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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y 30. 2023

디데이

2023 5 10

오래 기다려온 여행날이 시작됐다.


2019년에 2020년 5월 여행(바르샤바, 베를린, 코펜하겐)을 계획하고 항공편, 숙박, 열차 편 모두 예약해 뒀었는데 19년 12월부터 코로나가 시작됐고 20년 2월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코로나에 예정된 여정을 모두 취소해야 했다.


하루하루 상황을 지켜보며 5월엔 이 사태가 사그라들지 않을까 마음 졸였던 게 무색하게도 3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코로나는 존재한다.

코로나가 한창 퍼지던 때를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던 나와 성준도 이번 4월 코로나 끝물이라 여겨지는 때에 확진이 되어 호되게 앓고야 말았다. 어찌나 아프고 괴롭던지.. 여행 전에 앓고 다녀오는 게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예전 기억을 돌이켜보면 여행 떠나기 직전에 짐을 싸고, 빠진 것 없이 잘 챙긴 건지 헷갈리는 짐을 챙겨 집을 나설 때, 버스를 타고 공항철도로 갈아타 여행가방을 꼭 껴안은 채 공항으로 향하는 길이 가장 설렜던 것 같은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취소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던 날들에 버렸나? 아니면 너무 오래 기다린 여행이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몇 차례 반복된 유럽여행이어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설레는 감정은 이제 저 멀리 아스라하다.


여행에 대한 설렘을 기대하지는 않았어도 기쁜 마음으로 출발하길 바랐는데.

넉넉하게 잡아둔 시간에서 화장실 들른다고, 무얼 더 정리하고 나온다고 성준에게 전화를 걸어 “20여분을 더 쓰겠다. 괜찮겠느냐”라고 했다.


흔쾌히 20분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고 했던 말과는 달리 성준은 몇 대의 열차를 지나 보내며 조급해졌는지 자꾸 내게 전화를 했다.

자꾸만 전화를 하니까, 짐을 버거워하며 계단을 위험천만하게 뛰어 내려갔다.

그래서 서로 짜증이 난 채 오전 8시 30분, 공항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랐다.


떠나는 당일까지 23일 연속 근무를 하고 출발한 성준이기에 이해해 보려 노력했음에도 시간 여유가 이렇게나 있는데 왜 자꾸 급하게 구는 것인지 성질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난 몇 주간 서로 각자의 일을 처리하느라 체력이 고갈되었고, 지친 마음이 가득 차있으니 즐겁게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어쩐지 꾸역꾸역 억지로인 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부치고 비행기 티켓을 받았다.

모바일 체크인을 미리 했기 때문에 보딩패스가 큐알코드로 이미 있는데 왜 종이티켓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배가 고파서 라운지가 있는 위층 식당들에 무언가 먹을거리가 있을지 기웃거렸다.

그나마 채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비빔밥을 먹기로 하고 식당에 들어섰다.


저건 뭐야?


로봇이 음식을 싣고 돌아다니는 식당은 처음이라 생소했다.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로봇이 가져다주는 식판을 받았다. “맛있게 드세요!”하고 인사를 하며 얼굴로 여겨지는 화면엔 피카츄 사진을 띄우는 로봇을 보며 기괴한 편리함이라고 생각했다.


밥을 먹고 좀 앉아있다가 내려오니 출국하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좀 더 여유를 부렸으면 촉박하게 들어갈 뻔했다. 긴 줄을 기다려 짐 검사를 받고 게이트로 가서 거의 바로 탑승했다.


.. 이제 시작이라니. 그나마 직항이라지만 열세 시간 어쩔 거냐

지겹다 지겨워. 설레는 마음은 많이 쳐줘도 10% 정도.


둘 다 피곤에 절어있는 채 2023년 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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