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
번쩍이는 사람은 아니어도 돼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도시의 삶을 동경해왔다. 강 위를 건너는 지하철을 타는 기분은 어떨까? 63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타는 기분은? 남산에서 야경을 바라보는 기분은, 얼마나 황홀할까?
좁은 섬, 그보다도 더 좁은 방 안에서 유일하게 번쩍 번쩍이는 TV 속 화면을 바라보면서 그 기분을 상상해보곤 했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의 맛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겪어보지 못한 황홀함도 상상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날은 잠들기 전 생각했다. 해가 지면 쥐 죽은 듯 고요해지는 이 섬을 벗어나, 밤중에도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에서 살고 싶어.
그렇게 염원했던 기억은 생생한데, 그 염원이 이뤄졌을 때의 기분은 생각나지 않는 게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상경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서울에 처음 올라온 날의 기억도, 그때의 기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더듬더듬 떠올려보자면 당시의 기쁨과 설렘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도시의 네온사인은 TV에서 보는 것만큼 화려하지만, 꼭 그만큼 아름답지는 않다는 걸 일찍이 깨달은 탓이다.
수많은 헤드라이트 불빛, 번쩍거리는 가게 간판, 밤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는 고등학교와 회사 건물들. 그 모든 것들이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피곤하게 느껴졌다. 도시의 밤은 대낮같이 밝아서, 모두가 쉬어가는 밤 없이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끔 이 도시의 빛들이 외롭게 느껴졌다.
그럴 때면 종종 어릴 적 살던 섬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달을 제외하고는 어떤 별도 볼 수 없는 도시의 하늘보다, 무수히 많은 별자리를 볼 수 있는 섬의 하늘이 보고 싶어졌다. 형형색색의 빛으로 번쩍거리는 도시의 간판들보다, 하얗게 하늘을 수놓는 섬의 별들이 보고 싶어졌다. 클락션 소리와 엔진음이 가득한 도시의 거리보다, 파도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달빛을 바라볼 수 있는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어릴 적 늘 곁에 두고 있던 반짝임들을,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리워했다.
도시의 네온사인처럼 크고 화려하게 빛나는 삶만을 꿈꿔왔는데. 낮이고 밤이고 꺼지지 않는 빛을 가지고 싶었고, 어디서도 눈에 확 들어올 만큼 강렬한 빛을 가지고 싶었고, 아름다운 야경에 한몫할 수 있는 그런 빛을 가지고 싶었는데. 나는 나를 알아갈수록 그런 화려함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반짝임을 갖고 싶냐면,
스스로 빛나는 반짝임을 가지고 싶다. 전기가 들어와야만 반짝이는 간판보다는 언제나 스스로 반짝이는 별 같은 사람이고 싶다.
작더라도 이어지는 반짝임을 가지고 싶다. 나 혼자서 크게, 또 밝게 빛나지 않고 주위의 반짝임들과 하나의 별자리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마지막으로는, 언젠가 가장 어두운 이에게, 가장 소중한 빛이 되어줄 반짝임을 가지고 싶다. 누군가의 밤을 대낮으로 만드는 불빛이 아니라, 어둠을 헤매는 이에게 이정표가 되어줄 별빛이 되고 싶다.
그 반짝임을 향해 가는 지금 나는 더 이상 크고 화려한 빛을 동경하지 않는다.
어린 내가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닮은 삶을 꿈꿀 것이다. 반짝을 넘어 번쩍거리는 삶을 말이다. 지금 이 새벽에도 이를 위해 밤낮 없이 열심히 살아내는 이들이 있다. 그 노력이 결코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 노력들이 모여 이 삭막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와 같이 그 속에서 외로움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그런 반짝임 없이도 우리는 이런 반짝임을 가질 수 있다고. 이렇게나 오래, 이렇게나 아름답게 반짝일 수 있다고. 아니, 지금도 그렇게 반짝이고 있다고.
한밤 중에도 대낮 같은 이 도시의 눈을 벗어나서, 섬의 눈으로 바라보면 분명 보인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우리의 별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반짝임이 얼마나... 황홀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