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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Feb 08. 2019

1차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잘할 수 있을까  

'1차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2019년이 이렇게 시작된다. 27살,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서 나는 또다시 좌절을 경험했다. 불과 열흘 전이다. 2018년을 통째로 담은 저 문장 앞에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로 우두커니 몇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간절함을 외면한 신을 원망하는 동시에 노력에 배신당한 게 서러워 한참을 울었다. 그렇지만 이미 나온 결과가 번복되진 않는 법, 나는 2018년이 남긴 불합격 이후의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살아나가야 한다.

 

지난 2년간 역사과 중등 임용을 두 차례 치르고, 두 번의 불합격을 경험했다. 2차 면접도 열심히 준비해보고 싶었는데, 아직 한 번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어른들 말씀이 모든 일에는 다 뜻이 있다는데, 내 인생에 삼수라니, 도대체 그 뜻이 뭘까? 좌절이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삼수는 아직 시련이고, 고통이다. 그래도 포기가 더 무서워 삼수를 택한 나는 속으로 되뇐다. ‘나는 잘할 수 있을까, 잘할 수 있을까’

 

시험형 인간으로 산다는 것

지난 12월,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서 <Homo Examicus-시험형 인간> 기획전을 본 일이 있다. 전시의 시작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인생이란 시험의 연속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시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반자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입시를 위해, 취직을 위해, 그리고 자격증 취득 등을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은 Homo Examicus, 즉 시험형 인간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그야말로 시험형 인간이다. 시험이 모두의 일상이 되어 온 이 시대에, 나는 내 몫의 시험을 아직은 잘 해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인생의 수많은 계단 중 이제 겨우 취업의 문턱에 이르렀을 뿐인데, 왜 이렇게 내 눈앞의 계단만 높게 느껴질까? 지금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이 계단을 오를 수 있을까? 이 계단을 오르면 시험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좌절이 내일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그리 되게 하겠다는 믿음도 있다. 그렇지만 하루에도 수 번씩 마음이 바뀌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시험에서의 실패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우울이 찾아올 때는 이불 안으로, 침대보다 더 아래로 나 자신을 끌어내린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강제로 갖게 된 여유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하루는 아주 빨리 가기도 하고, 아주 느리게 가기도 한다. 시험과는 상관없이 내게서 한 해가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매일 조금씩 도둑맞은 듯 시간은 금세 흐르고 만다. 지나간 시간들이 아쉬워 돌아보지 않도록 내일을 위해 이 시간들을 의미 있게 보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니 언제고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불안과 우울은 이쯤에서 정리하자. 나는 다시 시작할 힘을 얻기 위해 주변인들에게 전화를 건다. 그들 모두 내 몫의 짐을 덜어내려는 나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많은 말들을 삼켜내고 따뜻한 마음을 내어준다. 실패가 덜 야속한 순간들이다. 앞으로 찾아올 위기의 순간들에 이 마음들이 모여 내게 위로를 전해주기를. 약속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우울과, 또 기대가 이 글에 담겨 응원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나는 잘할 수 있다. 잘할 수 있다.’ 주문을 걸 듯 되뇌이면 진짜로 잘하게 될 것만 같다. 이 호언장담이 지나치게 낙관적일지라도, 이 낙관이 나를 살게 할 것이다.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다 보면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그 뜻이 무엇인지도 알게 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 주문이 제대로 먹히지 않더라도 미래의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지혜를, 또 용기를 갖게 되지 않을까?


2019.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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