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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 Jul 12. 2023

INFP에게 전화를 돌린다는 것은

나는 기자였다 - 02

전화 바라기가

콜포비아가 돼버린 사연


내가 처음으로 취재를 했던 사건은 한 학교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사건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인권침해가 오랫동안 벌어지고 있었고, 졸업생들이 이를 공론화하려는 상황이었다.


취재의 기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테지만, 나는 전화라고 생각한다. 전화를 돌려야 취재가 시작되고 전화를 돌려야 취재가 끝난다. 물론 직접 방문할 수도 있겠지만 무턱대고 방문하는 경우는 요새는 드물다.


나의 첫 취재도 그러했다. 인권침해를 공론화하려는 졸업생들, 인권침해를 공론화하려는 졸업생을 돕는 이들, 인권침해가 벌어진 학교, 인권침해가 벌어진 학교가 위치한 교육청에 전화를 돌려야 했다.


첫 전화를 걸기 직전에 그 떨림을 아직 잊지 못한다. 졸업생 대표 중 한 명의 전화번호를 사수가 갖고 있었고, 그 전화번호를 받아 든 뒤 전화번호를 뚫어져라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이 사람에게 내가 뭐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해야 할까. 나를 소개하면 흔쾌히 취재에 응해줄까. 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할 텐데.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혼자 끄적끄적 시나리오를 써내려 갔다. "안녕하세요, 어디 어디의 누구누구 기자입니다." 어색하지만 처음으로 나를 그렇게 소개하고 첫 취재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첫 취재 전화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그쪽에서도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전화는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인권침해가 벌어진 학교 측에서는 비협조적이었다. 드릴 말씀이 없다며 차갑게 대하던 목소리가 내 심장을 쿵, 하고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런 일은 1년 동안 흔한 일이 되었다. 차가운 목소리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전화를 안 받는 경우도 흔했고, 기분 나쁜 말투를 쓰는 이도 있었다. 1년 동안 그런 과정을 거쳤고, 전화에 조금 익숙해질 만했음에도 INFP에게 전화를 돌린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매번 전화 통화 시나리오를 쓰고 전화를 걸었다.


사실 나는 전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의 긴 통화를 즐다. 그러나 1년 간의 기자생활을 거치면서, 콜 포비아에 가까운 사람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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