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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Mar 09. 2022

얼렁뚱땅 열심히 살기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식




    "이제 인턴도 끝났는데 뭐 하고 지내게?"


    인턴 종료 이후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나는 뻔뻔하게 대꾸했다. 본가 내려가서 조기 잡으려고. 한… 2년 정도? 그러면 상대방은 황당함에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미래 계획에 대한 질문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허무맹랑한 답을 내놓는 것은 단순히 '할 말이 없어서'였다. 처음에야 아무 생각 없다고 솔직히 답하곤 했다. 그러다 무계획에 가까운 나의 계획을 염려스러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몇 차례의 경험으로 깨닫고 나서는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리나 하자, 싶었던 거다. 그럼 웃으면서 넘어갈 주제가 되니까. 조기 잡이의 어려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던 친척 어른 한 분을 제외하고는, 그런 나의 전략이 통하기도 했다.


    '섬에서 2년간 조기를 잡으며 살 것이다'라는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니었던 것이 나는 퇴사 후 바로 본가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달 동안은 무계획적인 삶을 만끽했다. 맛있는 걸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깨고 싶을 때 일어나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지냈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2년은 이렇게 한량처럼 살 것이다,라고 선전포고를 한 덕에 부모님도 이런 나의 생활에 말을 얹지 않았다. 그저 그러려니, 할 뿐.


    "아빠, 나 내일모레 다시 서울 가야 해."


    그런 의미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던진 말 한마디는 폭탄선언과도 같았다. 2년 구두계약을 걸어두고서 한 달 만에 방을 빼는 꼴이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왜 갑자기 올라가냐는 질문에 나는 멋쩍게 답했다. 어, 나 인턴 붙어서 다음 주부터 출근해야 해….


    같이 사는 부모님도 모르게 서류부터 면접까지 해치워버린 나는,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됐다. 부모님도, 서울에 있던 오빠와 동생도, 매일매일 연락하고 지내던 친구들도,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빠른 복귀였다. 여유로운 백수를 가장하며 뒤에서는 치밀하게 취업 준비를 한 듯한, 그런 모양새가 된 것이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사실 나조차도 짐작하거나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방에서 뒹굴거리면서 휴대폰을 하다가, 우연히 희망하던 직무의 채용 공고를 발견했고, 떨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쓰는 것도 경험이니 한 번 시도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쓴 서류가 덜컥 붙었다. 여태까지 본 면접 중 가장 못 본 면접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면접을 못 봐서 붙을 기대도 안 하고 있던 와중에 합격을 했다. 출근날까지도 얼떨떨함이 가시지 않을 만큼, 모든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뒤늦게 두 번째 인턴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한참 쉴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그럼 나는 머쓱해하면서 답하는 것이다. 뭐, 얼렁뚱땅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혹자는 내 말을 듣고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남들은 치열하게 노력해서 얻는 기회를 얼렁뚱땅 얻었다고 말하는 것은 배려 없는 행동 아닌가, 자신은 그렇게 공들이지 않아도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걸 자랑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을. 어쩐지 얼렁뚱땅이라는 단어는 무언가를 공들여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리니 말이다.


    나는 얼렁뚱땅 산다. 1년 후, 10년 후, 20년 후 나의 미래 모습을 세밀하게 계획하지 않는다. 쉬고 싶을 때는 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하고, 미루고 싶은 일은 할 수 있는 한 미루면서 산다. 다만 이 말이 곧 삶을 공들여 살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당장 내일의 계획이 없더라도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계획 없이 살아낸 오늘 하루에도 어떤 특별함이 있었는지 기록하면서 말이다.


    쉬고자 할 때는 최선을 다해 쉰다. 좋아하는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고, 맛있는 걸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온 마음을 다한다.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해주고, 그림책을 사러 먼 서점까지 탐방을 가는 것처럼.


    미뤄선 안 되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마친다. 퇴사를 하던 날, 모두가 짐 정리를 하고 일찍 퇴근하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앉아 업무를 마무리했던 것과 같이.


    무계획 속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변수들과 그로 인한 결과들을 받아들이면서 산다. 내 삶은 촘촘하게 짜여있지 않은 대신, 그 얼기설기 엮은 모양 사이로 어떤 실이든 마음껏 넣을 수 있으므로. 엮어낸 것을 풀어내고 다시 뜨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본가에 내려와 아무런 계획 없이 꼬박 한 달을 열심히 쉬었던 것. 그러다가도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겼단 이유로 한 달 만에 그 여유로움을 포기하고서 열심히 자소서를 썼던 것. 면접도, 인턴 합격도 아무것도 예상 못했던 일이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임했던 것. 이게 내가 얼렁뚱땅, 내 삶을 공들여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의 매일은 이런 식으로 늘 얼렁뚱땅 흘러간다.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을 누군가는 한심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나 자신은 이렇게 살아가는 매일이 즐겁고 보람차다. 결국 그 시간들이 스스로의 행복 가장 가까이에 닿으려는 치열함의 흔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산다. 엉렁뚱땅,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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