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재키의, 토니의 속마음이 궁금하셨다면, 꼭 펼쳐야 할 책
이. 최. 뮤.
이 시대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이 수식어는 빌리 엘리어트가 아닌 어떤 극에도 어울리기 어렵다. 아니 어울릴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빌리 엘리어트의 시작이 영화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만, 영화와 뮤지컬 사이 소설 빌리엘리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나 역시도 아마 트레바리 북뮤지컬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영화를 책으로 옮겨놓은 시나리오 북 혹은 대본집이 아닐까 했던 기우도 잠시, 이 훌륭한 책을, 책을 보고 다시 본다면 온전히 달라 보일 이. 최. 뮤. 빌리엘리어트 얘기를 풀고 싶어서, 이번엔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얼른 트레바리, 북뮤지컬의 12월 후기를 가져와본다.
뮤지컬 <빌리엘리어트> - 2021.08.30~2022.02.02, 신도림 대성 디큐브 아트센터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1004532
책 <빌리 엘리어트>
http://www.yes24.com/Product/Goods/7246157
작은 기대가 무색해지게, 책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훌륭했다. 그래서 프랑켄슈타인을 보고 오는 지하철에서 급하게 쓰고 만 것이 아쉬워져, 독서토론으로 빌리 톺아보기를 제대로 한 만큼, 다시 한번 읽고, 또 볼 요량이다. 마침 월요일이 또 티켓팅이던데, 그전에 한번 더 보고 싶어서, 예매 창의 남은 자리를 다시 한번 만지작 거리게 된다. 아참, 또 하나의 레퍼런스로 볼 만한 영화 <빌리엘리어트>는 왓챠에, 혹은 웨이브에서 개별 구매할 수 있고, <빌리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는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북 토크를 시작하기 전, 나만의 감상
더럼 마을의 주연은 빌리 혼자만은 아니었다 - 독후감 for 20211218 북뮤지컬
오늘도 마감을 코앞에 두고 독후감을 쓴다. 관극이 있어서 아마도 늦게 끝날 테임을 알면서도 왜 미뤘을까 라며, 많은 이야기를 담은 빌리엘리어트 라는 작품을 휘리릭 쓴 감상으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 라고 변명해본다. 그 덕에 더 휘리릭 써야 하는 결말을 맞고 말았지만.
책날개 부분에 ‘다중 1인칭’으로 쓴 소설이 특색이라고, 무려 첫 문장으로 다뤄뒀기에, 학교에서 배워본 적이 없는(1인칭 주인공이나 관찰자만 배웠지 말이다) 이 시점이 무엇인가 했었다. 그리고 책을 읽고 극을 본 지금, 저마다의 장점이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더럼 마을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서술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아이이든 어른이 든 간에 그 순간 피켓라인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든, 홀린 듯 발레에 빠져들든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그 순간의 사정은 자신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알 수 없기에 말이다.
노동을 또 탄광을 다룬 이야기는 빌리 말고 다른 곳에도 있어왔다. 올해 봤던 연극 스웨트가 그랬고, 할란 카운티의 초연에서는 재연의 빌리에도 삼연의 무대에도 자리했던 고철순 배우가 똑같이 관부 분장을 하고 등장해 파업에 참여했기에 빌리ㅠㅠ 하며 극을 그리워하기도 했더랬다. 그리고 그 모든 곳에도 광부들은 파업을 하는 이미지로 그려졌다. 한계가 있는 재화인 석탄은 채굴이 끝나면 폐광이라는 삶의 끝을 맞을 수밖에 없고, 생산능력이 사라진 광산은 사람들을 더는 보살필 수 없기에 말이다. 그렇게 삶의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난 그들이지만 마음만은 메마르지 않았던 것 같다. 빌리를 위하는 모습이나, 광산노조가 모자람 속에서도 연대하는 모습을 보면 같은 마을, 이웃, 함께 살아감 즉 연대에 대한 공감이 있었던 것 같다. 거의 3-40년이 지난 폐광이라는 단어를 다 많이 들어본 세대인 내가 이 극을 단지 드림 발레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연대나 마을 공동체에서도 이상적 또는 비현실적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약간은 슬프지만 말이다.
