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려고 애쓰지 말고 흘려보내라. 빈 공간을 만들어라.
Welcome back,
Silverback.
글을 쓴다. 1년 만이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 생각들을 글로 풀어내야 빈 공간이 생긴다. 생각은 활자를 통해 당신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돌고 돌아 나에게 더 좋은 생각이 들어오리라 믿는다. 이번 글을 쓰는 동안에도 개인적인 동기에 충실하자고 다짐한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쓰고 싶다.
1년 동안 글을 쓰지 않고 무엇을 했나. 변명이 튀어나온다. 글 쓰는 것이 직업이라 퇴근 후 취미로 하기 싫었나, 브랜딩 하느라 바빠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나, 글을 쓰기 위한 영감이 떠오르지 않았나. 다 핑계다. 구차하다. 사실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과거보다 발전한 글을 쓰고 싶은 부담감에 손가락이 무거웠다. 좋은 글을 원하는 마음이 역효과를 낸다. 모순적이다.
이 모순은 글쓰기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많이 하면 오해를 산다. 이성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어 허세를 부리면 비웃음거리가 된다. 인사받고 싶어 하는 태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노년의 추태스러운 명예욕을 드러내지 않아야 존경받는다. 자리와 직함에 관계없이 먼저 인사를 건네는 분들은 진심으로 환영받는다. 사랑받는 방법은 역시나 애정을 갈구하지 않는 법뿐이다.
그런데 돈과 성공을 원하는 나는 돈을 좇고 있다. 무언가 잘못됐다.
오늘은 이러한 모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번 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단숨에 읽을 정도로 짧진 않다. 글이 길다면 좌측 하단에 하트(라이킷)를 누르고, 브런치 [글 읽는 서재]에서 다시 꺼내 보자.
0. Intro
1. 글을 쓰지 못한 이유
2. 허영이 성취를 방해한다
3.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4. 방 정리부터
5. 돈은 흐른다
6. GIVE & TAKE
자신의 소원을 잘 바라보라. 끊임없이 바라는 것, 그 내용을 응시하라.
아주 작은 소원 혹은 평범한 소원이라도, 그 안에 허영심이나 허세가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찬찬히 음미해보라.
-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 / 시라토리 하루히코 편역
앞서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글쓰기를 방해한다고 했다. '좋은 글'을 목표로 두면 행동이 이어질 텐데, 왜 방해가 되는가. '좋은'의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잘 썼다'라고 칭찬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었다. 허영심이다.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글의 소재는 개인 경험이다. 외부 사건이나 팩트를 나열하는 기사와 다르다. 나의 성장과 사고를 글로 풀어내려면 무엇보다 정직함이 요구된다. 깊이 있는 생각과 정직함, 이 두 가지를 허영심이 방해한다.
1년간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은 나를 돌아봤다. 허영심으로 정직하기 어려웠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글을 쓰자니, 글쓰기의 가치가 훼손됐다. 돈 받는 것도 아닌데 솔직하지 않다면 이 글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타인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발견했다.
허영심은 좋지 않으니 버려야 한다는 윤리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이 가진 욕구를 애써 부정하지 말자. 평범한 주변 사람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지도 말자, 그들이 성자도 아닌데. 인정하고 무엇을 할지 생각해보자. 중요한 건 이 빌어먹을 허영심 때문에 내가 글을 1년 동안 쓰지 못했않았다는 것이다.
허영심이 성취를 방해한다. 글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그렇다. 사석에서 굳이 불필요한 학벌이나 과거를 설명하는 분이 있다. 당신의 회사와 연봉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이처럼 욕망을 세련되게 표출하지 못하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했던 목표를 이룰 수 없다. 밥이나 사주고 말하면 좋겠다(사실 밥 사주고 잘 들어주면 더 좋은 사람이다).
겸손한 사람이 되고(보이고) 싶어서 자신이 겸손하다고 말하면 안 된다. 자기 자신을 늘 좋은 사람이라고 어필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보일 리 없다. 다듬어지지 않은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면 위험하다. 그런데 인간관계뿐 아니라 돈과 성공에도 비슷한 논리가 보인다.
우리는 영 앤 리치(Young & Rich)를 선망하는 자본주의를 살고 있다. 20대에 공부하고 30~40대에 경험을 쌓고, 50대에 천천히 부자가 되는 과정은 고리타분해 보인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창업자와 같이 젊은 억만장자들, 그리고 코인으로 벼락부자들이 나온다. 집값이 치솟는 가운데 젊은 나이에 빨리 성공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기 어렵다.
