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중, 고교 학생 시절, 나의 도시락 반찬은 주로 김치나 오이지무침이었다. 7~80년대 그 시절이 다 그렇듯이 친구들도 대부분 나와 비슷한 반찬들이었고, 간혹 소시지나 계란 반찬을 싸온 친구는 다른 친구들의 젓가락 표적이 되곤 했다. 반찬에 대한 불평은 없었지만, 편식이 없던 나마저도 오이지무침만은 지겨웠던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거의 손을 대지 않는 반찬이 되어 버렸다.
지난번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옛날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찬들 중 오이지무침이 눈에 띄었고, 젓가락으로 오이지무침 한 개를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내가 해줄 때는 한 번을 먹지 않더니, 어머님의 오이지무침에는 손이 가요?" 하며 의아해했다. 농담 삼아 과거 도시락 반찬 이야기를 꺼냈는데, 이때 형의 한마디가 가족 모두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난 어머니가 매일 도시락 밥 위에 계란 올려주고 주로 소시지나 햄을 반찬으로 싸 주셨는데"
계란이나 소시지는 당시 형편상 부잣집 아이들이나 싸오던 반찬들이었고, 나는 별로 먹어본 기억이 없는 반찬들이었다. 그런 반찬들을 어머니는 자주 형에게 싸주셨다니... 가족 모두 어머니에게 시선이 쏠렸다.
"넌 뭘 싸줘도 잘 먹어서 고마웠다. 근데 네 형은 그렇게 싸주지 않으면 먹지를 않으니..." 어머니는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당황해하며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셨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나보다는 늘 형이나 동생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셨다. 한국으로 전화를 드리면 형이나 동생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다만 좀 더 언급하는 자식이 바뀌곤 했다. 바로 그 자식에게 현재 더 문제가 있거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마음과 관심이 그곳에 있으신 것이다. 대신 나에게는 전화 말미에 "캐나다에서 잘 잘아줘서 고맙다. 내가 너는 걱정 안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나이를 먹고 자식을 키워 보니 어머니의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어쩔 수 없이 어느 자식에게 마음이 더 쓰이는 것을...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는 것을...
형에게는 계란과 소시지 반찬을 싸주며, 형편상 나에게는 김치와 오이지무침을 싸주실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효도는 둘째치고 걱정 끼치지 않고 잘 살아주는 건만으로도 감사해하는 그 마음을
나이를 먹어서 옛날 음식이 그리운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사랑이 그리운 것인지, 오이지무침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