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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리 Jun 26. 2024

서울에서 일산으로 여행 왔습니다.

1주간 자유를 얻은 서울 직장인의 근근근교 여행기

"나 일산 간다."

"왜 누구 만나러?"

"아니, 여행으로"

"누가 일산으로 여행을 와ㅋㅋㅋㅋ"


'누', 그게 나다. 일산에서 매일 출퇴근하는 친구에게 일산에 여행을 간다고 말하니 웃긴 놈이라 하더라. 집에서 차로 40분, 강서구에서 강동구로 가는 거리보다 조금 안 되는 거리의 도로를 달려 도착했다. 사실 일산으로 여행을 간 동기는 심플했다. 굳이 멀리 가고 싶지는 않지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쉬고 싶어서.


사실 지난주에도 강원도 정선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멀리 떠나고 싶은 욕심이 없었다. 1주 휴가를 받았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빨리 어디라도 다녀오라고 난리였다. 그들의 논리는 하나같이 "나중에는 여행을 갈 시간조차 나지 않으니 시간이 빌 때 나가야 나중에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은 동의했지만, 반은 동의하지 않았다. 쉬는 날이니 집에만 있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비싼 돈을 쓰면서 여행을 가고 싶진 않았다. 


해외나 제주도로 가야 좋은 여행인가? 내가 잘 쉴 수 있고,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면 그게 여행 아닌가! 내가 생각해도 호기롭지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최대한 가깝지만 여행의 느낌을 낼 수 있는 곳. 이번 여행은 1박 2일로, 정리할 것도 있고 읽고 싶은 책도 4권 정도 챙겼기에 조용하고 책 읽기 좋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서울 근교 책 읽기 좋은 곳이라고 치니 파주 출판단지의 북카페들이 주르륵 검색되었다. 차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조용하고, 책 읽기 좋은 곳. 최적의 선택지였다.


에어비앤비를 켜서 예약이 가능한 곳 중 가장 아늑한 곳으로 예약을 하고 바로 차를 몰고 떠났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3가지. 맛있는 거 먹고 끝내주게 쉬기, 읽고 싶었던 책 완독하기, 올해 회고. 이 3가지만 해도 어딜 가던 만족스러운 여행이 될 것만 같았다.

파주 독립서점 카페 오혜

하루에 7시간만 운영하는 적당한 북카페를 찾아 떠나니 아늑한 공간이 보여서 달려왔다. 자세히 보니 북카페는 아니고 독림출판서점인데 카페처럼 음료도 판매하고 있었고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책도 많았다. 사람이 한적하여 공간에 있는 도서들이나 안내문을 주의 깊게 읽어볼 수 있었다. 첫 방문지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차를 타고 조용한 곳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여행이라니. 일산으로 여행오기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늑한 느낌에 이곳에서 5시간 동안 있으면서 나의 목표 중 2개를 해치웠다. (기존에 40% 이상씩 읽었던) 책 3권을 모두 읽고, 올해 하던 생각들을 모두 정리했다. 이게 왠 걸? 생각보다 너무 빨리 내가 하려고 하던 것들을 끝내버렸다. 이제 나는 '끝내주게 먹고 쉬기'만 해도 이상적인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세팅된 것이다. 해야 하는 일을 빨리 했더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런 건가? 

이야기와 함께 읽은 사람의 마음도 덧대진다는 카페의 글귀가 참 좋았다.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고 있다 보니 문득 나는 마음 편한 여행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굳이 어떤 '지역'을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사람과 가는지가 여행의 정수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리를 오래 차지한 마음에 고소한 원두 향이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더 주문하고, 책을 몇 권 더 읽고 끄적이다가 일어났다. 마음은 가벼웠고, 숙소로 향하는 기분은 상쾌했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이 기분은 한층 더 널뛰기 시작했다.

급하게 잡은 에어비앤비 치고는 숙소가 너무 내 취향이었던 것, 게다가 집에 들어가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피아노 브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작은 부분들에 감동하면서 더욱 안락하게 나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기대를 안 하고 갔던, 어쩌면 그래도 여행을 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떠났던 여행이었지만 서울러의 근근근교 여행은 아주 성공적이었던, 아니 어쩌면 오지 않았으면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았을 여행이었다.


결국 휴식에서 중요한 건 내가 여행에서 이루고 싶은 것을 정해두고, 그것들을 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여행에서까지 뭔갈 해야 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기에, 그걸 끝내고 여행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여행에서 만족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이제 다음 날이 밝았다. 올해 여름엔 오전 7시에도 햇빛이 쨍하게 비춘다. 그래도 불어오는 새벽바람에 아직은 아침 7시에 뛰어봄직하다. 가볍게 땀을 흘리고, 다시 집에 갈 채비를 한다. 다음은 어떤 근교 여행을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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