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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님 Jan 05. 2021

그 겨울들이 없었더라면, 부끄러움이 없었더라면

자전적 이야기 

기말고사를 하루 앞둔 일요일, 열일곱의 한 소녀는 이른 새벽 눈을 떴다. 아직 모두가 잠든 집에서 조용한 몸짓으로 책상의 조명을 켰다. 그리고는 이내 종이를 꺼내 무언가 적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조심스러웠고, 그렇지만 또 아주 대담했던 손짓이었다. 동트기 전 아주 깜깜한 세상에 켜진 작은 탁상조명, 그리고 거기에는 다른 종이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빛을 띠는 듯 했던 흰 종이 뭉치들이 있었다. 


2013년 겨울의 정치 참여


  ‘안녕들 하십니까.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 겨울에는 안암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물음이 전역에 퍼지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분노를 타고서 그 물음은 소녀 앞으로 와 앉았다. 시험을 코앞에 두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소녀는 그 물음에 답했다. 누군가의 안녕하냐는 물음에, 그렇지 못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안녕하냐고 물었다. 그렇게 이른 새벽 작은 종이에 어리숙하지만 자신의 외침을 담았다. 조용하지만 소녀에게는 아주 커다란 공명이었다. 종이뭉치와 테이프를 들고 나선 밖은 너무도 추웠다. 열 군데가 넘는 동네의 버스 정류장마다 한 장 한 장 붙이는 손과 발은 얼었다. 그러나 다리는 더 빨리 움직였고, 심장은 자꾸만 빨리 뛰었으며, 온 몸의 털이 솟는 듯했다. 빨리 뛰는 심장과 단단히 긴장한 온 몸을 통해 소녀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내가 이 사회에 살고 있구나.’ 하고.


  그 날 오후, 그 종이를 발견하신 어머니는 혼을 내셨다. 그리고는 이른 새벽 소녀가 걸었던 길을 똑같이 걸으며 그 종이들을 하나씩 다 떼어내셨다. 혼이 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어떤 마음인지 다 알 것만 같았다. 어머니의 근심걱정과 아버지의 독려 중 마음이 더 기운 곳은 어머니의 근심이었다. 부끄러워졌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 만 같았고, 들켜서는 안 될 일을 들켜버린 것만 같았다. 어머니가 그 길을 걸으며 떼어내시는 것을 보며, 그냥 붙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미숙하게 적어낸 자신의 외침이 세상에 나온 게 부끄러웠고, 그건 그냥 목으로 다시 삼켜야했었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었던 게 얄팍한 의지와 투지 뿐 이었던 소녀는, 그 부끄러움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했다. 부끄러웠다. 2013년, 유달리 추웠던 겨울이었다. 


  2016년 겨울, 스물의 그녀는 해가 다 뜨고 나서야 느지막이 눈을 떴다. 아버지가 틀어놓으신 뉴스 라디오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냥 듣고 있었다. 여덟시만 되면 TV를 켜고 뉴스를 틀었다. 그냥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 해 부모님 몰래 두 번째 수능을 준비했었다. 그렇게 더 자격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분투했다. 3년 전 느꼈던 부끄러움을 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2016년, 다시 겨울이 왔다. 훨씬 더 안녕하지 못한 겨울이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녀는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녀가 어떠한 연유로, 그리고 어떠한 감정으로 광화문에 가지 않았는지, 매일매일 차오르는 분노의 외침을 왜 고스란히 다시 삼켜버렸는지, 그녀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새벽녘 책상위에 켜진 작은 조명이 부끄러움으로 꺼져버린 그 날 이후, 그녀는 다시는 어둠 속에서 빛을 내지 않았다. 촛불을 손에 쥐지 않았다. 누군가 ‘안녕들 하십니까?’ 하고 다시 물었을 때, 그녀는 ‘그럼요. 저는 안녕합니다.’ 하고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2018년 겨울, 이제 나는 안녕치 못하다. 2016년 겨울을 그렇게 보낸 이후, 내내 부끄러워하며 살았다. 광화문에 내 발자국이 없다는 것이, 무수한 촛불로 피워낸 빛 속에 내 것이 없었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함께 외친 함성에 내 목소리는 없었다는 것이. 그것들이 나를 몹시도 창피하게 만들었다. 유난히 생명력을 띠던 봄이 지나 다시 겨울이오고 또 다시 겨울이 올 때까지, 그 부끄러움은 나에게서 떨쳐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분노하게 할 뿐이었다. 부끄러움으로 자라온 나는 이제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서는 안녕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시선은 중심이 아니라 작고 낮은, 그리고 낯선 곳을 향한다. 가까운 것만 보지 않고, 중심에서 나 홀로 안녕하지 못한다. 나에게는 어떠한 소명이 있다. 부끄러움이 내린 소명을 나는 기꺼이 받들었다. 새벽녘이 되면 책상 위의 작은 조명을 켤 줄 아는, 그리고 그 빛으로 작고 낮은 곳을 비춰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차가운 공기를 뚫고 밖으로 나가 뛰는 심장으로 외침을 전하는, 그리고 누군가의 외침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나의 소명이자 나의 꿈이다.  


  나는 부끄러움으로 자라온 아이다. 내 안에는 두 가지 부끄러움이 산다. 앞으로는 아마 더 많은, 더 커다란 부끄러움이 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그 부끄러움을 안겠다. 버리지 않고 쌓아왔던 부끄러움이 결국 나의 삶을 바꿨다. 나는 지금 여기에 없었을 것이다. 그 겨울들이 없었더라면, 부끄러움이 없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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