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 스며들다.

by 문환



2012년 어느 여름날.

나는 여행상품개발을 위한 출장으로 캄보디아 '씨엠립(Siemreap)'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내가 할 일은 앙코르와트를 포함한 앙코르 유적지를 여행하고 여행상품에 포함된 일정의 모든 곳을 두루 둘러보는 일. 여기에는 호텔 투어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행업계에서 출장에서의 호텔 투어는 '인스펙션(Inspection)'으로 불린다. 사실 인스펙션이란 단어는 투어의 의미보단 시찰, 단속, 점검으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제약업계에서 근무했던 아내에게는 일종의 금지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호텔 인스펙션은 하루에 많게는 10곳 이상의 호텔들을 돌아다니며 매니저와의 미팅과 함께 주요 판매 객실과 부대시설 등을 이해해야 하는, 유익하면서도 복잡한 일과인 셈이다. 무엇보다 호텔명이 대부분 비슷해서 혼란을 느끼곤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엔 호텔명에 들어가는 공통적인 단어 '앙코르(Angkor)'에 있었다. 이는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앙코르 유적지에서 따온 단어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캄보디아 주요 민족인 크메르인에서 따온 '크메르(Khmer)', 힌두 신화에 등장하는 무녀인 '압사라(Apsara)' 등도 마찬가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호텔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앙코르 유적에서 빠질 수 없는 힌두신들의 불상을 모셔두었다거나 앙코르와트 부조 일부나 압사라 무녀를 그림으로 표현한 흔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씨엠립의 호텔은 단순히 호텔 자체의 목적에 집중하기보단 씨엠립 도시의 이야기를 투숙객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4.jpg?type=w1 씨엠립 신타마니 호텔



나는 여행에서 호텔을 참 좋아한다.


호텔은 여행에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이며, 수많은 여행자들이 투숙하지만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다음 여행자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다. 잠을 자는 쉼이라는 공간에서 집과의 차이점은 투숙의 목적에 있다. 일상에서의 집은 단순히 쉼을 보장하는 공간이 아니다. 매일 생활하는 공간 중 하나로 깔끔히 청소를 해야 하고, 식사를 고민해야 하며, 내일을 위한 생각을 갖게 만드는 등 쉼 외의 다양한 활동을 동반한다. 반면, 호텔은 그렇지 않다. 깨끗이 정돈된 말끔한 객실은 일상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아 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을 벗어났다는 의미에서 여행과 닮아있다. 여행에서 내가 선호하는 호텔은 씨엠립 호텔들과 유사한데, 쉼이라는 머무는 공간의 목적과 함께 여행지의 색이 스며든 호텔을 찾아다닌다. 다낭 가이드북 집필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투숙한'인터컨티넨탈 다낭 썬 페니슐라 리조트(InterContinental Danang Sun Peninsula Resort)'는 특별히 기억에 많이 남는 곳이다. 다낭 시내를 벗어나 선짜반도의 몽키 마운틴에 위치한 리조트로 세계적인 건축가 '빌 벤슬리(Bill Bensley)'의 작품이다. 빌 벤슬리의 작품을 처음 마주했던 건 씨엠립의 '신타마니 호텔(Shinta Mani Hotel)'에서였다. 전체적인 호텔의 색은 블랙&화이트를 기본으로 오렌지&그린으로 과감히 포인트를 살렸다. 이곳이 씨엠립인가 할 정도로 독특한 모던한 디자인이었지만 그 속엔 빌 벤슬리가 씨엠립에서 경험했던 영감들이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마치 *자야바르만 2세가 현대에 살았다면 이런 곳이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터컨티넨탈 다낭도 마찬가지다. 빌 벤슬리가 베트남에 오랜 시간 거주하며 베트남의 사랑을 아낌없이 표출해두었다. 언덕 곳곳에 자리 잡은 시설은 천국, 하늘, 땅, 바다를 테마로 산부터 바다까지 리조트를 4단으로 구성해놓았는데, 케이블카를 타고 이곳을 오르내리는 구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눈앞으로 펼쳐지는 바다 전망은 가히 환상적이다.



DSC08090.jpg 익살스러운 다양한 표정을 가진 원숭이 조각상


리조트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익살스러운 다양한 표정을 가진 원숭이 조각상들은 이곳의 마스코트다. 실제로 몽키 마운틴에는 산 명칭처럼 원숭이들이 살고 있는데, 가끔 야외 테라스를 통해 객실로 들어와 투숙객들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다만, 원숭이를 보면 행운이 온다고 하니 일종의 스토리텔링을 잘 갖춘 셈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씨트론(citron)' 레스토랑은 리조트의 어느 공간보다 베트남스러웠다. 그린&옐로 톤으로 가득 찬 내부 인테리어는 과일 씨트론을 비롯한 열대과일의 색을 표현했다. 호텔 매니저가 설명해주지 않았더라면 입구 천장의 알 수 없는 동물 그림 문자가 베트남 고대 동굴 문자라는 걸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야외 테라스 좌석은 베트남 모자인 '농'을 뒤집어놓은 베트남 고유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하여 누구나 한 번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게끔 만들어두었다. 씨엠립이나 다낭의 경우처럼 여행지의 색이 스며든 호텔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건, 여행에서 있어서 큰 행복이었다. 이 감정들의 쌓임이 원인이었는지는 몰라도 언젠가부터 숙박업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호텔에서 경험했던 유사한 행복의 기분을 여행자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실제로 생활하던 공간에 꾸밈을 더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과 한국 특유의 공기, 냄새까지 모든 것들이 공간에 잘 스며든 그런 곳이면 참 좋겠다.







보고 느끼고 씁니다
여행작가 김문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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