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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원 Aug 29. 2021

불온한 조선인 혁명가-뮤지컬 박열

박열 보다 박문자, 트레바리 북뮤지컬과 함께 한 뮤지컬 원작 탐험기

3년이 넘게 함께해오고 있는 트레바리 북뮤지컬, 뮤지컬과 원작을 함께 톺아보는 이 모임은 취미에 취미를 더하는 행복한 경험이다. 언젠가 꼭 함께 쓰는 북뮤지컬 회고를 써보리라 다짐만 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오프라인 모임이 잠시 중단된 틈이지만, 이 작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 자체 원작 모임과, 온라인 토론을 하고, 남은 후기를 써 보려고 한다. 부디 다음 모임은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박열>은 2017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동명의 영화 <박열>의 스토리라인을 따르고 있다.

젊은 창작진들이 개발한 이 작품은 올해 7월 처음으로 무대에 올라, 오는 9월 12일까지 그 공연의 막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박열>은 8월 트레바리 북뮤지컬의 작품이었다.



두 달을 조금 넘겨 공연한다. 뮤지컬 박열 - ⓒ뮤지컬 박열/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뮤지컬 박열 http://ticket.yes24.com/Perf/39388

극도 보고 독후감도 써야 만날 수 있는 트레바리 북뮤지컬을 위해, 재관람 후 남겼던 독후감을 남겨 본다.


실존 인물을 다루면서, 그 인물에 대해 큰 왜곡이 없이 보편적 정서를 잘 풀어낸 작품. 동명의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존재를 몰랐던 박준식, 아니 박열에 대한 이 작품은 큰 기대는 없었는데, 기대 이상의 완성도를 볼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고칠 점도 미흡함 점도 많을 창작 초연에서 의외로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간결한 스토리에 연기를 펼친 배우들의 힘, 그리고 전형적이지 않은 음악 때문인 것 같다

근현대사를 다룬 공연들이 최근 들어 꽤 많이 다뤄지고 있다. 일부는 왜곡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얄팍한 서사를 지적받기도 하며, 또 ‘경성’이냐 할 만큼 경성 타령을 해대고, 천편일률적 똑같음에 안 봤지만 본 것 같다는 혹평도 잠시, 그 속에서 인물들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박열 역시도 그랬다. 이준익 감독의 다른 영화 ‘동주’의 개봉에 앞서 서울예술단이 ‘윤동주, 달을 쏘다’를 통해 송몽규라는 주변인에 처음으로 주목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물론 박열은 동명의 영화를 통해 이미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를 어떻게 하면, 그의 인생에서 매력적인 부분만 뽑아 전달할 것인가를 꽤나 영리하게 각색한 듯하다

그런가 하면, 극의 전개에 있어 박열만큼이나 비중 있는 인물로 다뤄지는 후미코 역시, 영화보다는 자세하고 나중에 책을 읽으며 그녀의 전사나 성격을 좀 더 알게 되어서, 주연이지만, 극의 제목이 ‘박열’인 것처럼, 그녀에게는 무언가 감춰진 서사가 있겠거니 하고 추측을 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장치 또한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 집에서 내다 팔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물건’이라는 말이, 왜 친할머니는 미우면서도, 아주 행복하지 않았을 부강면 생활을 기억하는지 등, 말하지 못한 서사가 이해되는 듯 해, 이를 연기적으로 혹은 넘버의 가사 한 두 개로 암시하되, 맥락을 해치지 않는 선으로 꽤나 잘 전개했구나 하는 점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박열 이야기에서, 영화에서는 실존인물로 그려졌던 예심판사 다테마쓰 후지에서 일부를 가져온, 류지역만 어느 정도 허구의 인물로 그려진 것 말고는 대부분 실화에 기인한 내용이었다. 왜 류지는 굳이 가상의 인물을 썼을까, 별류지는 왜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는 걸까.(두 번을 봤는데, 모든 배우가 느낌이 달랐지만, 마지막 씬에서 초류지를 울지 않는데 별류지를 울더라는 점에서, 자둘에서 너 왜 우니! 가 놀라운 포인트였다)  일본이 패망해서, 자신이 (본인의 기준에서) 이미 져버렸다는 걸 깨달아서? 그 류지를 빼고는 제법 괜찮은 서사였다고 생각한다.  

