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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나무 Jan 07. 2023

상담사이기 전에 행복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

진정한 상담사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현재 나는 학교 상담실에서 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아동 심리발달센터와 지역 사회복지관, 그리고 초등학교와 노인 노양병원 등에서 집단 미술치료를 진행하며, 프리랜서 미술치료사로 활동했었다. 그간 운이 좋게도 직접적으로 구직활동은 한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인연으로 기관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시거나 지인들의 소개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많게는 하루에 8 케이스, 적게는 1~2 케이스 등을 상담하는 동안 출퇴근 시간과 급여의 변동성이 늘 존재했고, 쉬는 시간에는 바우처 카드를 치료사가 직접 결제해야 하기 때문에 케이스가 많은 날에는 화장실에 갈 시간조차 여의치 않았다. 게다가 상담일지 작성과 상담실 청소 및 정리하는 시간은 별도이다.


사설 센터의 경우 대부분 기관과 치료사가 상담비를 5:5로 나누기 때문에 아동이 상담을 중단하여 케이스가 없어지기라도 할 때면 아무래도 기관장에게 어느 정도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기본급 없이 온전히 케이스 당 책정되는 급여가 줄어들 때면 심리적, 경제적 불안정성이 더욱 크게 느껴졌으며,  어쩌다 아동 개인의 사정으로 상담실에 오지 못하는 날에는 치료사가 학부모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다른 날 스케줄을 잡아 보강을 해야만 한다.


케이스는 기관에서 스케줄을 잡아주는 대로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나와 같이 체력이 그다지 좋지 못한 치료사는 케이스가 많으면 많아서 지치고, 적으면 적어서 또 지치는 모순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렇게 매일 비슷한 사례의 아동들을 작은 상담실 안에서 쉴 틈 없이 만나는 동안 소진을 경험했고, 현실적인 부분들에 대한 불안감 또한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다 학교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준비 기간을 거쳐 실행에 옮겼다.






전문 상담사는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 존재하고 있는 위클래스에서 근무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크고, 간혹 대안학교나 위스쿨 등에서 근무하기도 한다. 대개 청소년 상담사 2급, 임상 심리사 2급, 사회복지사 1급, 한국상담심리학회 2급 외 기타 등등의 자격 조건들 중에 하나가 충족된다면 서류전형에 응시할 수 있으며, 응시한 지원자 중에 3 배수로 지원자들을 선발하고, 면접을 통해 최종 합격자에게 통보하는 형식이다.


전문상담사는 상담 교사와 엄연히 다르다. 대학에서 상담을 전공하고, 임용고시를 통과한 상담교사와 전문상담사에 대한 처우는 간격이 꽤나 크다. 또한 학교는 위계적인 조직 사회인데다 직위에 따른 차별이 분명 존재한다. 나의 경우 그 안에서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었는데, 지금껏 흔히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인간들과의 관계와 처신, 참으로 난감하고 어려운 상담 케이스들을 접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상담사로서의 갈등과 고민들, 담임교사, 지역사회 전문가들과의 협업과 외부연계,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행정업무. 그 외 상담과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떠맡아야 했던 업무들까지.. 예상치 못했던 수많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기롭게 학교 상담사의 길로 떠났던  나는 첫 학교와의 계약기간을 다 마치지 못한 채 퇴사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상담을 하는 것이 좋고, 오로지 상담만을 하기 위한 환경으로는 센터만이 답이라는 합리화를 하며 다시 기존에 근무했던 사설 센터로 돌아갈 계획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과 여건상 결국  학교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 과정들을 겪으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합리화와 회피, 퇴행 등 다양한 방어기제를 사용해오던 나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이며, 내면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어느 곳을 가도 결과는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두 학교에서의 계약직 기간을 거쳐 교육청 공채에 지원했고,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교육감 소속 근로자로 정식 발령을 받게 되었다. 어딜 가나 좋은 것만은 없고, 나쁜 것만도 없다. 다만 어떤 부분에 초점을 두고 우선순위를 정하느냐에 대한 선택의 문제일 뿐.





지난 연말, 석사 동기 모임 중에 한 선생님이 말하기를 "우리 중에 진정한 상담사의 길로 접어든 사람은 00 쌤 밖에 없다."라고 이야기 했다. 00 쌤은 그날 자리에 없었는데, 기존에 내가 근무했었던 아동발달센터에서 현재도 근무하고 있는 석사 동기 쌤 중에 한 명이다. 생각해보니 그날 이 말을 했던 선생님은 지난 여름 나와 단 둘이 만났을 때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때 그 자리에서 직접 진정한 상담사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반문하지 못했던 것을 집에 돌아와서도 후회했다. 그리고 한 동안 머리속에서는 ‘진정한 상담사’와 그 기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지금도 누군가 내게 “진정한 상담사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그리고 너는 진정한 상담사의 길을 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어떤 식으로든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내 삶의 목표라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또한 내가 가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 시키고자 하며, 안정적인 미래와 환경을 만들어 가고 싶은 나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한다.


  여전히 나에게 상담사라는 직업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고, 나를 행복하게 만들때가 많지만 나에게 더 의미있고, 더 큰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상담사라는 옷을 기꺼이 벗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나는 진정한 상담사가 되기 보다는 행복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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