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왜 CCO와 같은 레지멘 별 설명 자료가 없을까?
매년 12월이면, 중앙 암 등록본부의 국가 암 통계가 발표된다.
집계와 통계처리에 시일이 필요로 하기에 2021년 12월에 발표되는 데이터는 2019년에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관련 뉴스가 보도됐고, 10년 만에 발생률이 1위를 넘겨줬다며, 통계가 바뀐 사실에 흥분하는 논조의 보도들이 많았다. 올해 발표된 암 등록 통계에서 발생률이 높은 암종은 폐암이었다.
(2021년 발표된, 2019년 암 발생 수는 254718명, 유병자 수는 2,147,503명이었다. 전체 인구를 5000만이라 치면, 인구의 약 4.3% 정도는 암환자인 셈이다) 갑상선 암은 진단율이나, 치료를 요하는 것, 암의 경과 등과 관련해, 타 암종과는 달리 분류되는 특성이 있는 바, 갑상선 암(12.0%) 제외 시 폐암(전체의 11.8%)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고, 보도가 된 것이다.
특성이나 현황을 중계하는 것 이상으로, 예방 및 치료법을 전달하는 쪽이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코로나 사태에서도 느꼈지만, 일일 확진자 수 중계에 대중이 피로감을 느낄 만큼, 경마식 저널리즘이 재난이나, 보건 분야에도 침투한 거 같다. 아쉬움은 각설하고, 이름 앞에 종양전문약사로 살아왔다고 자부할 만큼의 과거의 환자 면담 과정에서, 캐나다의 CCO나 영국 NHS의 단순 약제가 아니라, 레지멘(항암제는 여러 가지 약제가 복합적으로 투여된다. 작용기전이나 계열이 겹치지 않는 서로 다른 약제를 병용해서 투여하기도 하고 약물의 종류에 따라 전처치 및 보조요법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런 병용 요법을 통틀어 레지멘이라고 부른다) 별로 환자용 설명서가 존재하는 것이 가장 부러웄고, 표준화 작업인 환자 교육 CP에 참여하면서도,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국가 암정보센터 역시(https://www.cancer.go.kr/index.do) 개괄적인 내용을 잘 담고 있고, 미세하게나마, 신약이 출시되거나, 통계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변경이 꼬박꼬박 되어서, 매우 관리가 잘 되고 있는 편 이기도 하다. 최근 구글의 저장된 페이지로는 열리지만, CCO의 Drug Fomulary Tab의 접근이 어려워져 쓰는 글 이기도 하다.
종양학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분야였기 때문인지라,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몇 줄의 이 글도, 2021년 2월 기준일 뿐, 어느 순간에는, 오래된(outdated) 정보가 될지도 모른다. 우선은 나 역시도 전체에서 발생률이 갑상선 암을 제외하고 제일 높고, 남성에서는 발생률이 가장 높으며, 5년 생존율이, 25% 남짓으로 높지 않은 폐암의 치료약제부터 접근해 보려 한다.
폐암으로 진단되면, 임상적으로(영상 검사상으로), 수술 시의 해부학적 소견에 따른 병기를 판정받게 되고, 그에 따라 치료 방침이 정해지게 된다. 때로는 수술, 때로는 방사선, 또 어떤 때는 약물을 쓰기도 한다. 치료방침부터 이야기하자면 한없이 늘어지게 될 테고, 진단을 하는 의사가 아닌 나는, 병기의 판정에 대해선 글을 쓸 만큼 알지도 못한다. 그러니, 잘 아는 약 이야기부터 해 봐야겠지.
보조요법 및 신보조요법은 보조는 말 그대로 근치적 요법을 보조하는 역할로, 대개 고형종 양의 경우, 국소적 병변을 수술로 제거한 후, 미세 잔존암을 제거하거나, 재발을 방지할 목적으로 일정기간 동안 투여하는 요법이다. 신(neo) 보조요법은, 수술 및 방사선 치료와 같은 근치적 치료에 앞서, 수술 부위 및 방사선 조사 부위를 줄일 목적으로 시행하는 요법인데, 위 두 가지는 대개 유사한 레지멘을 사용한다.
폐암은 선암, 편평세포암, 대세포암 등 여러 가지 아형이 있지만, 대개 약물의 반응이 편평 세포암과 그렇지 않은 나머지 암종간 차이가 있어서, 편평 세포암/비(non) 편평 세포암으로 분류하고는 한다.
