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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Nov 22. 2020

겁과 교훈

어렸을 적 아버지와 서해바다에 갔을 때였다. 차를 타고 달렸다. 차창너머로 바람이 흘러들어 또 다른 창으로 쉴새 없이 빠져나갔다. 나는 팔을 내밀어 바람을 만졌다. 아버지는 조용히 위험한 짓일랑 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나를 말렸고, 나는 당신의 말에 살며시 팔을 집어 넣었다. 그렇게 서너시간의 여정 끝에 바다에 내렸을 때, 저 멀리 뻘이 펼쳐져 있었다.


당신은 트렁크에서 소금과 삽을 꺼내더니, 내게 장화를 신겼다. 나는 그제야 우리가 무얼 하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맛조개 잡으러 가는거야."


나는 물었다.


"맛조개가 뭐에요?"


"죽합"


"죽합은 뭔데요?"


내가 당신에게 쉬운 단어를 묻자, 당신은 어려운 더 어려운 단어로 설명했다. 그게 아버지의 설명 방식이었다. 당신은 설명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내가 되물을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 뒤에 당신의 추가 설명이 있을 것이었다.


"조개야. 조개. 대나무를 닮은 조개라서, 대나무 죽에 조개 합."


"조개가 어떻게 대나무를 닮았어요?"


"그걸 보여주려고 지금 이렇게 너랑 가고 있잖니."


그렇게 우리는 장화를 갖춰 신고, 아버지는 삽을, 나는 양동이와 그 안에 소금주머니를 넣고서 바다로 나갔다. 넓고 긴 뻘이 펼쳐져 있었고, 게들이 구멍을 파기 위해 만들어 놓은 모래 알 공들이 알알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이 그저 신기해서 이리 저리 뛰어다녔다. 아버지는 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않고 저 멀리 저벅 저벅 먼저 걸어가고 있었다. 결국 내가 당신을 따라 잡을 것을 알았다는 듯이. 그러더니 당신은 삽으로 뻘을 한삽을 펐다. 그러면서 판 자리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얼른 당신 곁으로 달려갔고, 그곳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자, 잘 보거라. 양동이에 있는 소금을 좀 다오."


그렇게 말하자 나는 얼른 소금을 아버지에게 드렸다. 그러더니 당신은 그 구멍에 소금을 조금 뿌렸다. 그러자 갑자기 길죽하게 생긴게 쏙 하고 올라왔다.


"와, 아빠 뭐가 나왔어요!"


아버지는 맛조개가 도망갈 새라, 나를 조용히 시켰다. 솔직히 지금도 조개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당신은 집중하기 위해서 그랬는지, 내게 주의를 주더니, 손으로 휙 잡아서 그것을 꺼냈다. 그러면서 그것을 내 손에 올려 주었다. 나는 무서웠지만, 그래도 그것을 받아서 들여다 본다.


"길죽하고 단단하게 생겼지? 그래도 껍질은 생각보다 딱딱하진 않아. 이렇게 생겨서 대나무를 닮았다고 말하는 거란다. 이제 너도 한번 해볼래?"


맛조개의 모습은 생각보다 기이했지만, 그것을 잡아 빼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흥미로웠기에, 나는 그것을 얼른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도 얼른 당신의 삽을 낚아채서는 십미터 정도 옆에서 삽으로 뻘을 파냈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구멍이 뻥하고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파자마자 구멍을 발견했네. 운이 좋구나. 자 이제 소금을 넣어보렴."


당신의 말에 나도 얼른 소금을 넣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조개가 제 주둥이를 밖으로 들이 밀었고, 나는 성급하게 그것을 휙하고 잡았다. 그러나 너무 끝을 잡았던 나머지, 잘 빠지지 않았고, 미끈한 주둥이는 내 손을 빠져나가, 다시 구멍 안으로 도로 들어가 버렸다.


"너무 성급했구나 아래부터 잡았어야지."


나는 아쉬워서 다시 그 구멍에 소금을 뿌렸다.


"틀렸어. 다시는 나오지 않을게다. 교훈을 얻은게지."


"교훈이요?"


"그래 교훈. 고개를 밖으로 내밀면 제 몸이 안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아버린거야.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가버렸을거다."


"그런데, 얘네들 왜 소금을 뿌리면 밖으로 나오는거에요? 소금이 좋아서?"


"아니 오히려 그 반대란다. 소금을 뿌리면 갑자기 삼투압이 높아져서, 괴롭게 되거든. 그래서 나오는거야."


"그런데 왜 다시 뿌리면 안나오는거에요?"


"소금 때문에 괴로운 것보다, 밖에 나가서 죽는게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그게 교훈이라는 거에요?"


"그래. 그걸 알아서 다시는 죽을만한 짓을 하지 않게 되겠지. 이제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보는게 더 좋겠구나."


