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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458조, "전채무자의 항변사유"

by 법과의 만남
제458조(전채무자의 항변사유) 인수인은 전채무자의 항변할 수 있는 사유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채무인수가 발생하게 되면, 인수인은 전 채무자(원래의 채무자)가 갖고 있던 항변의 사유를 들어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항변권의 이전'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채무인수라는 개념은 동일한 채무를 원래의 채무자에게서 새로운 채무자로 옮기는 것이니까, 채무에 붙어 있는 항변권도 채무의 이전과 함께 같이 옮겨가는 것이 논리상 타당하고 볼 것입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우리는 항변의 개념에 대해서 이미 전에 여러 차례 살펴본 바 있었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는 분들은 제433조 등을 복습하고 오셔도 좋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항변사유에는 채무 자체가 원래부터 성립하지 않았다든가, 채무의 발생원인이 되는 계약이 무효나 취소로 이미 실효되었다거나, 동시이행의 항변권 같은 사유들이 모두 포함됩니다(김준호, 2017).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나부자에 대해 1억원의 금전채무를 지고 있는 채무자라고 해봅시다. 그런데 철수를 좋아하는 영희가 나타나서, 철수의 채무를 본인이 인수하겠다고 합니다. 제3자(영희)와 채무자(철수)는 채무인수계약을 체결했고, 채권자(나부자)는 이를 승낙하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채무자는 영희입니다.


그런데 영희가 채무를 인수하고 나서 보니, 원래 철수와 나부자가 했던 계약 자체가 불공정한 것이었습니다. 즉, 불공정한 계약으로 무효였던 것이지요(민법 제104조). 실제로 불공정한 법률행위로써 무효라는 것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것은 사례이니까 그냥 가능하다고 전제합시다. 그렇다면 무효인 계약에 기인한 철수의 1억원 채무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고, 영희는 나부자에게 그 사유를 들어 대항할 수 있습니다. 즉, 영희가 나부자에게 1억원을 대신 갚아줄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다만, 이와 같은 항변사유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은 아님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계약당사자의 지위를 전제로 하는 권리들이 있습니다. 취소권이나 해제권 같은 형성권이 그것입니다. 채무인수는 '채무'를 옮긴다는 것이지 '계약' 자체를 옮긴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계약 당사자의 지위를 전제로 하는 권리는 여전히 (원래의) 채무자에게 남아 있는 것이고 인수인에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철수가 사실 미성년자여서 나부자와의 계약에 대한 취소권이 있었다고 해봅시다. 하지만 이러한 취소권은 철수 본인이 행사하여야지, 이것은 채무의 인수인에 불과한 영희가 대신 행사할 수는 없습니다. 영희는 철수와 나부자 간 계약에서의 당사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당사자로서의 지위에서 인정되는 취소권은 영희에게 이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수인은 이전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갖고 있는 반대채권으로 상계를 할 수도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철수가 사실 나부자에게 받을 돈이 5천만원 있다고 하더라도, 영희가 그 5천만원을 1억원에서 까고(?) 5천만원만 나부자에게 주기로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철수는 자신의 채무를 영희에게 넘긴 것이지, 자신이 갖고 있던 나부자에 대한 채권까지 영희에게 넘긴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채무인수를 통하여 어디서 어디까지의 권리가 넘어가는 것인지, 그 범위를 잘 구분해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인수인이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사유를 알아보았는데요, 참고로 제458조는 채권자와 원래의 채무자 사이에 있었던 항변사유를 인수인이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것이지, 인수인과 원래의 채무자 사이에 있었던 사유를 막 끌어다 쓸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인수인인 영희가, 나부자에게 "내가 철수의 채무를 인수하기로 했던 것은 철수가 나와 해외여행을 가주기로 했기 때문인데, 철수가 여행을 가주지 않고 있으므로 당신에게 1억원을 갚기 싫다."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희와 철수 사이의 문제는 둘 사이의 문제이지, 나부자는 알 바 아니거든요.

*다만, 채무자와 인수인 사이의 채무인수계약의 경우, 그 계약에 무효사유가 있는 때 인수인이 그 이유를 들어서 채권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참고문헌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김용덕, 2020).


오늘은 인수인이 대항할 수 있는 사유를 알아보았습니다. 내일은 채무인수와 보증, 그리고 담보의 소멸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대정·최창렬, 「채권총론」(전자책), 박영사, 2020, 981면.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677면(전원열).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117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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