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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궂은일기 Feb 22. 2019

입에 물린, 시를 뱉어 내자

시알못이 시 감상을 써 나가는 이유

입시 : 입에 물려버린 시, 이제는 다른 걸 풀고 싶다


 국문학과생이라고 다 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읽어야만 하는' 시에 무뎌진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내 얘기다. 입시 공부의 일환으로 읽어야 했던 시는 이해는 잘 되나 마음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고전시가에 보이는 이별의 정한은 그런 사랑 안 해본 사람에게는 질척임이고, 자연예찬은 공감하기엔 생활환경이 너무나 다르지 않나. 그렇다고 전공 공부 때문에 보았던 그 반대 극단의 현대시들은 시인과 일부들만 즐길 수 있는 난해한 코드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보았던 시의 세계가 얼마나 좁은가, 고백한다. 그래요, 저 시알못입니다.


 그러나 시알못이라도 지금은 시를 찾아 읽기를 즐기고 있다. 군 복무 시절 김기택 시집 《껌》을 읽고서야 알았다. 시 장르 자체가 너무나도 어렵거나 따분한 장르인 것이 아니라, 제도 교육권이 내미는 시 중에서 내게 맞는 시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라는 것을. 시는 작은 지면(紙面)에 불과하지만, 잘 만난 시는 내 마음을 붙일 토양을 내어준다. 말할 수는 없지만 평소 느끼고 있던 감각과 정서를 언어와 사유의 영역으로 끄집어내 주니 말이다.


 이젠 스스로 찾아간 시의 공간에서 지긋이 내 마음의 실마리를 찾는다. 

 시를 읽으며 궁극적으로 풀어야 할 것은 시에 담긴 전형적인 상징도, 고급 독자만 알만한 난해한 코드도 아닌, 결국 시에 엉킨 '나'라는 실타래란 생각에서다. 일상을, 그래서 타인과 세계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재갈이 되어 물린 시, 고인 가슴의 가래처럼 뱉는다


 이상하다,  인용에 감상이 덧붙인 글은 평론가의 블로그나 입시 해설이 아니라면 기대하기 힘들다. 특정 시를 검색하면 필사한 시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시가 어려운 장르라지만 필사를 하며 사색을 하기 마련일 텐데, 그 감상을 쉽사리 들려주지 않는다. 짧은 느낌조차 말하지 않는 이유는, 시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누군가 ―그러니까 알아서― 입에 재갈을 물린 건 아닐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말하지 말걸.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이래 해석의 주권이 독자에게 있다는 담론이 널리 퍼졌지만, 내게는 해당이 없다. 수용 미학을 적용하는 것도 잘 훈련된 독서 공동체의 이야기다. 미숙한 독자는 시를 읽으며 단편적인 교훈과 주제를 찾는데 그친다는 걸 스스로도 안다. 너무나도 많은 해석의 자유가 오히려 평론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줄 뿐이었다. 


 생각해보라, 난해하고 실험적인 시에 평론가들이 '감각의 동지' '취향의 공동체'의 운운하며 '우리'를 호명할 때 과연 단박에 '우리'에 속한 독자였는가. 독자들이 평론가에게 시집에 대한 소개를 받는 이면에, 그 느낌의 공동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평론가의 소개장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러나 난해한 시까지 척척 읽어내지 못한다고 해서 비고급 독자가 공개 게시판에 감상을 적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해석의 질을 따지기엔 시 감상을 나누는 사람들의 양이 절대적으로 줄지 않았는가. 평론되지 못한 좋은 시들도 많다. 

 평론가의 무기가 공들인 공부라면, 비고급 독자의 용기는 무모한 무지다. 

 무정부주의적인 해석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기 때문에 일단 애쓴 답안을 내겠다는 것이다. 시인의 성향과 외부 텍스트를 끌어와 시에 딱 맞는 해석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삶의 한 장면을 떠올려 감상하기에 보편으로 다가가는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기침을 하자
    젊은 詩人
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수영, 「눈」 (1956) 부분



 무지하기 때문에 용기 있게 김수영의 「눈」을 단장취의(斷章取義) 해본다. 

 순결한 해설이 가득한 눈밭을 바라보며 

 내 몸에서 나온 더러운 감상을 덧붙이겠다고, 

 재갈이었던 시를 마음껏 뱉어 내자고 말한다.

 젊은 시알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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