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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Jan 23. 2023

오빠! 잠 안 오지? 내려와서 노가다좀 뛸래!

양뗀 없지만 유목민처럼 살고싶어 #1

 "오빠 오랜만이야. 요즘 어떻게 지내?"

  "응 매일 사무실에 출근해서 온라인쇼핑몰에 상품 올리지."

 "그래! 근데 재미있어?"

 "아니, 재미없어."

 "근데, 그 재미없는 일을 왜 해?"

"먹고살려고 하지. 미래의 먹거리로 돈 들어오는 파이프라인 하나 구축해 놓으려고. 요즘 유튜브 보면 자신만의 파이프라인 구축하라고 난리도 아니잖아. 잠자는 동안에도 돈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나 어쩐다나."

 "한국에서 스마트스토어는 전 국민이 한다는데 오빠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재미라도 있으면 몰라도."

 "혹시라도 상품 몇 개 터지면 대박 날지도 모르잖아. 유튜브 보면 몇 달 만에 몇천에서 억대 매출이 가능하다고 떠들어대던데"

 "아..  네!!! 오빠 밤에 잠 안 오지?"

 "어떻게 알았어?"

 "여기 포항에 있는 신축 풀빌라인데 내려와서 노가다좀 뛸래? 오빠가 좋아하는 바다는 실컷 볼 수 있을 거야. 매일매일 지겨우리만큼."

 "바다는 좋은데, 웬 노가다?"

 "내려와 보면 알아. 잠 안 오는 데는 노가다가 특효약이거든 ㅎㅎ"

 "알았어. 그렇지 않아도 노가다가 뛰고 싶어서 알아보던 중이었어. 내일이라도 여기 생활 정리하고 내려가지 뭐."

 "정말?"

 "근데 언제쯤 내려가면 되니?"

 "응 담주에."

 "알았어. 담주 중에 짐 싸서 내려갈게."

 "날자 정해지면 알려줘."

 "오케이"


 학교 후배이자 30년 지기인 그녀와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부동산에 전화부터 했다. 9월 말에 1년 계약으로 들어가 살고 있는 원룸을 내놓기 위해서였다. 젊은 부동산 사장님은 좀 당황하는 눈치였다. 집주인과는 통화했냐고 묻는다. 방금 후배와 통화하면서 결정된 사안이라 부동산으로 바로 전화했다고 했다. 집주인과는 부동산 사장님이 통화해 보라고 하고 일단 방을 빼겠다는 노티스를 주었다. 문제는 겨울이고 연말이 다가오는 시점이라 방이 쉽게 나가지 않을 거라는 사장님의 우려였다.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그 우려가 현실이 되었지만. 두 달 정도 살았으니깐 방이 계속 나가지 않으면 계약이 끝날 때까지, 아니면 보증금이 다 까여서 탈탈 털려 깡통이 될 때까지 빈방으로 월세를 내야 한다. 빨리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길 바라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바다뷰와 바꾼 월세와 공과금은 매달 45만 원쯤 된다.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나의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수현이가 부동산 사장님보다 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은  한동안 무거운 침묵으로 공기가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창밖에는 눈발까지 날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난감해하는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실, 나는 수현의 건축사사무소에서 기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생충은 아니었다. 그녀는 공생이라고 우기지만 내 기준에서는 기생이었다. 좀 더 쉬운 말로 땡전 한 푼 내지 않고 얹혀살고 있었다. 그것도 3개월 동안이나 말이다. 심지어 헤이리 후문에 원룸을 계약하기 전까지는 사무실에서 잤다. 씻는 일이 고역이었지만 다행히 화장실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친절하게도, 청소용으로 빼놓은 수도꼭지에  1미터 정도의 녹색 가든용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었다.  화장실에는 더운물이 나오지 않았지만 9월 말, 심지어 10월 초까지도  찬물 샤워가 가능했다. 이게 다 지구 온난화 덕분이다. 타인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생생한 경험을 한 달 가까이나 실감했다. 그녀는 캠핑용 매트와 전기장판에 침낭까지 준비해 주었다. 사무실에서 자는 내가 많이 불쌍해 보였나 보다. 부동산과는  계속 연락을 취해서 원룸을 알아보고 있었다. 사무실 근처에 마땅한 방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파주로 올라간 시점은 추석 연휴가 끝나는 다음날이었다. 출판 단지 인근에 있는 사무실은 둘이 쓰기에도 넓었다. 수현이 옆자리에 책상 하나를 놓아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무실 주변은 아파트 현장 바로 옆의 원룸촌이다. 그 원룸촌 1층에는 공방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가죽 공방부터 라탄 공방과 목공 공방이 많았다. 공방 투어는 점심시간에 산책을 겸해 이루어졌다. 수현은 아기자기한 공방에 관심이 많았다. 건축사답게 공방의 작품들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간주했다. 공방 투어를 하다 보면 부동산 중개업소가 눈에 띈다. 이구동성으로  아파트 공사 현장이 많아서 방이 없다는 부동산 직원의 말은 거의 한 달이나 이어졌다. 거리가 출판단지에서 제법 떨어진 헤이리 후문에 원룸을 얻은 이유이기도 하다.