이런 더럼 마을은 평범한 그 시대 영국의 보편성일 수 있는데, 이것에서 소위 고급문화라 여겨지는 발레에 흥미를 가지는 탄광촌 꼬마 빌리, 재능 아니 처음부터 꽃피우기보단 그도 꽤나 넘어졌으니, 가능성이 더 적당할 듯한 아이가 마냥 동화 같지많은 않게, 자신도 모르지만 전기가 흐르는 듯한 그 느낌을 말하고 춤출 때, 감동을 받고, 전막의 앵그리 댄스에서 보였던 춤을 추고 싶은 마음과 런던까지 가야 했던 어린 빌리의 여정이 떠오른다. 빌리를 응원하며 몰려오는 감동은 덤이다. 어색한 옷을 입고 쭈뼛거리며, 자신은 광부라 말하는 재키에게 건네는 파업에 대한 응원도.
반대되는 연출 속에 보편적 정서를 넣어 노동자와 경찰의 대치, 빌리의 춤과 피켓팅의 교차를 보인 연출은 그리고 스몰 보이를 통해 극을 열고 닫음까지 무어라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말 이 시대 최고의 뮤지컬이란 그 말 이상의 수식어를 찾기 어려웠다. 책을 통해 빌리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극에서는 살짝 엿볼 수밖에 없었던 재키의 마음과 어쩌다 더럼에 와서 발레를 가르칠까 하고 언뜻 어울리지 않았던 윌킨슨 선생님의 사정, 어휴 저걸 콱했던 토니의 속내까지 다는 아니어도 엿볼 수 있어 좋았던 극과 책이었다. 한번 더 보고 북 토크에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책 보다 먼저 기획됐다는 영화를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드디어 12월 18일 토요일, 빌리 북 토크를 하기 위해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에 모였다. 깊은 관극 이야기 책 이야기는 물론, 미처 내가 보지 못했던 초연의 프로그램북도, 웨스트엔드의 프로그램북, 재연, 삼연까지 한 자리에 모아놓고 돌려보는 북뮤지컬 버전의 뮤지컬 덕후 모임의 재미란, 원래 덕후는 덕후끼리 모여야 재밌다지 않던가를 또 한 번 실감하는 마지막 모임이었다. 그리고 모임날 아침 결국 시작이라는 영화도 보고 갔다. 덕분에 모임에 10분 늦었지만.
Book Talk 1. 영화, 뮤지컬, 그리고 소설
혹시 영화를 보셨다면, 뮤지컬과 소설, 영화를 어떤 순으로 보셨나요? 그리고 모든 콘텐츠를 다 접한 지금 생각할 때, 어떤 순서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은 감상 순서일까요? (뮤지컬과 소설만 본 경우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감상 순서를 알려주세요.)
영화, 소설, 뮤지컬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버전의 <빌리 엘리어트>는 무엇인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빌리 엘리어트>는 영화가 나온 다음, 작가를 바꾸어 소설이 출간됩니다. 소설을 출간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그것은 괜찮은 결정이라 생각하시나요?
<빌리 엘리어트>가 또 다른 장르로 변용될 여지가 있을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또 어떤 장르로 만들어지면 좋을까요?
