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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Feb 08. 2023

애가 타도록 맛있는 생선애 이야기

양뗀 없지만 유목민처럼 살고싶어 #3


 풀빌라에 도착하자마자 성미 급한 어둠이 성큼성큼 내려앉고 있었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볼 수 있었던 감포 앞바다를 직접 내 눈으로 보다! 아! 이럴 때 느끼는 감정을 행복이라고 하는구나!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눈 녹듯 흘러내리면서 행복이란 단어가 마음속에서 몇 차례 출렁였다. 누가 그랬던가! 동해바다엔 해질 무렵의 운치가 없다고! 물론 파주의 한강 하류에서 보던 서해의 석양과는 다르지만 나름 운치가 있었다. 석양 무렵이면 이미 오징어배들은 모든 조명을 밝히고 저마다의 간격을 유지하며 오징어들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석양 무렵의 아름다운 바다뷰에 감탄할 틈도 없이 인사와 함께 업무 회의가 시작되었다. 한 시간여의 회의가 끝나자마자 근처 횟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마다의 배꼽시계는 이미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음식을 유혹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양포라는 아주 작은 어촌 포구에 있는 횟집이었다. 고깃배가 들어오면 경매가 이루어지는 곳에 횟집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지정학적 위치만으로도 신선함은 이미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횟집 이름이 뭐였더라! 그렇게 맛있게 먹었는데 횟집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하지만 간판이 중요하진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맛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간판은 물론 내부의 모든 불도 꺼져 있었다. 수족관에도 어둠이 내려앉아서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살아있는 물고기들에게 미안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을 텐데! 식당문을 두드리자 사장님으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불을 켜고 나오신다.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빼꼭하게 그려진 몸배바지를 추켜 올리시며 손님을 맞이하는 할머니는 마른 몸매에 허리가 꼿꼿하셨다. 손님이 없어서 일찍 문을 닫은 거라면서 퉁명스럽고 떨떠름하게 맞아주신다. 그러시면서도 활짝 웃으신다. 순간 긴장했던 우리 일행의 표정들에도 미소가 살포시 피어난다. 혹시라도 오늘은 영업을 안 한다든가, 이미 끝났으니 다른 날 오라든가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손님인 우리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늦은(?) 시간에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며 상당히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우스우면서도 재미난 풍경이 내 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면서도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면접 비슷한 상견례 자리에서 이렇게 웃어도 되는 걸까! 저녁 7시도 안 된 시간이었는데 늦은 시간이라니! 아무튼 우리는 방으로 들어가 방석을 깔고 앉았다. 상당히 미안한 표정을 연출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할머니 저희 늘 먹던 회로 주세요. 애도 많이 주시구요." 라며 대표님이 주문을 하셨다. 앉자마자 할머니 사장님은 불투명한 하얀 비닐을 테이블 위에 깔라며 가져다주신다. 손님인 우리가 비닐 테이블보를 깔자 삶은 땅콩과 회무침과 생선조림을 먼저 내오신다. 삶은 땅콩은 처음 먹어보는데 순식간에 한 접시를 다 까먹고 또 시킬 정도로 맛있었다. 대표님이 직접 소맥을 만들어서 돌렸다. 건배 소리와 동시에 유리잔 4개가 부딪히며 짧고 강렬한 신음 소리를 냈다. 입속으로 들어간 소맥은 순식간에 기도를 타고 위의 벽들을 적시고 있었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온몸이 흐느적거림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든다. 면접부터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본능에서였다. 만나자마자 취한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된다. 맛있는 회가 나와서 술이 몇 잔 더 돌다 보면 취기가 금방 올라오기 때문이다.


