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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472조, "권한 없는 자에 대한 변제"

by 법과의 만남
제472조(권한없는 자에 대한 변제) 전2조의 경우외에 변제받을 권한없는 자에 대한 변제는 채권자가 이익을 받은 한도에서 효력이 있다.


앞서 우리는 2개의 조문에서 표현수령권자(채권의 준점유자, 영수증소지자)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제472조에서는 이와 같은 경우 외에 변제 수령 권한이 없는 자에게 이루어진 변제는, 채권자가 이익을 받은 한도에서만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이건 무슨 뜻일까요?


사실 정말 원칙대로 하자면, 변제가 유효한 경우는 변제 수령권한이 있는 사람, 또는 잘 쳐줘 봐야 표현수령권자로 인정되는 사람 정도로 한정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이 원칙을 너무 칼같이 지키려고 하다 보면, 오히려 불합리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는 나부자에게 1억원의 금전채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희라는 사람이 변제기에 나타나, 나부자에 대한 빚 1억원을 받으러 왔다고 철수에게 말합니다. 철수는 영희와 나부자가 평소 친한 친구 사이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믿고 1억원을 건네줍니다. 영희는 1억원을 잘 받아다가 나부자에게 가져다줬습니다. 나부자는 뭔가 뜬금없었지만 오히려 덜 귀찮고 잘 됐다고 생각하고 1억원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원칙대로 생각해 봅시다. 영희는 나부자의 친구일 뿐 수령 권한을 위임받은 적도 없으므로, 변제 수령 권한이 없는 사람입니다. 거기에 위임장 같은 것도 없었고, 채권의 준점유자라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영희를 표현수령권자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영희에게 1억원을 준 철수의 행위로 변제의 효력이 유효하게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철수는 여전히 1억원의 채무를 지고 있고, 나부자는 철수에게 1억원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철수는 영희에게 부당이득 1억원을 반환하라고 청구하여야 하고, 영희는 다시 나부자에게 1억원을 돌려받아 철수에게 돌려주어야 하며, 철수는 돌려받은 1억원으로 다시 나부자에게 변제를 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은 경제적으로 무의미한 행동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472조와 같은 규정을 만들어 둔 것입니다. 제472조에서는 채권자(나부자)가 실질적으로 이익을 받은 한도(1억원)에서 변제의 효력이 발생하게 되므로, 철수는 비록 영희에게 돈을 준 것이기는 하지만 채무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학자들은 제472조를 두고, 불필요한 연쇄적인 부당이득반환의 법률관계를 피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규정이라고 설명합니다(박동진, 2020).


위의 사례는 이해를 위하여 아주 단순화한 사례이고, 현실에서 제472조가 적용되는 사례는 대부분 굉장히 복잡한 사안인 예가 많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따로 판례를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특히 채권자가 이익을 받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의 논의도 있으니, 한번 찾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은 권한 없는 자에 대한 변제를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변제비용의 부담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참고문헌

박동진, 「계약법강의(제2판)」, 법문사, 2020, 48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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