빌리엘리어트 영화는 2000년에 개봉했다. 리 홀 각본/스티븐 달드리 감독으로, 그리고 멜빈 버지스에 의해 2001년에 '다중 일인칭 시점'으로 책이 출판됐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 바로 뮤지컬 빌리엘리어트로 이 친구는 2005년에 태어났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책 만이 영국의 청소년 문학가인 멜빈 버지스라는 다른 창작자에 의해(물론 원작 시나리오 작가인 리홀의 의뢰를 받고 였다지만) 만들어졌다는 것이고, 이는 책을 더 매력적이게 만들어 준 결정적 포인트 같았다. 대개 뮤지컬을 먼저 봤거나, 혹은 시점의 차이 때문에 영화를 먼저 봤다는 멤버들, 책은 이번 모임 때문에 읽었다고들 했다. 나 역시도 뮤지컬-책-영화의 순이었는데, 영화는 약간 별개의 노선으로 본다면, 뮤지컬과 책에 있어서는 뮤지컬-그리고 책 순으로 보았으면 하는 마음들은 하나같이 같았다. 또는 영화를 가지고서 영국의 그 시절 분위기를 느껴줬으면 하는 바람을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가장 좋아하는 버전을 뮤덕들에게 묻는다면, 이건 뭐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 같았지만, 몇몇 영화가 좀 더 좋았어요 하는 답을 제외하고는 역시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뮤지컬. 뮤지컬이 가지는 시간과 공간을 같은 선에 놓고 재현하는 것 때문에, 또 엘튼 존의 음악 때문에, 아이다와 라이온 킹이 사랑받는 만큼, 그의 현대적이고도 클래식하고, 또 모던하고 여러 장르가 선율이 아름답게 섞인 그 음악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연출의 정수로 꼽히는 "Solidarity"를 보면, 뮤지컬이 최애일 수밖에 없다는 우리 나름의 이유까지. 영화도 파업 광부와 대치하는 경찰을 교차 편집했었는데, 이를 뮤지컬 무대라는 공간 위에 구현하기 위해, "모두 다 같이"에 맞춰 모자를 바꿔 쓰는 장면, 그리고 그 앞으로 지나가는 발레 걸스들의 모습까지, 이것이 바로 무대 예술이 다를 보여주는 이 극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2007년에 한국에서 처음 나오고, 개정판이 2012년에 발행된 이 책, 2020년에 발행된 것이 2판 4쇄인데, 소프트한 책마저도 요즘 몇십쇄, 몇백쇄를 너끈히 넘기는 걸 보며, 이 좋은 책을 왜 몰랐을까. 사람들도 책을 읽기 전의 우리처럼, 그냥 영화를 글로 푼 IP 다양화 전략, 수입 극대화 전략일 거라고 편견을 가졌던 게 아닌지 너무나 아쉬워진다. 자신이 아니라 청소년 문학을 많이 다뤘던 다른 작가에게 의뢰함으로써 이 책을 다른 결로(특히, 토니나 재키의 시선을 가지고 어쩌면 단순할 수 있는 "탄광촌 아이가 재능을 발견하고 주변의 도움을 통해 훌륭하게 성장했다"의 이면을 보여주는 결과) 형성해 줄 수 있었다. 이것은 원작자였던 리 홀이 그대로 써냈더라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아마 아니었을 것이라고,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라고 말이다. 인물에 대한 애정 가득한 시선이, 탁월한 심리묘사로 이어져서, 뮤지컬 무대에서 하이라이트를 받는 빌리를 지켜보는 형 토니의 마음, 재능 가득한 아들을 향한 보이지 않는 아빠 재키의 사랑이 가득 느껴지는 책이었으니 말이다.
훌륭한 원작은 아무리 변용을 해도 결국 먹힌다는 것을 영화, 뮤지컬, 소설 모두로 확인을 했기에, 웹툰이 드라마가 되고, 무대로 올렸던 '나빌레라(지민. HUN)'를 떠올리며, 드라마를 네이처 오브 포켓팅을 떠올리며 퓨전 발레를, 같은 사건을 3명의 인물의 시점으로 다룬 '라스트 듀얼'을 빌리의 후일담 혹은 프리퀄을 보여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떠올리며, 어떤 빌리가 다시 찾아오더라도 꼭 빌리를 만나러 갈 것이라는 빌리 예찬론이 펼쳐진 건 당연한 결론이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연출은 무엇인가요?
원작 영화보다 뒤에 제작되었음에도, 뮤지컬의 결말엔 빌리의 미래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창작진이 이 장면을 삭제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떤 점이 보강된다면 이 작품이 더 오래 생명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여러분에게 있었던 크고 작은 ‘전기’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혹시 그 소중한 경험을 공유해 주시겠습니까?