 주문한 회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대표님은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이곳 횟집은 물론이고 어촌 생활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다. 비수기의 어촌 식당들은 저녁에는 일찍 문 닫는 곳이 많다고 한다. 겨울철이라서 손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찍 어두워져서 저녁 7시만 되면 시골은 마치 한밤중 같은 분위기라는 것이다. 없는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느니 불 끄고 들어가 쉬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 대부분의 식당들은 겨울철 저녁에는 영업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일찍 끝낸다. 서울에서는 불야성을 이루는 저녁 8시가 이곳에서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왼쪽이 쥐치애, 오른쪽이 쥐치와 도다리회


 한참 대화를 이어나가며 삶은 땅콩을 안주삼아 건배를 몇 차례 하다 보니 주문한 회가 나왔다. 쥐치와 도다리회는 알겠는데 쥐치애는 처음이었다. 홍어애는 먹어보았는데 쥐치애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생선의 애란 간을 말한다고 한다. 생긴 모습과는 달리 얼마나 부드럽고 맛이 있던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기름장에 고추냉이를 살짝 풀어서 찍어 먹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고소하고 담백한 풍미는 입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씹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듯했다. 한마디로 천상의 맛있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그 어떤 회나 음식보다 맛있었다. 세상에! 어쩌면 이토록 애가 타도록 맛있는 음식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미슐랭 별이 하나나 두 개인 레스토랑에서도 맛보지 못한 맛이었다. 쥐치와 도다리회도 접시 위에 그 흔한 무나 얼음 장식 하나 없이 나왔다. 제법 두툼하게 썰어서 나온 회는 쫀득쫀득한 식감에 찰지고 맛있었다. 비록 쥐치애의 출중한 맛 때문에 맛은 아주 많이 반감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어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입안부터 호강하니 행복이라는 단어가 저절로 눈앞에 아른거렸다. 물론 나른한 여독과 알딸딸한 소맥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소환하는데 일조하기는 했지만.




 감포라는 작은 어촌 마을은 동해안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 지도를 보면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하는 포항 호미곶이나 구룡포에서 약 30분 정도 거리다. 내가 지내면서 일하는 풀빌라가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상으로는 포항시지만 감포는 경주시에 속한다. 경주와 포항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덕분에 두 도시를 야금야금 섭렵해 나가는 중이다.  


 사실 경상도에서 사는 일 익숙지 않지만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다. 지난해 여름 대구에서 3개월 살기를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한국으로 들어오자마자 후배의 달콤한 꼬임(?)에 빠져 대구로 달려갔다. 보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 보물은 다름 아닌 500만 원짜리 로또였다. 노느니 한국 생활에 적응도 할 겸 영업이나 배우라는 것이었다. 말은 아주 그럴듯했다. 월급도 주지 않는데 백여 명 이상이 모여 팀을 이루었다. 길거리에서 각티슈와 물티슈를 뿌려가면서 아파트 한 채를 팔면 수수료로 받는 돈이 500만 원이었다. 쉬워 보였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3개월 동안 대구의 혹독한 여름과 싸운 대가는 마이너스 1000만 원이었다. 단 한 채의 아파트도 팔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내 돈만 축내고 온 것이다. 그것도 천만 원씩이나. 쉽게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희망에 씀씀이가 컸던 것이 문제였다.


 런던에서 23년을 살다 보니 영국보다는 오히려 한국이 낯설게 느껴지는 일이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낯설기도 하고 신기한 장면 중의 하나가 바로 길거리에서 집을 사고파일이었다. 거리를 지나다 아파트 분양 홍보를 보고 모델하우스에 찾아가 계약까지 하는 일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장면이다. 그 이상한 일을 대구에서 3개월 동안이나 직접 체험한 것이다. 덕분에 길거리 영업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이제 영업이라면 어떤 분야든 못할 게 없을 거 같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길거리에서 아파트도 팔아본 사람이 뭔들 팔지 못할까! 물론 이 또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긴 하지만.


 한국에 오자마자 대구에서 3개월, 파주에서 3개월을 살아 보았다. 이제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감포에서 3개월 살기를 해보려고 내려왔다. 풀빌라에서 주말을 끼고 1주일에 4일 일한다. 몸을 쓰는 일을 하다 보면 우울과 불면을 희석시킬 수 있으리라는 마음은 여전히 확고하다. 행복해지려면 우울과 불면을 떨쳐내야 한다. 우울과 불면은 행복이란 단어와 손을 잡거나 친하게 지낼 수 없는 사이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멋진 바다를 감상하면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게 될 것이다. 행복해지는 일도 약간의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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