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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선 Jun 13. 2022

[김학선 박사의 핫플]영주 소수서원

조선시대에는 국립 교육기관으로 한양에 성균관이 있었다면 사립교육기관으로 지방 지식인들에 의해 건립된 서원들이 있었다.


영주(당시 순흥) 위치한 백운동서원조선 최초의 서원으로서 1543 당시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성리학을 들여온 회헌 안향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 강당을 건립하여 유학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후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건의하여 1550(명종 5) 왕에게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아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액서원이란 임금이 서원의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리고 나라로부터 , 토지, 노비를 하사 받고  서원에 딸린 토지에 대한 면세, 소속 노비들의 면역의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학문을 이어서 닦는다'라는 의미의 소수서원은 2019년 7월 19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매표소를 통하여 입장해서 바로 울창한 소나무 숲을 만났는데 소수서원의 소나무들은 공부하는 자세로 모두 강학당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소수서원의 소나무를 학자수라고도 한다.

필자가 숲 사이로 지나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선한 바람으로 마치 선비들의 고고한 기품을 대신 전해주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가면 서원의 옛터인 '숙수사'라는 절의 당간지주가 서 있다. 당시 숙수사는 단종 복위거사를 시도하다가 실패하여 사찰이 모두 불타버리고 만다. 또한 이 고을 사람들도 '정축지변'이라는 참화로 이곳 지역 30리 반경의 백성들에게도 혐의를 씌워 무참하게 처형한 사건이 있었다. 이에 주세붕 선생은 수많은 백성들이 학살된 죽계천은 온통 피로 물들었지만 그 억울한 넋들을 달래기 위해 죽계천 바위에 '경천애인(하늘을 공경하고 사람들 사랑하라)'의 첫 자인 '경'자를 붉게 새겨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선비의 고고한 기품과 억울한 백성들의 넋이 함께 공존하는 소수서원에 도착했다.

숙수사의 당간지주와 죽계천의 경자바위

소수서원 입구 옆에는 서원의 교류와 유생들의 유식을 위한 정자인 '경렴정'이 있다. '경렴정'이란 송대 성리학의 기틀을 세운 주둔이의 호 염계에서 따온 것이다. '경렴'은 연계 주돈이의 학문을 환히 밝힌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돈이는 '염계'라는 개울가 옆에 살았다. 그래서 소수서원의 담장 밖 개울인 '죽계'를 '염계'로 삼아 그 옆에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경렴정'이라 불렀던 것이다(출처 : 역사문화유산 인용).


옛 선비들은 학문을 배우면서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도 않았으며 스승님의 일거수일투족까지 모두 배우려는 자세는 요즘 현실에서 보면 매우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진지한 학문적 자세가 더 높고 더 넓은 학문적 성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경렴정 건너편 죽계천에는 '경'자가 붉게 새겨진 '경자 바위'와 '취한대'가 바로 보였다.

필자가 처음 가본 서원은 학습하는 공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례를 지내는 '제향 공간'과 공부하는 '강학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요즘 교회가 있는 대학교(예: 이화여대 등), 절이 있는 대학교(예: 동국대 등)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원 입구를 들어가면 바로 강학당이 보이는 데 "백운동"현판이 정면으로 보인다.


강학당에 안을 보면 명종의 친필(명묘어필)인 '소수서원'이라는 사액 현판 글씨가 보인다.

강학당

마침 강학당에는 어느 부부에게 대략 '부부의 도'에 대해서 선생님이 열띤 강의를 하고 계셨다. 서원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프로그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아내와 함께 듣고 싶었지만 중간에 들어가면 강의 분위기를 흐릴 것 같아서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장서각 : 서원 강학과 관련한 교재와 목판 등을 보관하던 곳
영정각 : 소장 영정을 모시기 위해 1975년에 신축한 목조건물

소수서원은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으로 나뉘는데 영정각은 고려시대 유학자인 회헌 안향의 위패를 모신 시묘(문성공묘)를 세우고 이듬해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서원안에는 제향공간인 문성공묘, 전사청(제기보관, 제물 준비하는 곳)을 비롯하여 영정각이 있다.

영정각 내부 : 중앙좌측 주자, 우측에는 안향의 영정

영정각은 소수서원에서 보관하는 영정을 모시기 위해 1975년에 지은 건물로 조선시대에는 도동각 또는 영정실에 모셨는데 안향의 영정을 모셨다.

현재 건물 내부의 중앙 좌측에는 주자학의 시조인 주자의 영정, 우측에는 우리나라 주자학의 선구자인 안향의 영정(국보 제111호), 왼쪽에는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의 영정(보물 제717호), 한음 이덕형의 영정, 오른쪽에는 청백리의 표상인 이원익의 영정, 조선 후기 사상계를 이끌었던 허목의 영정이 있다. 원본은 소수박물관에 있다(소수서원 안내문 인용).

일영대 : 해시계로 숙수사의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지락재와 학구재

강학공간에 있는 지락재와 학구재는 원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곳이다. 요즘으로 보면 기숙사라고 할 수 있다.


'지락'은 송나라 구양수의 글 중 지락막여독서에서 따온 이름으로 '지극한 즐거움은 독서만 것이 없다'란 뜻이다. 높은 곳을 우러러보는 공간이라고 하여 '앙고재'라고도 한다.

학구재의 '학구'는 '성현의 길을 따라 학문을 구한다'라는 뜻이나 어린 학생이 생활하는 공간이어서 '동몽재'라고도 한다(소수서원 안내문 인용).

지락재
학구재
일신재와 직방재

일신재와 직방재는 원생, 교수와 서원의 임원들이 생활하던 숙소로 각각 독립된 건물이 아니라 하나로 이루어진 독특한 구조인데 편액으로 양자를 구분한다.

일신재의 '일신'은 「대학」의 '(인격 도야가)나날이 새로워져라. (일일신우일신)'라는 문장에서 따서 지은 이름이다. 직방재의 '직방'은 「주역」의 '깨어 있음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바른 도리로서 행동을 가지런하게 한다.(경이직내 의이방외)'는 문장에서 따서 지은 이름이다(소수서원 안내문 인용).

필자가 당시 원생이라면 매일 아침 학구재, 지락재, 일신재, 직방재 현판의 의미만 되새겨도 작은 깨우침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소수서원 담장을 나가면 서원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소수서원 사료관이 있다.

소수서원 사료관 전시자료
소수서원 사료관 전시물

소수서원에서 죽계천을 건너면 유생들이 휴식을 취하는 '취한대'가 있다. 취한대에서 소수서원으로 가려면 네모반듯한 징검다리를 건너야 갈 수 있다.  


소수서원의 멋진 취한대를 보면  질식할 것 같은 뜨거운 학문 연구공간을 다소나마 냉각시켜줄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옛 선조들의 절묘한 지혜가 느껴졌다.


#소수서원 #영주 #주세붕 #경자바위 #백운동 #안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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