그렇게 다시 그 주변에 팔만한 곳을 찾다가 나는 다시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런데요, 왜 다른 곳에 있는 애들은 옆에 애가 잡아 뽑히는 걸 보면서도 왜 계속해서 나오는 거에요? 방금 도망간 애가 알려주지 않을까요?"


내가 순진하게 이렇게 묻자 아버지는 그날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그게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이란다. 사람들은 실패를 통해서 교훈을 얻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실패를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삼기도 하니까."


"그럼 인간이 더 똑똑한거네요?"


"글쎄, 꼭 그렇지는 않을지 모르지. 사람들은 가끔 쓸데없이 다른 사람의 실패를 보고 겁을 먹기도 하니까. 그래서 종종 해보지도 않은 일들을 지레 소문만 듣고서 망설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불쑥 고개를 내밀다 맛조개처럼 죽어버릴 수도 있잖아요."


"너는, 나이도 어린게 늙은이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당신은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한번 헝클어 버리더니, 다시 한 삽을 떴다. 그러더니 내게 다시 한번 도전할 기회를 주었고, 나는 죽합을 쑥하고 뽑아냈다.


"네가 교훈을 얻었구나." 


그렇게 당신은 그날에 두번째 미소를 내게 보냈고, 나는 그것에 뿌듯해졌다. 그렇게 몇시간 가량을 뻘에서 당신과 시간을 보냈고, 꽤 많은 양의 조개를 캐냈다. 우리는 엄마에게 전화로 자랑하며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빠, 근데요, 내가 조개를 잡을 줄 알게 된 것도 교훈이고, 조개가 한번 우리 손에서 도망간 뒤에 다시 나오지 않는 것도 교훈이에요?"


"글쎄,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니?"


"근데, 저도 아빠한테 혼나면 방에 들어가서 절대 안나오잖아요. 그것도 교훈이에요?"


"재미있는 비유구나. 글쎄. 그때 무언가를 배워야 교훈이 아닐까?"


"그러면 도망가고 다시 오지 않는 조개는 교훈을 얻지 않았을거에요."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갑자기 껄껄 거리면서 웃었다. 세번째 웃음이었다.


"나한테 혼나는 너도 무언가 배우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겁이나서 도망간거잖아요. 겁이 나서 도망가고 그래서 다시 나오지 않는건 뭔가를 배우고 깨닫는거랑 다른거 같아서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이후 나는 겁과 교훈을 구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겁을 가진다는 것은 그저 동물적인 것이다. 그것은 지성이 아니라 피부가 알고 있는 것이고, 같은 자극을 회피하도록 한다. 생존을 위한 최초의 본능. 고통. 그리고 공포. 그것으로부터 달아나라는 내 몸의 명령. 그것은 오히려 교훈을 방해한다. 과거를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흘러. 정말로 겁과 교훈이 다른 것인지를 되묻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결국 동물에 불과한 인간은 겁과 공포로부터 교훈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것을 다스리려 했다. 패배의 쓰라림.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공포감.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배우는 것이고, 늘 교훈을 얻어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여전히 근원적인 고통과 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가끔은 그저 겁인 것을 교훈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서툰 마음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드러내고 싶다. 그것은 마치 저 뻘 깊숙한 곳에 숨겨놓은 내 마음에 뿌려진 소금처럼. 답답하고 괴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내가 하려는 지싱 무엇인줄도 모르는 채 밖으로 고개를 쳐들었을 때, 그제야 알게 되는 죄책감과 패배감과 같은 것들. 그래서 나는 겁에 질리고 질려 다시 또 저 뻘 안으로 내 마음을 파묻어 버린다. 다시는, 절대는, 결단코 내 진심이랄 것들을 내보이지 않으리라 그렇게 선언하면서, 그것을 교훈이라 믿으면서, 그렇게 겁에 질려 저 안으로 파고든다.


그것은 그저 겁인가? 그것은 교훈인가? 우리는 그 안에서 무언가를 깨달아야 하는가, 아니면 담대하게 겁을 잊어내야 하는가. 그 안에서 세간에 뜬소문들. 내 마음을 이래라 저래라 하는 뜬 소문들. 그것에 내 겁을 부추기고, 혹은 택도 없는 용기를 부추기고, 우리는 무엇을 교훈삼아야 하는지, 어떤 겁을 이겨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은 저 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반겨주던 어머니. 아버지는 죽합으로 가득한 양동이를 어머니에게 드리더니, 나더러 함께 씻자고 말씀하셨다. 안락하던 내 세계 안에서, 나는 언제부터 중요한 마음을 가졌고, 또 언제부터 죄를 지었고, 또 언제부터 그리 겁쟁이가 되었던가. 



-타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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