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처음 Jul 05. 2019

D-62. 걱정 리스트 만들기

비자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우리 부부의 자세

여름 볕이 뜨겁다. 벌써 7월이다.


나는 여름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더위를 많이 타고 땀도 많이 흘려서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그나마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로 살고 있어 외출 시간을 내가 조절할 수 있고, 제철과일이나 채소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여름에 나는 맛있는 농작물을 기다리게 되면서 이 계절을 즐기는 나만의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가고 있다. 하지만 역시 나는 겨울이 좋다.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얼굴에 닿는 느낌이 좋다.


한국 여름의 덥고 습한 기후는 남편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다. 땡볕이 내리쬐는 한낮이 저물고 아스팔트 도시의 기온도 조금씩 낮아지면 한숨 쉬어갈 수 있는 여름밤도 남편은 견디기 힘들어한다. 나는 잘 느끼지 못하는 높은 습도 때문이다. 기온이 높지만 건조한 영국의 여름 기후에 익숙한 남편의 몸은 높은 기온과 높은 습도를 동시에 경험하며 크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기에 조금 시원한 밤에도 체온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그래서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전혀 덥지 않은데 남편은 더워서 잠을 못 자는 경우도 많았다. 올해에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름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신체 리듬의 변화는 우리 일상을 흔들어놓았다.


"(여름이) 시작된 것 같아." 몇 주 전 남편이 말했었다.

뜨거운 여름날엔 비가 시원하게 내리던 서늘한 런던 생각 ⓒ김처음


걱정 리스트 만들기


며칠 전, 자다가 기척에 눈을 떴는데 남편이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새벽 4시였다. 여러 가지 걱정 때문에 잠이 안 온다는 것이었다. 걱정의 이유는 세 가지였다.

- 배우자 비자 신청이 반려되거나 지연될 가능성

- 영국으로 이주 후 삶의 변화들

- 영국에서 있을 웨딩블레싱(결혼 1주년에 영국에서 손님을 모아서 웨딩블레싱을 진행할 계획이다)


나는 잠결에 ‘그렇구나, 그래도 그런 걱정은 지금 아무 도움이 안 돼.’라고 말해주었다. 응 나도 알아,라고 풀이 죽은 남편이 대답했다. 덥고 습한 한국 여름에 여전히 적응하지 못한 남편의 심리적 온도를 조금 낮추고자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했다. 크리스마스는 영국에서는 가장 큰 공휴일로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은  부모님 집에 모여 가족들과 배불리 먹고 실컷 자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대형 슈퍼마켓도 모두 문을 닫고 대중교통도 운행을 잠시 중단한다. 모든 사람이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슈퍼마켓도 대중교통도 잠시 동안 이용할 수 없는 것인데, 결론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반강제적으로 집에서 가족들과 쉴 수밖에 달리 할 것이 없다. 어쨌든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면 겨울의 서늘한 공기, 맛있는 음식, 가족들과의 시간이 떠오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남편에게는 위로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영국 이주를 생각하면 기대되는 것들도 나열했고, 사운드 오브 뮤직의 ‘Favorite things’라는 노래를 아냐며 그 노래를 불러주었다. 실제로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영화에서 이 노래를 부를 때 창밖에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노래를 생각하면 청량한 느낌도 함께 든다. 이런 여러 가지 시도 끝에 새벽 6시가 다 되어서야 남편은 잠이 들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중 'Favorite Things'를 부르는 장면 / 출처: 네이버 영화

실은 내 비자와 관련해서는 전에 내가 오히려 걱정된다고 하자 남편이 나를 달래준 적이 있었다.

“아니, 우리 추가 돈 내고 문자메시지 알림 서비스도 신청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메시지 한 번 밖에 안 왔어. 우리 신청서가 UKVI로 넘어갔다는 문자, 그거 달랑 하나 왔잖아. 그거 하나 받자고 우리 돈 더 낸 거야? 왜 연락이 없지? 이러다가 우리 계획보다 비자 늦게 나오는 거 아냐? 어떡해?”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봐봐. 웹사이트에서 추가 돈 내고 priority 서비스 신청하는 거 있었지. 근데 돈이 너무 비싸서 우린 그냥 그거 신청 안 했잖아. 그거 신청하면 보통 한 달 안에 처리가 완료된다고 했어. 근데 우린 standard로 했으니까 빨라도 두 달 혹은 세 달 정도 걸리겠지. 지금은 기다리는 거밖에 할 수 없는 시기야.”라고 말했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잠도 못 자고 고민하는 걸 보니 역시 본인도 마음속으로는 엄청 걱정이 됐었나 보다. 마음이 짠했다.


다음 날, 남편은 걱정 리스트를 만들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중에서 지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에 대해 상의하여 엑스표를 쳤다. 하지만 엑스표를 친 후에도 남아있는 고민들이 있었다. 내 비자 문제다.


우리는 영국으로 갈 비행기표를 이미 끊어놓았다. 9월 초다.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비자와 관련해서 취한 행동들을 대략 정리하면 이렇다.


2년 전

영국에 가기 위해 배우자 비자 신청에 필요한 서류와 조건들을 찾아보고 가장 중요한 재정적인 준비를 해놓음

1년 전

이민 변호사를 알아보고 연락을 취함(이민 변호사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비자 신청에 워낙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큰돈이 드는 일이기 때문에 이민 변호사와 함께 준비했다)

올해 초

비자 신청을 위한 서류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

6월 4일

비자 신청을 위한 온라인 접수를 완료하고 영국비자센터 방문 예약

6월 11일

회현역 단암빌딩에 있는 영국비자센터에 방문해 서류를 제출하고 지문 등록과 사진 촬영

그날 저녁 나의 비자신청서가 UKVI로 전달되었다는 문자 수신

6월 28일

나의 비자신청서가 영국의 심사기관에 전달되었으며 영국 외무성은 이주 비자 신청의 경우 신청일 기준으로 12주 이내에 모든 절차를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메일 수신


즉 마지막으로 받은 메일에 따르면, 6월 4일을 비자 신청일로 본다면 8월 안에는 비자 신청 결과를 알 수 있을 거라는 말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12주 이내에 모든 절차를 완료하지 못할 경우 비자 심사국에서 별도의 연락을 취할 것이며 그에 따른 환불이나 보상은 없다는 말도 메일에 적혀있었으므로, 모든 것이 무난하게 잘 진행될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나는, 우리는, 이 뜨거운 여름을 넘기고 무사히 이주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