이런 보조요법에 가장 널리 쓰이는 건 현재로서는 알림타/씨스푸란 병용요법으로 백금계(Platinum Analogue) 항암제를 기반으로 하는 폐암의 항암요법의 기반과 그 궤를 같이한다. 폐암 중 가장 많은 빈도를 나타내는 선암의 경우, 알림타/씨스푸란 병용 요법으로 매 3주마다 1회씩 정맥주사로 총 4주기를 투여하며, 편평 세포암에서는 알림타(페메 트렉 시드)가 효과를 보이지 못했기에, 알림타 대신 젬자(젬시타빈)나 탁소텔(도세탁셀)로 교체하여 투여한다. 씨스푸란을 투여할 때 중요한 건, 신독성이 있는 약물이기에 투여 전 후 충분한 양의 수분 공급(Hydration)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그 외에 내가 한창 임상약사로 일하던 시절에 선호되던 Day 1&8에 각 방문해, 씨스푸란과 나벨빈(비노렐빈)을 투여받는 방법도 있고, 이의 변용인 4주 주기 요법도 있다. 소세포 폐암에도 쓰이는 EPS(에토포사이드)를 대신 투여하는 레지멘도 있다. 기본적으로 보조 및 신보조 요법에서 근간은 씨스플라틴이지만, 씨스플라틴에 금기인 경우, 이를 대신해 카프란(카보플라틴)을 투여하기도 하며, 카프란의 경우 곡선하면적을 기준으로 신기능에 따른 노출양을 산정해, 용량을 역산, 투여 용량을 정한다. 기준이 되는 AUC는 5 또는 6이다.
재발 등의 사유로, 혹은 폐의 다른 부위에 대한 절제 등으로 재차 보조요법을 받는 경우나, 씨스플라틴과 카보플라틴 모두에 금기 거나 해, 백금 기반 치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 대안으로, 타그리소(오시머티닙)나, 티센트릭(아테졸리주맙)이 사용되기도 한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동시에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사용하는 약제도 백금 기반으로 거의 유사하다.
그런가 하면 진행성 또는 전이성이라고 부르는 흔히 4기라고 부르는 암의 경우에는 전신 치료, 즉 치료의 기반이 수술이나 방사선에서 항암치료로 옮겨오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쓸 수 있는 약물의 종류도 이전의 보조요법 때와 달리 훅 눌어 난다. NCCN(미국 국립 종합 암 네트워크) 가이드라인의 2페이지를 약 이름으로 가득 채울 만큼 말이다.
선호하는 건 역시 KEYNOTE 연구에 빛나는 키트루다! 키트루다와 백금계 약물(시스플라틴/카보블라틴) 그리고 알림타의 병용 요법이다. 즉 보조요법에서 쓰던 레지멘에,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를 add on 하는 방식인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면역항암제인 옵디보(니볼루맙)의 경우는 또 다른 면역 관문 억제제인 여보이(이필리무맙)와의 병용을 원칙으로 하고, 티센트릭(아테졸리주맙)은 카보플라틴/탁솔 병용으로, 같은 면역 항암제지만, 함께 쓰는 약물이 달라지는 점이다.
만약 PD-1 또는 PD-L1에 금기이거나 해, 면역항암제를 쓸 수 없는 경우라면, 면역 항암제 도입 이전에 쓰던 항암요법으로, 카보플라틴과 탁솔 병용, 카보플라틴 또는 시스플라틴과 알림타 병용에 아바스틴 15mg/kg를 add on 하는 방법, 혹은 단클론항체라고 불리는 표적항암제인 아바스틴 없이, 백금계 약물인 카보플라틴 혹은 시스플라틴에, 탁소텔(도세탁셀), 이피에스(에토포시드), 젬자(젬시타빈), 탁솔(파클리탁셀), 알림타(페메트렉세드)를 병용하거나 젬자(젬시타빈)에 탁소텔(도세탁셀) 혹은 나벨빈(비노렐빈)을 병용하는 방법이 있다.
백금계 항암제 외, 탁소텔, 탁솔은 탁산계 항암제이며, 탁산계 항암제와 EPS는 topoisomerase 억제제로 분류될 수 있다.
만약 PS(Performance Score, 수행점수로 해석되며, ECOG Score 가 가장 널리 쓰인다)가 2점 이상으로 전신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라면, 시스플라틴보다 카보플라틴 기반의 2제요법이 선호되며, 만약 적절치 않은 경우라면, 앞서 언급한 젬자/탁소텔 등의 단독요법을 고를 수도 있다.
편평 세포암의 경우는 면역항암제 중 티센트릭(아테졸리주맙)이 권고되지 않으며, 앞서 언급한 대로, 알림타의 효과를 보이지 않는 군이라, 알림타가 치료 옵션에서 빠지는 것이 대표적 변화이며, 아바스틴 또한 편평 세포암종에서는 효과를 입증하지 못해, 편평 세포암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여기까지 보고 나면, 어? 내가 아는 약이 없는데 할 수도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흔히 표적항암제라 불리는 약제들 중 경구 표적 항암제들이 대부분 빠져있어서 그러하다. 경구 및 주사를 막론하고, 표적항암제가 여러 종류가 존재하는데, 특히 폐암의 경우는 이러한 표적이 되는 변이가 많이 밝혀져 있는 편이라, 해당 변이를 타깃으로 하는 많은 약물들이 밝혀지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비소세포 폐암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EGFR이 양성인 경우, EGFR 억제제라고 하는 지오트립(아파티닙), 타세바(얼로티닙), 비짐프로(다코미티닙), 이레사(게피티닙, 이레사의 경우, 동양인에서만 유효하다), 타그리소(오시머티닙)을 투여할 수 있고, 이 타그리소의 경우 이전 다른 약제를 쓰고 진행된 경우, 또는 T790M 내성 변이가 생긴 경우에도 효과가 있어 2차 약제로도 쓸 수 있다.
