며 나머지 아이들은 안나의 고통을 목격한다.


블메포에서 네 명의 인물들이 잊으려 했고 기억하지 못했던 사실은 위와 같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대에서 위 사실이 어떻게 재현되는가, 그리고 고통을 받는 실험의 대상인 안나의 목소리가 얼마나 비중 있게 다뤄지는가이다. 필자가 봤던 버전에서는 안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네 명의 인물이 모두 피해자이지만, 안나가 가장 고통스러운 실험의 대상이었고 그것은 몹시 생생하게 재현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7년 전에 본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안나가 실험을 당하는 장면에서의 안무는 여전히 기억에 날 정도다.)


이번 안나 버전의 경우에는 달랐을까. 처음에 1945년의 안나(극 중 시점보다 더 미래)가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겠다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기대감은 꺾이지 않았다. 그러나 공연이 진행될수록 그 전의 버전을 베이스로 한 채 안나의 목소리를 곁들여 놓은 정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곁들여진 것도 아니고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은. 한 마디로 어색했다.


게다가 안나가 하는 말은 최면에서 하는 말이라 다소 형이상학적이다. 미래의 안나에게 최면을 건 박사가 지금 어딘가요?라고 질문했을 때 현재의 안나가 숲이요. 이랬는데 그전까지 숲은 등장한 적이 없었다. '방'이 주요 모티브인 것 같았는데 갑자기 숲이 등장해서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잔뜩 띄우면서 봤다. 솔직히 과거-현재-미래가 끊임없이 교차되어서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안나 버전이 안나에게 목소리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안나의 목소리가 잘 들리질 않았다. 다른 형제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안나가 하는 말은 다소 뚱딴지같은 면이 있으니 말이다. 정말 아쉬웠다. 이왕 안나의 방이라는 이름을 달고, 1945년의 안나까지 캐스팅해 왔으면 보다 본격적으로 안나의 이야기를 해보는 시도를 했으면 어땠을까.


뮤지컬 <블랙 메리 포핀스>에서 안나 역할의 김수, 김서연, 이정화(출처 :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30821)


그래도 좋았던 점,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 결말


그래도 바뀐 안나의 방이 좋았던 것은 1945년의 안나가 형제들을 불러 모아 실험을 마무리했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이들은 실험의 일방적인 대상이었지만 미래의 이들은 실험을 마무리하는 주체다. 이것이 바로 실험의 결과다. 최면이란 도구를 통해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고통 마주하는 인간. 그런 점을 강조하는 결말이라 좋았다.


그리고 블메포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넘버와 안무다. 블메포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넘버에 담겨 있는 데다가, 배우들 네 명의 화음이 잘 드러난다. 블메포의 넘버와 안무가 얼마나 좋은지 보여주는 게 오버츄어다. 개인적으로 블메초의 오버츄어를 정말 좋아한다. 2023 오버츄어 리허설 영상이 있어 이를 포스트에 함께 올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sEi8yPJyQDY&pp=ygUW67iU66mU7Y-sIOyYpOuyhOy4hOyWtA%3D%3D


찾다 보니 블메포 공식 계정에 공연 영상이 있어 넘버 Silent Wednesday의 영상도 공유한다!


https://youtu.be/wntxb81TlFs?si=Y7582tuBfAZQQqVU

매거진의 이전글 신은 존재하는가? - 연극 <라스트 세션>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