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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이 아빠 Nov 22. 2023

35년 만에 되찾은 진짜 이름

제인도우로 불렸던 한인여성, 김정은의 이야기

2023년 10월 23일, 미국의 조지아주 수사국 (GBI)은 35년 전, 1988년 2월 14일, 젠킨스 카운티의 밀렌 마을 쓰레기 수거함에서 발견됐던 신원미상의 동양계 여성 변사체의 주인이, 한인 여성, 김정은이라고 발표했다. GBI는 DNA 분석 기술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그동안 주기적으로 미제 사건들의 DNA 증거들을 재분석해 왔으며, 이번에 오스람사에 제인 도우의 DNA 분석을 의뢰했다. (여기서 제인 도우란 신원미상의 여자를 부르는 영어 이름으로 한국말로 하면 아무개양, 홍길동 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같은 방식으로 신원미상의 남자는 존 도우라고 한다. 그러므로 혹시 한국성이 도씨인 경우는 절대 영어 이름을 제인이나 존으로 지을 경우, 곤란을 일을 당할 수 있으니, 반드시 피해야 한다)


2019년에 설립된 텍사스의 오스람사는 유전자 추출 및 가계 유전학 배열 기술을 이용해, 그녀의 시신과 함께 발견됐던 침대보에서 추출한 극소량의 DNA를 가지고 염기서열을 완성했다. 그리고 가계, 즉 집안의 유사 유전자 정보를 가진 친척을 찾아내어, 마침내 35년 동안 감춰져 있던, 김씨의 신원을 밝혀내었다. 그동안 애타게 김정은씨의 행방을 찾던, 가족들은 DNA를 통해 해외의 한인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가족들은 325KAMRA이란 한인 입양아 찾기 단체의 도움을 받아, 2년 전 그들의 DNA를 제출해 놓았었고, 그 결과, 올해 오스람의 유사 유전자 정보 조회 과정에서 직계 형제를 찾을 수 있었다.


김정은씨는 1961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입국 기록에 따르면, 19세이던 1981년, 미 육군기지, 포트 스튜어트로 귀환하는 미군 병사와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아마도, 평택의 주한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에서 만난 미군과 결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으로 온 그들은 조지아주 부대 인근의 하이네스빌에서 사망 전인 1988년까지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살던 곳에서 북쪽으로 약 12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신원미상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그럼, 김씨가 발견됐던 1988년 2월의 조지아주로 돌아가 보자.


자료원: 도아의 사건파일      https://www.youtube.com/watch?v=wTrMtVkAxgU&t=304s

자료원: 도아의 사건파일

1988년 2월 12일, 조지아주 밀렌시의 올드 퍼킨스와 카이저 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아이 두 명이 놀고 있었다. 그때, 갈색 차 한 대가, 인근의 대형 쓰레기통, 덤스터 옆에 차를 세웠다. 아이들은, 차에서 두 명의 중년 남성이 내렸는데, 그들이 뭔가를 덤스터에 던져 버리고는 급히 차를 몰고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이틀 후인 1988년 2월 14일 일요일, 오후 3시가 넘어선 시각, 여자친구와 차로 올드 퍼킨스 길을 지나던 한 남성이 덤스터 옆에 차를 세웠다. 그는 가끔 그곳을 지날 때 덤스터에서 빈캔을 주워가곤 했다. 그 날도 빈 캔을 찾던 중, 버려진 더플백 가방을 발견했다. 그는 가방 안에 혹시 쓸만한 물건이 있나 궁금했다. 품 안의 작은 칼을 꺼내, 위에 묶인 줄을 끊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쓰레기 봉투와 덕트테이프로 감싼 사람의 시신 같은 물체가 들어 있었다. 그는 놀라 여자친구가 있는 차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자신이 본게 맞는지 확인하려고 친구를 데리고 돌아왔다. 확인해 보니 여성의 시신이었다. 