하루라도 빨리 성공하고 싶은 나에게 김승호 대표의 말은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는 <돈의 속성>에서 "빨리 부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빨리 부자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며, "빨리 부자가 되려는 마음은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고 있거나 주변에 나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나를 돌아본다. 부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부자로 보이고 싶었던 걸까. 자유와 가치, 주도적인 인생과 여유로운 삶을 위해 부자가 되길 원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빨리 성공'하고 싶었을까. 그 '빨리'의 기준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였던 것일까. '성공'이 단순히 다른 사람보다 잘 사는 것을 의미했었나. 누군가의 삶과 비교하거나 과시하고픈 마음이 없었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부자가 되는 과정을 방해한다. 빨리 부자가 되려는 욕심은 합리적인 판단을 그릇친다. 높은 수익률만 따라다니거나 사기를 당하기 쉽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돈' 그 자체에 시선이 고정된다(Tunnel Vision). 그러나 돈을 사냥감으로 보는 태도에 대해 엠제이 드마코는 돈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것이라고 말한다.
돈 사냥에서 손을 떼고 가치 사냥에 나서라. 돈은 사냥감이 아니다. 서글프게도 대부분은 돈에 집착하면서 왜 돈을 못 버는지 모른다. 두 개의 자석을 함께 두면 그들은 서로 당기거나 밀어낸다. 돈을 열심히 쫓아가다 보면 실제적으로는 돈을 밀어내 버리게 된다. 돈 사냥 속임수에 사로잡히면 당신은 결국 부자가 되지 못하고 부자가 되려는 노력만 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 엠제이 드마코, <부의 추월차선 UNSCRIPTED>
"부자가 되려는 노력만 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좋은 글을 쓰겠다는 목표가 글쓰기를 방해한 것과 같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부자가 되는 것을 막는다. 돈을 맹목적으로 좇으면 잡기 어렵다. 순수한 마음에 명예욕과 과시욕이 섞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불순물을 알아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허영심은 성취를 방해한다. 허영을 내려놓아야 정직한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애정을 갈구하지 않아야 사랑을 받는다. 돈도 감정을 가진 인격체인 탓일까. 소유욕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없듯이, 일방적인 물욕으로 돈도 잡을 수 없다. 참 아이러니하다.
다시 인간관계 이야기로 돌아가자.
내 친구 P는 항상 주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어 했다. 자라온 가정환경에서 이유를 끼워 맞출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해석의 문제다. 그 친구는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도 만족할 줄 몰랐다.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요구했다.
그의 태도는 주변 사람을 지치게 했다. 그는 이미 받은 것(Having)에 주목하거나 감사하지 못했다. 공허한 공간으로 무언가를 계속 욱여넣었다. 체할 듯이 급하게 밀어 넣지만 그 공간은 절대 채워지지 않았다. 마치 무한의 공간 같았다.
공허한 마음이 외부로 표출돼 눈에 보이기도 한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의 방을 본 적 있는가? 모든 잡동사니와 쓰레기들이 방에 널브러져 있다. 옷가지들이 침대를 차지해 누울 자리가 구분되지 않는다. 먹다 남은 음식들과 페트병, 캔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자기 자신을 쓰레기와 동일시 여기는 듯하다. 그곳에 '빈 공간'은 없다.
네이버 웹툰 <싸움독학>에 저장강박증을 앓는 소녀가 나온다. 소녀의 어머니는 자살했고, 오빠는 아버지를 살해해 감옥에 들어갔다. 어린 나이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집을 온갖 쓰레기로 가득 채웠다. 작가는 이를 두고 "아무도 없는 집이 외로워 가족 대신 쓰레기를 채워 넣었다"라고 표현했다.
'저장강박증'을 두산백과에서 찾아보니, "미국 뉴햄프셔대 연구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물건에 과도한 애착을 쏟기 쉽다"라며, "인간관계에서 안정을 찾고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 이러한 저장강박 증상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고 한다.
결핍으로 인한 강박, 내면의 문제가 환경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정확히는 아니어도 어떠한 종류의 사람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알코올중독자나 쇼핑중독자도 비슷하다. 그들은 채울 수 없는 공간에서 한없는 공허함을 느낀다. 그리고 무언가를 욱여넣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것이 겉치레든 좋아요든 쓰레기든, 무엇이든지.