 수현은 나와 같은 우울증 환자다. 그녀와 내가 공감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수현을 알게 된 지는 23년쯤 전이다. 그녀는 내가 만들어서 운영하던 봉사활동 모임의 회원이었다. 그녀는 열성당원이어서 금방 친해졌고 그 친분은 지금도 이어지도 있다. 그녀는 결혼해서 아이가 둘이 있는 유부녀다. 물론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어엿한 남편도 있다. 그런 유부녀와 단 둘이서 사무실을 공유한다니 처음엔 나도 주저했다. 가장 걱정한 사람은 수현의 친정아버지였다. 80이 넘으신 친정아버지는 그런 상황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셨다. 심지어 땅끝마을에서 파주의 사무실까지 직접 방문하기도 하셨으니 말이다. 그녀의 남편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데 주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남녀 간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며칠이 지나자 수현도 나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었다. 하지만 그 넓은 사무실을 혼자 쓰고 혼자 점심을 먹을 그녀를 생각하면 여전히 미안하다.




감포 앞바다에  떠오른 빨간 볼


 한국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한 달 살기는 제주도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몇 박 며칠의 시간만으로는 여행의 허기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각자의 경험치로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먹고살만해졌다. 어디 어디 찍고 식의 보여주기나 과시형 여행에서 실속을 추구하는 여행으로 바뀌고 있다. 여행 또한 선진국형 패턴으로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한 발 더 나아가 한 달 살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생업에 매몰되어 있던 시절, 한 달 살기는 나의 로망이기도 했다.


감포 앞바다에 떠오른 불덩이


 런던에 살면서 한국에서의 한 달 살기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결코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던 희망이고 꿈이었다. 삶의 터전인 런던에서 일을 두고  탈출하는 일은 말 그대로 꿈에서나 가능했다. 그래서 매일 꿈만 꾸었다. 제주도에 살면서 매일 바다를 향해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은 충만해 보였다. 아침마다 불덩이가 바다아래에서 고개를 내미는 모습과 저녁마다 불덩이를 다시 바다 아래로 숨기는 장엄한 의식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마치 고양이가 빨간 공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놀듯이 그 빨간 불덩이를 가지고 놀고 싶었다.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자연을 맛보고 싶었다.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집밥처럼. 자연의 위대함을 통해 나의 보잘것없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영국이나 유럽도 아닌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감포 앞바다의 태양


 시간이 많이 지나서이기는 하지만 나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제주도는 아니지만 남쪽 동해안의 작은 어촌마을 감포라는 곳에서 말이다.  "오빠 잠 안 오지? 내려와서 노가다좀 뛸래"라는  그녀의 전화 한 통에 막 자리 잡은 목초지를 포기하고 떠나온 것이다. 목동의 삶은 자유로워야 한다. 언제든 풀이 있는 곳으로 양들을 이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 자유로움은 미니멀 라니프에서 온다. 텐트 하나와 이불 및 취사도구 몇 가지가 전부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동은 번거로워지는 이사로 변질된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의 이삿짐은 승용차 하나로 가능한 분량이다. 그중 반은 책이니까 사실 이삿짐이 거의 없는 편이다.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이고 언제든 목초지를 찾으면 이동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 유목민의 삶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란 책에서  이야기한 그 마법의 돌과 보물을 찾아서. 그리고 그 자유로움에 대해서도.



* "노가다"는 막일이란 의미의 일본어다. 일본어 사용은 좋아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문장에서 어감을 살리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사용했다는 점을 밝히고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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