현장에 출동한 GBI는 현장을 확인한 후, 덤스터에서 더플백 형태의 갈색 가방을 끄집어냈다. 지퍼를 열자, 쓰레기 봉투로 둘러싼 벗은 여성의 시신이 보였다. 시신은 이미 부폐가 상당히 진전된 듯, 악취가 상당했다. 부검 결과, 시신은 죽은 지 4~7일 정도 된 것으로 보였다. 발견된 여성은 동아시아계 여성, 나이는 16~25세로 추정했다. 키는 대략 165센티미터 정도에 체중은 61~65킬로그램 정도로 측정됐다. 그녀의 몸에 특별한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사망 당시 건강했던 것으로 보였고, 마약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또한 신체 어디에도 성적인 학대나 성폭행을 당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사망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고, 질식사로 추정하였다. 가방 안에는 꽃문양의 베개와 이와 어울리는 한국산 침대보가 함께 발견됐다. 디자인은 젊은 성인이 자주 사용할 만한 스타일이었는데, 특히 베개는 호텔보다는 가정집에서 장식용으로 어울릴 것 같았다. 발은 묶여 있는 상태였다. GBI는 확보된 지문과 치아 기록 자료를 실종자 데이터베이스에 검색했지만, 결과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GBI는 신원을 밝히기 위한 전단 제작을 위해 여성의 얼굴을 스케치하였다. 하지만 시신이 이미 많이 부패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망 전 얼굴을 제대로 그리지는 못했다. 몽타주를 보고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신이 발견된 밀렌시는 조용한 시골 도시였다. 신원미상의 여성 시신이 발견됐다는 뉴스는 곧바로 마을 전체로 퍼져나갔다. 주민들은 이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외부 사람이 저지른 일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찰의 생각은 약간 달랐다. 시신이 발견된 덤스터는 도로에서 나와 비포장도로끼리 연결되는 코너에 위치하고 있었다. 도로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아, 외부 사람들 사람들은 덤스터가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즉, 이곳에 시신을 유기했다는 것은 이 지역을 잘 알거나, 이 지역에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남자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고, 마을 주민인지 아닌지도 답할 수 없었다. 경찰은 사건 해결을 위해 우선 사망자의 신원을 밝혀야 했다. 하지만 그 어디서도, 동양계 여성의 실종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은 사망자가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이 아니라면, 스파나 마사지샵에서 일하는 여성이 아닌가 조사했다. 당시 인근 도시에 아시아 스타일의 스파들이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 여성도 그들 중 한 명이거나 또는 그곳에 일을 하러 왔거나, 억지로 끌려왔다가 변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했다. 또한, 가방 안에서 나온 베개와 침대보는 마사지 샵에서 불법 성거래를 할 때도 사용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당시 일부 마사지 샵의 업주들이 여종업원들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기도 하였다. 경찰은 인근 지역의 스파와 마사지샵들을 수사하였지만, 불법 영업을 해오던 마사지샵들은 경찰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다. 어디에서도 종업원이 실종되거나 사라졌다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변사자의 신원을 밝히지 못한 경찰은 사건 수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간혹 제보는 들어왔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없거나, 신뢰하기 어려운 제보들로 수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보 중에는 한 남자가 보험금을 목적으로 아이들을 살해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살해된 후, 그의 아시아계 여자 친구 또한 종적을 감췄다는 내용이었다. 제보자는 몽타주에 나온 여성의 얼굴과 침구가 비슷하다고 말했지만, 확인 결과 이 사건과는 연관이 없었다. 또 다른 제보는 최근, 2월 9일, 플로리다에서 밀렌으로 이사 온 23세의 쟈니 영이라는 남자가 그 신원미상의 푸에르토리코 여성을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제보자와 그 말을 했다는 여성을 만나 내용을 확인했지만, 그녀는 쟈니에 대해 그런 말을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진술 외에는 아무런 단서도 물증도 확인할 수 없었다. 경찰은 제보에 대한 수사를 종결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상황을 감안할 때, 당시에 활동했던 연쇄 살인마들인, 레리 디웨인 홀, 케이스 헌터 제스퍼슨 또는 사무엘 리틀이 이 여성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쇄 살인마들이 살인을 저지른 지역들은 각각 북동부, 남서부, 중부 및 캐나다 등으로, 남동부인 조지아주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렇게 경찰의 수사는 변사자의 신원조차 확인하지 못한채, Jane Doe 또는 밀렌에서 발견됐다고 해서, Jane Millen Doe라는 이름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GBI는 DNA 분석 기술이 계속 발전함에 따라, 꾸준히 미제 사건들의 DNA 증거들을 재분석해 나갔다. 그렇게 수십 년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고, 결국 2023년 10월 23일, 김정은씨는 제인 도우라는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신원과 이름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GBI는 김정은씨의 언니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고, 한국 정부에도 수사 협조를 요청하였다. GBI는 이제 신원이 밝혀졌으니, 그녀의 죽음에 관한 미스테리를 풀어, 정의를 실현하고, 그녀의 가족들이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아무쪼록 김정은씨가 35년 만에 제인 도우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찾았듯이, 자신의 억울함도 풀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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