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죽지 않았을 텐데, 아나필락시스를 치료하는 에피네프린 펜
7월, 올 하반기 라인업에 아쉽게 작년 연말, 짧은 대면 공연을 마무리했던 젠틀맨스 가이드가 포함됐다. 2018년의 초연, 2020년의 재연, 그리고 돌아올 2021년의 3연까지, 토니어워즈는 괜히 받는 것이 아니라는, 웰메이드 뮤지컬, 그리고 어쩌면 본격 약국 뮤지컬, 젠틀맨스 가이드를 떠올려본다.
젠틀맨스 가이드는 퀵체인지가 매력이다.
캐스팅 보드의 몬티는 몬티 나바로, 풀 네임이지만, 다이스퀴스는 이름이 없다. 오직 성(Family name)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스퀴스라는 성을 가진, 다이스퀴스 가문의 9명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다이스퀴스 역을 맡은 배우는 9명의 배역을 달리 하며, 수도 없이 무대에 오른다. 그래서 그는 에제키엘, 헨리 다이스퀴스 등 이름이 많지만, 캐스팅 보드엔 오직 다이스퀴스란 이름으로 표기될 뿐이다.
그 다이스퀴스가 분장하는 역할 중 하나는 옥스퍼드를 졸업한 헨리 다이스퀴스다. 주말엔 농장에 와 시간을 보내는 그는, 주중엔 런던 은행의 대주주이자, 동시에 런던 땅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부호이고, 동시에 피비 다이스퀴스의 오빠 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사벨 다이스퀴스를 엄마로 둔, 어느 날 다이스퀴스 집안 계승 서열 10위로 떠오른 몬티 나바로 다이스퀴스에 있어서는 그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 헨리에게 취미가 있었으니 바로 양봉, 벌을 치고 키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몬티의 꿍꿍이를 모른 채, 양봉을 한다는 자신의 취미를 이야기하고, 벌에 몇 방 쏘인 적이 있는데, 이제 몇 방 정도로는 끄떡없다는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한다. 똑똑한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명색이 무색하게도 말이다.
그리고 헨리의 양봉 취미를 알아챈 몬티는 라벤더를 준비하는데,
라벤더(Lavender)는 꿀풀 목(Lamiales) 꿀풀과(Lamiaceae) 라벤더 속(Lavandula)의 식물이다. 이 라벤더는 고대로부터 생약으로 이용되었는데, 주로 진정 목적으로 많이 쓰였다. 이런 라벤더 오일을 진정, 수면을 도와주는 보조제로 쓰이기도 하는데, 에센셜 오일은 고농축 오일로 천연 라벤더 보다 훨씬 강력한 향과 효능을 지닌다. 물론 라벤더 역시 풀이고 꽃을 피우는 식물이기에, 라벤더 꿀이 팔려 나가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몬티는 헨리의 양봉용 모자에 라벤더를 잔뜩 뿌린다. 그 향이 마치 꽃 향기로 느껴져 벌들이 모여들도록
모여든 벌들에 쏘여서, 헨리는 결국 심한 아나필락시스를 일으킨다.
뉴스를 보면 가끔 알러지성 체질인 아이들이, 혹은 가을철 벌초에 나섰다 벌에 쏘여 사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헨리가 살았던 영국에는 이런 꿀벌에 쏘였을 때의 치료 지침이 소아/그리고 성인에 맞춰 갖춰져 있다. 그만큼 흔하고, 또 그저 귀엽게 생긴 벌이라고 넘길 일은 아닌 셈이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중 하나가, 에피네프린 펜이다. 펜 모양으로 생겨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자가 주사로 급성 아나필락시스시에 대처할 수도 있다. 한국에선 흔하지 않지만, 미국 아동의 급식으로는 자주 나오는 땅콩 크림 알레르기나 땅콩 알레르기로 인해 갑자기 숨을 쉬기 어렵다며 데굴데굴 구르거나 하는 영화 속 상황에서 푹 꺼내어 찌르는 그 펜, 바로 그 펜이다.
국내에서도 과거엔 희귀 의약품으로 분류되어, 희귀 의약품센터를 통해서만 공급이 되었는데 지금은 비엘앤에이치가 수입하고, 급여도 된다. 바로 젝스트 프리필드 펜이다.
젝스트 프리필드 펜은 프리필드라는 이름처럼, 펜 모양에 바늘이 달려있다. 쓸 수 있는 적응증은 곤충 침에 쏘이거나 물렸을 때 혹은 음식물, 약물 기타 항원, 또는 특발성 혹은 운동 유도 아나필락시스로 인한 중증 급성 알레르기 반응(아나필락시스)의 응급 처치에 쓰인다.
150 마이크로그램은 체중이 15~30 kg, 300 마이크로그램은 체중 30kg 이상의 청소년 및 성인에 쓰인다. 30kg이 넘을 때, 최초 투여 후 5~15 분 정도 경과해서, 1회 이상 더 투여할 수도 있다.
이 에피네프린은 아나필락시스의 증상을 역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작용을 한다. 에피네프린은 알파-1 수용체의 작용제(agonist)로서 혈관 확장을 증가시키고, 말초 혈관 저항을 증가시키고, 점막 부종을 줄여준다. 베타-2 수용체에 대한 작용제 효과로서는 기관지 확장과 비만세포나 호염구로부터의 mediator의 감소를 보인다.
에피네프린은 이렇듯 가장 많이 쓰이고, 가장 좋은 치료제임은 분명하다.
특히, 알레르기나 아나필락시스는 대개 일상생활 중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에, 다른 의료적 처치는 거의 불가능하다. 헨리처럼 야외에서 벌에 쏘였을 때, 어떤 약이 있을 수가 없지 않나. 항상 두 개 이상의 펜을 휴대하도록 처방하고, 환자를 교육하는 이유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아나필락시스는 특히 헨리가 겪었던 것처럼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아나필락시스는 어떤 것에 의해 알레르기를 일으켰는지에 따라 다르다. 증상의 시작으로부터 호흡부전이나 심장마비가 올 때까지 걸리는 시간의 중앙값(median time)이 고작 5분밖에 없는 약물이나 유기 화합물로 인한 것부터, 벌에 쏘인 경우는 15분, 가장 길다는 음식 알레르기 조차 30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펜 한 자루만 있었어도, 적어도 기도가 붓고, 호흡부전이 오는 그 상황은 막아서, 안전히 병원으로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벌에 꽤 여러 번 쏘여 이미 알러젠(알레르기 유발 항원)에 꽤 여러 번 노출되었었는데 말이다. 물론 헨리가 여전했더라면, 그 이후 어떤 결말의 진행이 어려웠겠지만 말이다. 그랬더라면 유지니아 백작 부인이라던가 미스 슁글 같이, 훌륭한 앙상블들을 볼 수 없어, 극이 밋밋하게 끝이 낫겠지만 말이다.
아나필락시스는 흔하다면 흔하고, 흔하지 않다면 흔하지 않은 질환이다. 예측할 수 없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몇 명에게 필요한 약물인지 그 이익 구조를 예측하거나, 매출을 통한 수익을 예상하기 어렵기도 하다. 때문에 허가를 받고도 유통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것 때문에 심한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는 엄마들의 호소가 주기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한국 희귀 의약품 센터(국내에 허가되지 않은 약물이나, 허가는 되었어도 상업적으로 유통되지 않는 약물의 유통을 담당한다)를 통해 공급이 되다가, 작년 초부터 지금은 급여로 유통되고 있는 젝스트 펜, 약 56000원으로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는 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