가장 인상 깊었던 신을 뽑으라니, 어떻게 하나만 뽑죠를 외치며, 자연스레 초연을 본 멤버들은 초연과 재연에서, 또 재연과 삼연에서 다른 장면이 보이더라 라는 얘기를 했는데, 이것은 반복 관람을 하면서 다양한 씬이 보이기 시작한 때문도 있고, 북뮤지컬을 통해 작품들을 꼼꼼히 보는 습관을 가지면서, 시야가 넓어진 덕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의 다른 면을 보게 된 것 때문도 있겠지 라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처음에 눈에 들어오는 건, 'Dream Ballet', 'Angry Dance' 'Electricity'로 훌륭히 성장한 빌리의 모습, 빌리가 말하는 춤에 대한 진정성이 보이는 대목들이었다면, 앞에서도 잠시 이야기했던 'Solidarity', 'Merry Christmas Maggie Thatcher', 'Finale'가 새로이 인상적인 장면으로 떠올랐는데, 빌리가 아닌 주변, 파업 중인 광산 노동자, 당시 영국의 사회상을 보이는 장면이었다. 피날레의 아빠의 헤드라이트가, 광부들의 헤드라이트가 줄지어 켜지는 장면은 과거가 새로운 미래를 떠나보내는 장면, 한 시대의 저물어감 같은 느낌이 들어서 먹먹했다는 이야기에 아 그래 그래서 눈물이 핑 하고 고이는 거구나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말이다. 극이 만들어질 때만 해도 생존해 있던 마거릿 대처 전 수상을 풍자의 대상으로 전면에 등장시키는 강렬함에서 멋지다 라고 생각했고 말이다. 또 하나 모임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내가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다른 부분은 극을 열고 닫는 스몰 보이의 등장/퇴장과 함께 흑백 뉴스가 나옴으로써 여러분이 보고 있는 건 극이 아니라, 어쩌면 영국에서 일어났던 사실입니다 라는 부분으로 영화의 뉴스 삽입이 가져왔던 배경에 대한 환기 효과를 극 안으로 영리하게 차용한 부분이었다.
빌리의 미래를 영화는 '로열 발레단'의 솔리스트로서, 백조의 호수 무대에 서는(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빌리의 모습, 그런 빌리에게 가족이 왔다고 전하고, 무대에서 날아오르는 한 마리 백조로 그렸다면, 극은 성인 빌리 역이 배우가 있음에도, 그는 드림 발레 씬에서만 등장할 뿐, 학교를 향해 떠나는 빌리에게서 끝이 난다. 여운을 주는 연출이라고 느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선생님인 멤버들은 꼭 발레학교에 가서 발레리노로 성공하는 것 많이 성공이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 빌리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발레가 아닌 설령 다른 길을 선택했대도 괜찮다는 것 같아서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다는 것에서, 아 빌리라면 당연히 발레리노가 그것도 아주 훌륭한 솔리스트가 됐을 거야 라는 기대조차도 어쩌면 어른의 압박, 강요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됐다. 무대 연출의 한계 때문이었을지, 여운을 주기 위한, 마지막 씬에서는 열연을 펼친 주역인 빌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주기 위해서 등 어떠한 이유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씬이 아주 훌륭했음은 물론이다. 의미야 관객인 우리가 부여하기 나름이라지만, 어떤 모습이든 빌리 너를 사랑한다는 전형적 빌리 맘의 시점에서.
빌리에게 아쉬운 점은을 물으니 없어요 없어를 말했던 나와는 다르게, 빌리가 어색하게 '욕'을 하는 모습이 조금은 불편했다는 선생님의 의견은, 아 아이들이 많이 관람하는데 그래서 주의를 방송하는데 라는 나의 안일한 포인트와 달리, 아이들이 사용하는 '븅신' 정도의 단어보다는 뮤지컬은 반복해서 그 시대에 올리는 극인 만큼 차라리 그 상황에도 아이들이 많이 쓰는 속어 정도의 단어로 바꿔 주는 게 어떨지, 욕설이라기 보단, 과거에는 어른들도 꽤나 썼었지만, 지금은 장애에 대한 차별로 느껴져서 문학이라 할 지라도 다른 표현으로, 원작을 보면 아빠 미워 정도를 굳이 개새끼로 표현하는 장면 등이 강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라기엔, 조금 과했다는 지적은 이 작품이 조금 더 롱런하기 위해서,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주기를 바라는 이 또한 찐 팬의 마음이겠지.
좋은 작품을 볼 때 찾아오는 감동의 순간, 어쩌면 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두근거렸던 순간, 정말 전기가 흐를듯한 순간은 음, 돌아보면 뭔가에 맞은 것 같은 충격적인 순간은 병원 근무하던 시절, 사람들(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나면서 였던 거 같고, 정말 기뻤던 건, 그래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던 건 정량분석 성적이 나빠서 떨어질까 걱정했던 국시 성적이 나쁘지 않아서, 합격했던 2009년 겨울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고 말이다. 다른 멤버들은 내 아름다웠던, 혹은 열정적이었던 '청춘'을 떠올리며, 어떤 것에 몰입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 역시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순수했던 혹은 뜨거웠던 어느 날을 떠올리는 거겠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은 많지만, 예술성까지 확보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제까지 본 작품 가운데 이 두 가지 부분 모두에서 성취를 이룬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혹시 이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셨다면, 처음 보았을 때와 가장 최근에 보았을 때 그 느낌은 어떻게 다르고 같았나요? 느낌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왜 달라졌나요?
