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림씨 Jan 24. 2019

[신간연재] 03. 책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책

지금 당장 ‘윌리엄 모리스’라는 이름을 찾아보십시오!


"화가이자 디자이너, 건축가이자 작가, 시인이자 사회주의 사상가"

그의 이력만 보아도 윌리엄 모리스라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그런데 사실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따로 있습니다. 그가 디자인, 편집, 인쇄, 제작, 판매한《초서 작품집The Works of Geoffrey Chaucer Now Newly Imprinted》입니다. 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예술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까요?    

 

영국 출신인 윌리엄 모리스가 활동하던 시대는 ‘해가 지지 않는다’던 바로 그 영국의 최전성기였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국내적으로는 산업혁명으로 온 나라가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국외적으로는 전 세계에 걸쳐 말 그대로 영국 식민지에 해가 떠 있지 않은 순간이 없는 그 시대.

그런데 윌리엄 모리스는 그 물량의 시대를 거역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산업혁명이라는 물량의 시대, 기계의 시대, 자동화의 시대, 속도의 시대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권의 책을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고 편집하며 제작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초서 작품집》은 얼핏 보면 그리 대단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흑백에, 현란한 기교도 부리지 않았으니까요. 위의 큰글씨가 모리스 자신이 개발해 사용한 트로이체입니다.


그리고 우선〈켈름스콧 프레스〉를 설립했습니다. 그 후 그는 이 책을 스스로 디자인합니다. 책에는 화려하면서도 각기 다른 14점의 테두리 장식, 그리고 장식 머리글자 26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때까지 '화려한 책!' 하면 뛰어난 화보를 텍스트와 함께 수록하던 관행과는 정반대로 그는 '글자'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지요. 그렇다고 보는 부분에도 소홀하지 않았으니 수록된 87점의 목판화는 그의 평생 친구이자 화가인 에드워드 번 존스의 디자인이었습니다. 

제목에는 모리스 자신이 개발한 트로이체라는 서체를 처음 사용했고, 본문에는 작은 트로이체를 쓰고 검정과 붉은색으로 인쇄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책은 모리스 자신이 디자인한 워터마크(본래 소유주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시를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게 삽입하는 기술)를 새긴 바첼러라는 이름의 수제 종이에 인쇄했습니다. 

그러니 책 한 권은 물론이거니와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예술작품이었던 셈이지요.    

그가 디자인한 워터마크가 있는 종이에 인쇄한 목판화는 그의 친구이자 화가인 에드워드 번 존스의 작품입니다. 흑백으로 만든 이 책이, 책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꼽힙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책을 만들다 보니 이 책의 시작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4년이라는 세월과 막대한 제작비가 투여되었습니다. 게다가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어 사전 판매가 이루어진 단 425부만을 인쇄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목표로 한 것이 경제적 성과가 아니었으니 그의 시도가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애초부터 기계 인쇄로 인해 질이 떨어지는 무수한 책들이 발간되는 것을 보고 사람의 노동을 직접 투입하여 수작업 인쇄를 통해 제대로 된 책을 만들고자 했으니까요.

그리고 오늘날 책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윌리엄 모리스의 뜻은 달성된 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초서 작품집》에는 영국의 대표적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제프리 초서의 대표작《켄터베리 이야기》외에도 초서의 다른 작품,《트로일러스와 크리세이드》,《아스트롤라베에 대한 고찰》등이 실려 있습니다.     





불멸의 서 77|마이클 콜린스, 알렉산드라 블랙, 토머스 카산즈, 존 판던, 필립 파커, 제임스 노티 지음 | 서미석 옮김 | 252*301mm | 256쪽 | 28,000원


매거진의 이전글 [신간연재] 02. 인류가 만든 가장 거대한 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