책상과 걸상이 식탁도 되었다고 재판장도 되었다가 불령사의 아지트도 되었다가 변하는 무대 연출 또한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류지의 방을 하수 쪽 구석에 배치하고, 단을 반단 낮춤으로서 류지는 철저히 서술자이자 관찰자의 포지션임을 드러내는 연출이라던가, 객석이 작은 극장, 3명의 배우라는 한계점을 영리하게 극복한 극적 매력이 돋보이는 극이었던 것 같다. 박열 역시도, 종국에는 그의 기여점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고, 언급할 수 있는 인물이지만, 북으로 간 사람이었기에, 사료가 남아있거나 이야기할 수 없어 신비한 지점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질서를 추구하는 국가가 받아들이기 힘든 아나키즘, 그의 마지막 생각이었던 극 허무주의를 그리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사상운동이 사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던가(불령사를 조직하고, 확대해 나가는 과정), 의거를 일으킨 사람이 아니고, 일본인 아내를 두고, 북으로 떠난 사람이라는 점에서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자, 동시에 위인이라기보다는 (그래도 사범학교를 나왔으니 꽤 똑똑한)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 1920년대를 돌아볼 수 있는, 극 중 대사로 민족대표, 변절한 문인(춘원 이광수가 대번 그려진 것은 어떤 이유인지)과 대비되는 어쩌면 보통사람 이야기를 했다는 점에서도 현시점에서 적당히 세련된 극을 본 것 같아 꽤 만족스러운 관극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qOcZvcOQok

2021 뮤지컬 [박열] 넘버 PREVIEW 선공개, 들어보면 반하지 않을 수 없다.  - 출처 : 더블케이 필름 앤 시어터 유튜브

각자 이런 재료들을 가지고 만나는 북뮤지컬 모임은 미처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들도 알려주는데,  평소 결코 읽지 않았을 평전을 북뮤지컬과 함께 하며 세 편씩이나 읽었던 것도 큰 변화다(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안도현 '백석 평전', 음악극 태일 - 조영래 ' 전태일 평전')


http://www.yes24.com/Product/Goods/43831823

평전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평소 함께 토론하지 않는 작품에 대해서는 오늘 좋았다. 넘버가 너무 훌륭하다 정도의 뻔하디 뻔한 후기 밖에 기록하지 못하는데 반해, 작품을 엮어 보고, 또 숨겨진 의미를 함께 생각하는 등 생각이 넓어지는 지점 역시도 북뮤지컬을 하며 얻는 또 하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2021.7.28 밤공, 백기범(박열), 이정화(후미코), 문경초(류지)로 관람
독립운동 관련 다양한 뮤지컬이 있는데요,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아직 무대 위에 올려지지 않은 독립운동도 많은데, 어떤 것을 뮤지컬로 만들면 좋을까요?
박열은 영화 <박열>이 개봉하기 전까지 유명한 독립운동가 혹은 위인은 아니었습니다. 왜 뮤지컬은 박열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요? 이 작품이 박열을 내세움으로써 하고 싶었던 이야기,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유난히, 경성이 단골 소재인 극들에서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개봉을 앞두고 있는 뮤지컬 영화 <영웅>부터, 올 초 수원에서 신작으로 공연되었던 창작가무극 <향화>, 조정래 작가의 아리랑을 원작으로 한 <아리랑>을 비롯해, 올해 올라왔던 <윤동주, 달을 쏘다>를 통해, 소극적 독립운동과 적극적 독립운동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워치>, <외솔> 등 주로 지자체와 협업해 올라오는 인물 이야기들을 하며, 언젠가 유관순을 다룬 이야기나, 의열단 이야기,  러시아의 홍범도, 최재형을 다룬 뮤지컬도 한국에서 작품화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왜 안중근이나 윤봉길 같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 박열이라는, 영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였나 라는 면에서는 박열이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하고, 동명의 잘 짜인 영화가 있다는 이야기 이외에도, 오히려 김구나 많이 알려진 인물들의 경우, 긍정적 업적만 주목되어온 바, 많은 사료들을 조사하고, 극화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또, 동시에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그 시절 재일조선인의 삶을 재조명하고 주변의 누구라도 불령사의 일원일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었나 하는 우리만의 생각까지, 서론부터 아주 뜨거웠던 토론이었다.


모두들 가네코 후미코라는 '박문자'로 기억되길 원했던 스물셋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며,  뮤지컬 <박열>이 아니라 뮤지컬 <가네코 후미코> 였어야 맞지 않냐는 주제 앞에서,

후미코는 자살을, 박열은 순응을 택합니다. 후미코가 더 뜨거운 사람이었기 때문일까요? 함께 삶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이들의 마지막은 왜 달라졌을까요? 1926년의 후미코는 1949년의 박열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을 것 같나요? 이 작품의 경우 후미코가 더 돋보인 다는 평이 많았는데, 뮤지컬 <박열>이 아니라 뮤지컬 <가네코 후미코>로 명명하면 어땠을까요?


박열에서 후미코를 연기했던 이정화 배우님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던 후미코의 옥중수기 '나는 나'를 알게 되고, 소설처럼 후루룩 읽히는 유려한 필체로 빨리 읽힌다는 전언처럼,


뮤지컬에선 한 줄의 대사, 가사로 처리된 후미코의 조선 시절, 그리고 어린 시절의 역경과 왜 그녀가 박열의 사상에 감화되어 그와 함께 하는 동반자적 삶을 살기로 한 것인지를 이해하기에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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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 권  더 읽고 나니, 옥중에서 반성문을 빙자한 글을 쓰는 것조차 검열의 앞에 쉬지 않았던 후미코의 찢긴 원고 안에 담겼을 못다 한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아, 아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가네코 후미코>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단지 누구의 아내였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에서 올리는 일제강점기 도쿄를 살아갔던 인물을 배경으로 한 극이 일본인을  타이틀롤로 내세우기 어려운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고 결론을 내렸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일본에서 개봉되었던 영화 <박열>의 제목 또한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로 변주되었으니 말이다.