나는 대학생 시절 친구 P를 아니꼽게 여겼다. 노력하지 않고 요구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복되는 감정싸움도 무의미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명예욕과 물욕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었다.
우리는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안고 살아간다. 부정적인 감정이 든다는 것은 어떤 욕구가 결핍됐다는 의미다.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 하든, 우리에겐 부족한 부분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완벽히는 모른다. 그래도 특정 부분이 결핍됐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봉쇄수도원에 들어가 침묵 속에서 기도라도 할까. 그러기도 싫고, 그럴 만한 사람도 되지 못한다. 욕망을 짓누르는 방법은 옳지 않다. 억눌린 욕망은 언젠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자연에게서 방법을 배워 보자. 현재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의 힌트를 자연법칙에서 찾아보자.
우리 집 앞에는 중랑천이 있다. 천의 물은 흘러 한강으로 들어가고 한강은 다시 서해로 이어진다. 중랑천엔 사계절 물이 흐른다. 물이 어디선가 무한히 공급되고 계속 순환한다. 물은 강을 통해 바다로 흘러가고 증발해 수증기가 된다. 수증기는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내린다.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물은 계속 흐른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노브랜드 미네랄워터를 마시고 있다. 2리터 페트병에 담긴 물을 컵에 따르면 "콸콸콸" 소리가 난다. 물이 부드럽게 흐르지 않는 이유는 공기가 페트병의 빈 공간을 채우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페트병의 절반은 물이, 나머지 절반은 공기가 채웠다. 내가 알아채지 못한 사이 공기가 움직인다. 자연은 진공 상태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중랑천은 끊임없이 물을 공급받는다. 하는 일은 오로지 물을 아래로 흘려보내는 것뿐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좋은 생각이 들어와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오려면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해야 한다. 생각을 글로 흘려보내면 다른 생각이 들어온다.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에게 먼저 인사하고, 관심을 갖고, 사랑을 주면 된다. 예수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쳤다. 앞서 말한 친구 P는 받는 것에 집중했다. 이와 반대로 관점을 바꾸어 먼저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이것은 글쓰기와 인간관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새 책을 원하면 읽은 책들을 정리해야 하고, 새 신발을 맞이하려면 헌 신발들을 보내줘야 한다. 마음이 공허한 사람은 온갖 물건을 버리지 못해 빈 공간이 없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하면서 '빈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그 공간은 자연이 채워주리라 믿는다.
우리는 삶의 공간을 조성한다. 저장강박증 사례에서 보았듯이, 공간은 정신세계를 나타낸다. 공간에 우리의 내면과 정체성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 공간은 다시 우리의 삶과 태도에 영향을 준다. 물이 흘러 구름이 되어 비로 내리듯, 공간과 우리는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새에.
어떤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그날 하루를 계획한다. 새로 얻은 물건들을 쓰임새에 따라 분류하고 정리한다. 쓰지 않는 물건을 받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흔쾌히 나눠준다. 넘치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반면 다른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급하게 준비하고 뛰쳐나간다. 집은 정리되지 않고 혼잡하다. 새로운 물건을 받으면 자신에게 필요 없어 보여도, 언젠가 필요할 것이라며 쌓아둔다. 그렇게 수집한 물건이 집안을 가득 메운다. 막상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무언가 막혀 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물건에서 끝나지 않는다. 단순히 가구나 집을 정리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다. 우리 삶에 새로운 것들은 시간과 돈, 사람도 있다. 삶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간과 돈도 관리하지 못한다. 시간을 허비하고 술과 도박에 돈을 낭비한다. 또는 돈을 맹목적으로 모은다. 모인 돈이 투자되지 않고 통장 한구석에 죽어 있다. 비생산적이다.
이제 이해가 간다, 부자가 되기 위해 일어나서 잠자리 정리부터 하라는 조언이. 그리고 사용하지 않는 스마트폰의 어플을 지우는 것이나, 방을 깔끔히 정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돈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정갈한 식사의 중요성이 이제야 이해된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 구약성서 <잠언>
우리는 빈 공간과 순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추상적인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가까이 있는 소재로 시작했다. 글과 생각부터 사랑과 인간관계, 내면과 공간, 물의 순환과 진공, 그리고 돈. 글의 흐름을 놓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읽어 보자. 아리송하면 내가 글을 쉽게 쓰지 못한 탓이다. 본격적으로 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롭 무어는 <머니>와 <결단>에서 '진공 번영의 법칙, the law of vacuum prosperity’을 소개한다. 그는 "삶에 새로운 것을 채우기 위해 먼저 공간을 비우고 정리해야 한다"라며, "좋은 감정을 느끼기 위해선 얽매여 있는 나쁜 감정을 정리해야 하고,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얻기 위해 먼저 복잡한 머리를 비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그는 "돈은 진공 상태를 싫어한다"라고 주장한다.
