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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un 26. 2023

젠더프리의 특별함 -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리뷰

평범함을 새롭게 덧칠하기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를 보고 왔다. 모든 배역을 여자 배우가 소화하는 공연이라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유혹하므로, ‘수레바퀴 아래서’ 또한 그러했다. 그렇지만 내용까지 그러하진 못했다. 규율에 답답함을 느끼는 주인공이 자유를 추구하는 친구를 만나 변화한다는 내용. 어디선가 본적 있는 듯한 설정 아닌가. 그래서 큰 기대 없이 다녀왔는데, 꽤나 흥미로운 지점이 보였다.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포스터(출처 : 네버엔딩플레이 트위터 공식 계정)

 

해맑은 자유가 아닌

시니컬한 자유


규율에 답답함을 느끼는 주인공이 만나는, 자유를 추구하는 친구는 바로 하일러다. 하일러 캐릭터 설정을 읽었을 때 처음 떠올랐던 건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앨빈이었다. 앨빈의 이미지가 강해서였을까. 하일러 또한 그러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오산이었다.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공연 사진(출처 : 네버엔딩플레이 트위터 공식 계정)

하일러는 시니컬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규율과 통제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대표적으로 루치우스)에게 냉소를 보내고, 돌려서 아픈 말 하기를 일삼기까지 한다. 때로는 이런 하일러가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만큼, 하일러는 차갑다.     


그러나 자신이 ‘친구’로 삼아도 되겠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하일러는 따뜻하다. 담 넘어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자신을 배신했던 친구가 사과하자 한 번에 그를 품는다. 그래서 하일러의 캐릭터가 마냥 무섭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 어려운 말에 익숙하지 않지만 캐릭터가 ‘입체적’이라는 말은 이런 캐릭터에 쓰는 말일까,라고 생각했다.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공연 사진(출처 : 네버엔딩플레이 트위터 공식 계정)

젠더프리 캐스팅이 주는 특별함


그러나 여전히 ‘수레바퀴 아래서’의 내용은 평범하다. 규율과 통제에 갇힌 주인공이 자유를 추구하는 친구를 만나 서서히 변화해 가는 모습.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이 작품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젠더프리 캐스팅이어서일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여자 배우들에게서 보지 못한 모습들이 많다. 규율에 갇혀 괴로워하는 모습(한스)이나, 자유를 좇아 통제에 맞서는 모습(하일러) 등은 남자 배우들은 흔히 보여준 모습들이지만 여자 배우들은 그렇지 않다. 한스나 하일러의 역할을 남자 배우가 했다면? 그저 원래 보여주던 모습을 관객들이 또 보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 배우가 하면서 이 작품이 ‘새로운’ 것이 된 것이다.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 공연 사진(출처 : 네버엔딩플레이 트위터 공식 계정)

또한 한스와 하일러의 관계가 표현됨에 있어 우정과 사랑 사이의 그 묘한 경계선에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원작에서는 두 사람이 입을 맞추는 장면이 나온다는데, 뮤지컬에서는 대놓고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스가 하일러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저게 우정이라면 나한텐 우정 없어.) 그 또한 만약 남자 배우가 연기했다면 평범한 BL물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 배우가 연기하면서 우리나라에서 흔하지는 않은 GL물 같아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가 새로웠던 점에 대해서 집중했는데, 사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또한 평범하지만 좋다. 클래식이 좋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달까. 어린 말들이 끌고 가는 수레, 그리고 그 말들을 해칠 것처럼 굴러가는 수레바퀴. 수레바퀴 아래서 어린 말들은 속도를 늦출 수 없다. 작품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말은 경쟁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는 수레바퀴 아래 아이들을, 우리를 두고 있지 않나? 이런 지점을 고민하도록 하는 점에서 이 작품은 좋은 작품이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다소 직관적인 하일러의 말들과 넘버의 가사들 때문에 조금은 오글거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직관적인 게 하일러의 성격이고, 직관적인 것 덕분에 가사가 쏙쏙 이해가 잘 된다는 점을 생각하자면 이해할 만하다. 뮤지컬 ‘수레바퀴 아래서’는 할인 이벤트도 많이 하고 있으니 한 번쯤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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