이 작품은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의 당신에게 <빌리 엘리어트>는 어떤 의미인가요?
<빌리 엘리어트>를 추천한다면, 추천의 변을 어떻게 이야기하시겠습니까?
빌리엘리어트가 수작인 이유를 떠올리면, 파업이라는 어쩌면 누군가는 불편하게 느낄 이야기를 아주 유쾌하게 풀었기 때문일 것 같다. 올해 국립극단에서 올렸던 <스웨트>, 광부를 다룬 <할란 카운티>들이 물론 할란 카운티는 인종차별이라는 더 큰 문제를 다루긴 했지만, 피켓라인을 넘어가는, 또 사양산업을 다루는 장면에서 말이다. 최근 극단 연극 작품들을 보며, 사회상을 다룬 메시지, 그리고 완성도를 갖출 때 이를 작품성이라 표현한다면, 예술성을 넘어 대중성을 갖추는 작품은 단연코 빌리, 올해 우리가 북뮤지컬에서 다뤘던 차별을 다뤘던 위키드, 전태일을 스테레오 타입에서 따뜻한 사람으로 뽑아낸 음악극 태일이 이런 작품이지 않았을까. 영화로 넘어가면 <1987>, <택시 운전사> 같은 작품들에 이르기 까지.(두 마리 토끼를 쫓다 둘 다 놓친 실망스러운 작품들 얘기도 많았지만, 이는 북 토크를 했던 우리들끼리의 비밀 아닌 비밀로 간직해야지)
작품을 보면서 빌리에 주목했던 때와 달리, 광산 노동자가 많이 보여서 달라졌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처럼, 이건 아는 만큼 생각이 깊어져서였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그리고 이제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재키의 속내가 신경 쓰여서, 사실은 그도 어렸고, 빌리를 위해 모금을 받아내려 공연을 하고 노력했던, 투박한 게 아니라 사실은 동생을 너무 사랑하는 토니, 윌킨슨 선생님의 전사도 알게 되어서, 공연을 다시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소설을 알게 된 지금, 이제는 아빠를 선생님을 쫓아 보게 되지는 않을지, 내가 썼던 독후감의 제목처럼 더럼 마을에서는 빌리 하나가 아니라 사실 모두가 주인공인, 연대하는 이들 사회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게 되지 않을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할머니에 또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고.
뮤덕에게는 숙명처럼, 요즘 어떤 작품이 재밌어? 뮤지컬 추천 좀 해줘 라는 말이 들리는데, 그래서 아마도 나라면, 볼수록 달라지는 작품, 언제 누구랑 보아도 만족하는 작품, 또 보고 또 봐도 좋은 작품이라는 말로 영업을 할 것 같은데, 아이들이 나오는데 걔네가 엄청 잘한다는 말, 영화 봤어? 그러면 봐.라고 말할 거라는 말, 무대예술의 정수를 보고 싶다면 이곳으로 가라는 말 까지 이. 최. 뮤. 이 시대 최고의 뮤지컬이라는 그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뮤지컬, 역시 빌리 엘리어트다.
뮤지컬이 어린 빌리에게 모든 시선이 집중된 동안, 책은 빌리 아빠라는 이름 대신 재키라는 이름으로, 한 꼭지를 차지하게 구성이 되었는데, 누구누구의 아빠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아들 빌리를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마음이 극 속에서 어떤 시선으로 따라 가는지, 또 다른 빌리들은 나에게 어떤 전기가 오는 순간을 선사해줄지, 내가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전기가 올 순간의 한 자락에 함께 했다는 것을 대단한 자랑이자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오늘에 보다 더 충실하기 위해, 또 한 번, 보러 가야겠다. 가기 전 날엔 다시 책을 읽으며, 재키의 마음을 한번 더 곱씹은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