돈은 진공 상태를 싫어한다.
돈은 끊임없이 한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더 많은 물질적 부를 끌어들이고 싶다면 자연이 채울 빈 공간을 만들어라.
나누면 자연과 돈이 채우길 원하는 진공 상태가 만들어지므로 주는 것 이상으로 받게 된다. 줬을 때 돈이 도는 속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더 빨리 받게 된다. 당신이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돌려받지 못한다.
하찮은 게 위대한 걸 막는다. 저임금은 고임금을 막는다. 불평은 감사를 막는다.
롭 무어, <머니>
어떻게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을까. 돈이 진공상태를 싫어한다니! 2018년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저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라는 수준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는 우리가 앞서 언급한 '물의 순환'처럼, 돈이 공정한 방향으로 '흐른다'고 표현한다.
그는 "전 세계 경제엔 약 80조 파운드가 돌아다니고, 주식과 채권의 전체 가치는 150~180조로 추산되며, 지금까지 채굴된 금의 가치가 8조 2000억 달러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라며, "전 세계 경제엔 사실상 무한대이자 무제한에 가까운 돈이 있다. 우리 모두가 백만장자가 되고 남을 만큼 충분한 돈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롭 무어의 주장대로 돈은 흐른다. 만약 당신에게 10억 원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중 일부분은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된다. 그럼 돈은 누군가와 동업하는 데 사용되거나, 사업 자금으로 흘러간다. 돈이 은행에 예치되면, 은행은 그 돈을 다른 사람들에게 대출해 준다. 지급준비율과 통화승수 개념을 몰라도, 돈이 불어나며 흘러가는 게 보인다.
부자들도 돈을 어딘가에 투자하거나 맡겨 뒀다. 그 돈도 은행 등의 기관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 계속해서 움직인다. 세계에 어마어마한 양의 돈이 흘러 다닌다고 할 때, 우리는 그 중간에 잠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누군가에게 오는 돈을 받아서 또다시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면 된다. 사실 우리는 모두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순환 가운데에서 얼마만큼의 돈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승호 대표는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전체 부의 크기를 '수각'에 빗대 설명한다. 수각은 산에서 볼 수 있는 물을 담는 그릇이다. 산에서 흐르는 물이 한 방울씩 모여 돌그릇을 가득 채운다.
그는 수각의 크기를 키우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구분해 물건을 사는 습관, 이자의 무서움을 아는 것, 그리고 수각을 채우고 난 뒤 밖으로 흐르는 물의 관리 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 방법은 우리가 논의 중인 순환과 관련이 있다.
넘치는 물은 산새나 작은 짐승이 마실 수 있게 돕고 수국 꽃밭이나 풀밭과 곡식이 자라는 논과 밭을 지나야 한다. 그렇게 수각을 빠져나온 물은 또 다른 생명을 이롭게 하는 곳으로 흘러야 한다. 결국 돈이 올바르고 가치 있는 일에 쓰여야 한다는 말이다.
밖에 있던 부를 내 안의 수각으로 들어오게 만든 건 과거 자신의 행동이지만, 나에게서 흘러 세상에 나간 재물이 세상을 이롭게 하고 그 이로움을 통해 다시 내가 이로워지는 건 지금 행동의 결과다.
만약 이런 이로운 행위를 멈춘다면 언젠가 내게 들어오던 수각의 물은 멈추고 말 것이다.
- 김승호,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어렸을 때 나는 참 이기적으로 살았다. 내 인생의 목표에 타인이 없었다. 그런데 점점 주고 베푸는 삶이 행복한 삶이란 걸 깨달아간다. 주는 것이 오히려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교훈은 기원전 고전에서부터 전해진다. 그리고 현재 여러 저자들이 비슷한 의미의 교훈을 주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진리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부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10가지 힘' 중 하나로 '주는 것의 힘'을 소개한다. 그는 "무언가를 원하면 먼저 주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지 생각하는 과정만으로도 상당한 보상이 나타난다"라며, "우리 세상은 우리의 거울에 불과하다는 말은 진실"이라고 말한다.