ALK 변이가 관찰되는 경우는 잴코리(크리조티닙), 자이카디아(세리티닙), 알레센자(알렉티닙), 알룬브릭(브리가티닙), 로브레나(로라티닙)이 투여될 수 있다.
ROS1 재배열 양성인 경우는 1차 선택 약제로 ALK 억제제로 허가되었으나, ROS1 재배열이 있는 환자들에게 효과를 보인 잴코리, 자이카디아와 NTRK 억제제인 로즐리트렉(엔트렉티닙)을 투여할 수 있다. BRAF-V600E 변이가 있는 경우는 라핀나/매큐셀(다브라페닙/트라메티닙), 젤보라프(베무라페닙)이 효과가 있을 수 있고, NTRK 변이 양성인 경우는, 로즐리트렉(엔트렉티닙), 비트락비(라로트렉티닙)을 1차 선택약으로 고를 수 있다. 더불어 한국에서도 지난 11월 허가된 MET Exon 14 Skipping 이 있는 환자에게 타브렉타(캅마티닙)과 텝메코(테포티닙)이 새로운 옵션으로 떠올랐으며, RET 재배열이 있는 경우,레테브모(셀퍼카티닙), 가브렐토(프랄세티닙), 카보메틱스(카보잔티닙)이 쓰일 수 있다.
이렇게나 많은 표적(!)이 존재하고, 또 표적에 따라 맞는 약물을 선택해야 하다보니, 다소 치료 스킴이 복잡해 보이지만, 적절한 표적을 찾아 적합한 약물을 고르면 되는, 현대 의학의 분자표적 분야가 가장 활발한 분야가 또 폐암 치료약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일까, 자고 나면 NCCN guideline이 업데이트, 또 업데이트가 되는 통에, 이 만큼 변화가 빠르고, 어제 공부했는데, 다시 책을 펴면 새 약이 또 추가가 돼 있는 상황에 너무 자주 부딪히곤 한다.
그리고 역시 게임 체인저, PDL1이 1% 이상일 때 쓸 수 있는,
키트루다, 티센트릭, 옵디보 까지, 어느새 1차 치료 약제로 자리 잡은 면역 항암제들은 암환자에서 저하된 면역기능을 증강시킴으로써 환자의 면역세포로 하여금 암세포에 대항하게 되는 기전의 약제들이다. 면역항암제는 암세포 주위의 미세환경에 존재하는 면역세포들에 작용하여 이로 인해 기능이 활성화된 세포독성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들을 죽이게끔 하는데, PD-(L) 1 면역세포 표면 단백질의 저해제인 키트루다(pembrolizumab), 옵디보(nivolumab), 티센트릭(atezolizumab)등이 이에 해당한다. 12개월을 넘어 장기 생존의 데이터가 속속 나오는 만큼, 예전처럼 폐암은 무조건 생존기간이 짧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지, 면역항암제의 치료 영역 확장이 어디까지 가능해질 지 궁금해지는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치료약제를 결정하는 것이 오직 가이드라인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보험 급여 범위라던가, 만약 비급여 약제라면, 부담 가능한 약제 가격도 보아야 하겠고, 같은 1차 선택 약제에서 무슨 약제를 고를지에 있어서는 부작용이나 복용 편의성도 고려 대상이긴 하다.
하루 한 번 먹는 경구약제와 하루 두 번 먹는 약제(대개 항암 요법 환자들은 여타의 만성질환자에 비해 복약 순응도가 매우 좋은 편이긴 하다. 한알에 목숨이 걸렸다는 느낌 때문일까), 또는 부작용으로 EGFR 억제제의 경우 여드름성 발진이 특징적인데, 이러한 발진은 계열 효과로 어떤 종류의 약제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부분, ALK 억제제 같은 경우, 소화기계 부작용이 많은 약제를 피해 2세대 혹은 3세대 저해제로 약제를 고른다던가, 이후의 치료 방침(안타깝게도 전이 및 진행성 암은 완치보다는 질병을 조절하는 느낌이 더 강하다)이나 그다음 차수에 고르게 될 약제, 기존 복용하고 있는 약물과의 상호작용 등 약의 특성도 고려해야 하니 말이다.
사실 글을 쓸 때 처음의 목표는 항암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친숙하게 풀어보자였는데, 가이드라인만 주루 루룩 읊다가 끝난 듯 하지만, 언젠간 이 카테고리 안에서, CCO나 NHS가 그랬던 것처럼 좀 쉬운 항암제 이야기를 풀어보리라. (폐암 편에 등장한 항암제만 10개가 넘어가는데, 과연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