후미코 역의 이정화 배우의 프로필, 나는 나 속 후미코가 걸어 나온 느낌이다  - ⓒ뮤지컬 박열/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촬영을 마친 최희서 배우에게 한국사람들에게 이제 가네코 후미코의 모습은 네가 연기한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라 했다는데, 뮤지컬 - 영화 - 뮤지컬 순으로 관람하고, 책도 여러 편 읽은 내게 어쩌면 눈앞에서 불령사를 조직하자 하고, 동거 서약을 내미는 당당한 모습 때문일지는 몰라도


그 동거 서약에 활동에 있어 가네코 후미코가 여자라는 이유로 배제되어서는 안 되며, 둘의 관계는 사상적 동지이며, 둘 중 누군가가 사상이 변하여 권력자에게 무릎 꿇는 날이 온다면, 그날로 이 동거는 끝이라는 당당함.


이것이 '동경  크러쉬' 아니고 무어라 말인가.

이런 장면이 넘버로 강조되어서 인지 몰라도 내게 있어 가네코 후미코는 최희서가 아니다.

오히려 내게 가네코 후미코는 이정화, 최지혜로 기억될 것만 같다.


커튼콜데이였던 210728, 여운이 크게 남았던 박열의 세 배우


뮤지컬 박열은 특히, 동명의 영화와 다른 구성을 취하는 점이 결말 부분인데, 결말을 액자식으로 구성함과 동시에 과거의 열과 후미코의 회상씬으로 구성, 그들의 결말에 여운을 줬는데,

책을 읽을 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인물이 시각화된 작품을 통해서 봤을 때에는 감동 적이고 대단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두 인물을 액자 안에 잘 담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요. 박열과 후미코 스스로는 액자 안에 어떤 모습을 담고 싶어 했을까요?    


전 생애를 다 소개한 박열 전기, 박열 위주이다 보니 빈약한 후미코의 등장 씬 때문이었겠지만,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만을 벼뤄낸(박열의 말년은 보여주지 않음이 그를 아름답게 기억하기에 적합했던 것 같다. 물론 광복 국면에서 독립운동가 혹은 사상가로서의 그를 고려한다면,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행적이지만, 후미코에 마음이 가서일까) 연극적 기법으로 가장 찬란한 순간만을 그려낸 선택은 영리하고 또 인상적이었다.


우리 다운 모습으로 찍자던 사진 - 박열(김재범)과 후미코(이정화)의 사진은 고향의 어머니에게 전달되었을까?-ⓒ뮤지컬 박열/더블케이엔터테인먼트

유난히, 배우나 배역보다 책에서 알게 된 시대 배경이나, 철학 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어쩌면 특별했던 북 토크였는데, 아나키즘을 책에서 한 줄 보았던 무정부주의 정도로만 이해했고, 아나키스트는 그 언젠가 엄마 옆에서 보았던 드라마 <백야 3.98>에서 "아나키스트가 뭐야?"라는 물음 정도로만 기억에 남았었는데 이 기회에, 박열의 사상이 사회주의 - 아나키즘 - 허무주의로 변해가는 과정을 알 수 있었고, 단순히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아나키즘 안에서도 그 결이 다양할 수 있음을 배워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박열은 본인의 허무 사상을 설명하며 절대적 진리나 선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박열의 생각에 동감하시나요? 또한 여러분은 강자와 약자를 포괄하는 절대적 진리나 선이 있다 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살아가며 기준으로 삼아야 할 가치는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세상에서 아나키스트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치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 제도를 모두 부정하고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만약 지금 박열과 후미코가 살아있다면 그들의 아나키즘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을까요? 혹은 아나키즘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았을까요?

마지막 순간, 유해의 수습을 위해서였다고는 했지만, 관습 안으로 다시 들어가 혼인신고를 하자던 박열의 제안이 어쩌면 살아남기로 결심한 그의 선택을 예감케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되돌아보기도 하고, 극을 보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나니 더 많이 마음에 남는 극이었다.

8월 8일 밤공, 배역을 모두 바꿔 조훈(박열), 최지혜(후미코), 임별(류지)로 자둘, 90년대생 페어로 1923년을 바라보는 느낌도 새로웠다.

9월이 곧 다가오고, 마지막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북 토크를 하며, 마음에 담았던 주제들을 가지고 세 번째 열과 후미코를 만나러 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열과 후미코의 퇴장, 행복해 보이는 그들, 실제가 어찌 되었건, 그 순간 그들의 마음에 남아있었을 액자 속 마지막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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