결국 '주는 것'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리는 과거 '인생을 싼 값에 떨이하는 사람들'에서 기브 앤 테이크에 대해 논의했다. 이 글에서 나는 "'Take & Give'가 아니라 'Give & Take'니, 받기 위해 먼저 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다. '받기 위해' 주면 돌려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점수를 기록하는 걸 그만두게. 그건 인맥을 만드는 게 아니라 포커를 치는 거라네. 윈-윈 전략이란 위장된 점수 기록에 지나지 않네. 50대 50 따위는 잊어버려. 그건 무조건 지는 전략이라네. 100퍼센트, 승리를 거두는 유일한 전략은 바로 100퍼센트를 주는 거야.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해 주게. 다른 사람의 승리에 집중하는 걸세."
- 밥 버그, 존 데이비드 만, <기버1>
이전 글을 보면 알다시피, 나는 오랫동안 그리스도교의 황금률과 기브 앤 테이크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 안에 성공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 한 권을 읽고 'Give & Take'를 보다 깊게 이해하게 됐다. <기버1>은 시종일관 '주는 것'을 쉽게 풀어낸 책이다. 역시 진리는 단순하다.
<기버1>에서 주인공 조는 여러 사람들에게 성공의 법칙을 배운다. 그중 레스토랑 주인 어네스토는 성공에 이르는 다섯 가지 법칙 중 첫 번째인 '가치의 법칙'을 알려 준다. 그 법칙은 다음과 같다. “당신의 진정한 가치는 자신이 받는 대가보다 얼마나 많은 가치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이 법칙에 대해 주인공 조가 "달리 표현하자면 이거군요"라며, "사람들의 기대를 넘어서라. 그러면 그들은 더 많이 돌려줄 것이다"라고 말하자, 어네스토가 다시 설명한다.
핵심은 그들이 더 많이 돌려주게 만드는 게 아니야.
자네가 더 많이 주는 게 중요하지.
주고, 주고, 또 주는 거야.
어째서 그래야 하냐고?
그러고 싶으니까.
그건 전략 따위가 아니야.
살아가는 방식이지.
전략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전략은 부자연스러운 반면 삶의 방식은 자연스럽다. 나는 성공하고 싶어서 자기계발서를 읽었다. 받기 위해 먼저 줘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줬다. 방법론적으로 접근했다. 부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나쁜 행동은 아니지만 훌륭하지 않다.
보다 나은 행동은 '받기 위해' 주지 않고, 그냥 주는 것이다. 기대하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보답을 바라지 않고 도와줘야 한다. 주는 것 자체에서 행복해야 한다. 많은 책들은 '주면 받는다'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우리가 무언가를 줬을 때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다. 바로 보답을 기대하고 준 경우다. 이것을 깨닫고 나는 'GIVE & TAKE'에서 'TAKE'를 지웠다. 이제 'GIVE'만 남았다.
돈의 흐름과 순환을 기억하자. 돈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오게 하기 위해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시급과 연봉을 조금 올리는 데 연연하지 말자.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무조건적인 절약도 삼가자. 가치와 돈의 흐름을 방해하지 말고, 주는 데 집중하자.
돈에는 에너지와 가치가 저장되어 있다. 우리는 사과를 사거나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면 돈을 낸다. 이처럼 돈은 재화와 서비스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현재 가진 돈도 과거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난 후, 받은 돈이다. 돈이 필요하다고 돈을 좇지 말자. 오히려 돈을 주고 빈 공간을 만들자. 다른 사람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도울 방법을 찾자.
'돈이 부족하다'라는 생각도 그만두자. '돈이 없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쉽게 내뱉지 말자. 나의 가난의 이유를 다른 부자들에게서 찾지 말자. 부는 절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세상엔 돈과 기회가 많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더 많다. 일단 '돈'을 생각하지 말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부터 도와주자.
물은 흐른다. 우리 몸도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 삶에는 미래라는 빈 공간이 있다. 과거를 그만 놓아주자. 새해다.
성공하려 애쓰는 자는 실패를 하고 쥐고 놓지 않으려는 자는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무위의 성인은 무리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가 없고 잡고 늘어지지 않기 때문에 놓치지 않는다.
- 노자, <도덕경>
- Silverback in Black Forest, with Ti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