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92일간 276끼를 준비할 수 있을까?
아내가 친정 일로 갑작스럽게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그것도 3개월이나!!!
체력적으로 약한 아내를 여러모로 도우며 살았지만, 음식은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는 내가 대학교 3학년과 고1 두 딸의 아침, 점심, 간식 및 저녁을 해결할 수 있을까? 아내는 그런 나와 아이들을 걱정했지만, 나는 걱정 말라고 아내를 안심시켰다. 문득, 2 주전 내가 뜬금없이 총각김치와 겉절이를 담가 모두를 놀라게 했던 일이, 우연한 객기가 아니라 앞으로의 3개월을 대비한 하늘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 음식의 종류, 만드는 방법, 인스턴트 도시락, 간식 등에 대해 고민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특히 음식들은 해 먹을 것인지 사 먹을 것인지로 구분하고 재료 준비 및 소요시간, 레시피 등을 정리했다.
아내는 내가 만든 점심 메뉴와 간식 표 그리고 저녁 메뉴와 레시피를 보더니 황당해하면서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비록 음식을 인터넷으로 배우고 있지만 총각김치와 겉절이를 통해 보여준 나의 잠재력을 인정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점심은 냉장고에 붙여 놓은 표 순서대로 준비될 것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고 아이들은 이에 동의했다. 대신 저녁은 내가 준 메뉴판을 보고 미리 논의하여 선택하기로 했다. 또한 내가 음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큰 애는 세탁을 둘째는 청소를 맡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아내는 우리를 믿고 10월 30일 한국으로 떠났다. 아내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당장 오늘 저녁부터 뭘 해 먹어야 하나 고민이다.
메뉴와 레시피가 정리된 종이를 들고 슈퍼를 방황하기 시작했다. 막상 무얼 사야 할지 막막했고 살까 말까 재료들을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1시간 후 결국, 첫날 저녁 메뉴는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는 삼겹살을 선택했다. 다행히도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다음 날부터는 퇴근해 집에 오면 메뉴를 고민할 시간이 없다. 늦어도 1시간 내로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먹고 싶은 점심메뉴도 고르지 못하는 내가, 해보지도 못한 저녁 메뉴를 앞으로 아흔한번 더 고민해야 한다. 첫날의 하루가 너무 힘들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