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을 조심하고, 군중을 피하라”
12월 초 어느날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도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주변을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유명한 프랑스 시위의 상징인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였다. 나는 일단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지하철역으로 갔지만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었다는 안내 표지판을 보고 되돌아왔다.
학교를 가야겠다는 일념하에 길 위의 공유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갔다. 가는 도중에 차 한 대가 길거리에서 불타고 있는 것을 보았고 오늘 무슨 테러가 일어난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학교 수업에 학생들이 별로 없는 것을 보니 다른 지역의 지하철역들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옆에 앉아있는 프랑스 친구에게 물어보니 오늘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선언 비슷한 발표를 한 날이라고 했고 오늘 마비된 교통은 프랑스 국유 철도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수업이 끝나는 길에 집에 돌아가는데 전철의 창밖으로 수많은 노란 조끼를 입은 인파가 보였다. 나는 정책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그들과 이 상황이 너무 궁금하여 지하철에서 내려 노란조끼 시위대로 뛰어 들어갔다. 미얀마에서도 그랬지만 위험해도 호기심이 있다면 물불을 안가리는 성격이 또 나와버렸다.
막상 가보니 노란조끼를 입은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분들이 마크롱의 얼굴 사진에 낙서를 한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다가가 왜 이렇게 시위를 하시냐고 물어보았고 그분들은 나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프랑스 국유 철도 종사자인데 마크롱은 우리의 은퇴를 늦추려고 하고 있다. 나는 집에서 아들 딸 그리고 손주 손녀와 쉬면서 일생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마크롱은 바보 멍충이이다!!!”
연금개혁과 프랑스 국유 철도 노조와 무슨 상관인지 싶어 집에 와서 프랑스 연금제도와 마크롱의 개혁방안에 대해 알아보았다.
프랑스에는 ‘특수 업종 연금제도’라는 것이 있다. 철도, 전력, 천연가스 등 특정산업 분야 노동자들에게 일반 국민과 다르게 적용되는 연금제도이다. 이 연금제도 수혜자들은 일반 시민의 퇴직 연령보다 7년 빠른 55세 정도에 은퇴하고 연금을 수령한다. 그들이 일찍 은퇴하는 이유는 몇십 년 전에는 이 업종들의 업무 환경이 고되고 특히 철도 같은 경우 먼지를 많이 마셔야 했기 때문에 은퇴 나이가 빨랐었다.
하지만 환경은 많이 개선되었고 더이상 특수 업종 연금제도의 수혜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이 생겼다. 그래서 마크롱은 특수 업종 연금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하였던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은퇴를 앞둔 프랑스 국유 철도 종사자들이 다 시위로 거리에 나오는 바람에 교통이 마비가 되었던 것이었다.
또한 프랑스의 연금제도는 42개 정도로 세분되어있는데 마크롱이 이 연금제도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퇴직연령을 현 62세에서 2년 늦춘 64세로 하겠다고 하면서 전 국민이 다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아마 프랑스 혁명 이후 이렇게 전 국민들이 단결을 한 시위가 과연 있었을까 하는 정도의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후 한참 동안 교통 파업 때문에 학교에 가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프랑스 시민들 그 누구도 교통에 대한 불편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프랑스의 모든 사람이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것 같았다.
프랑스 문화에서 프랑스 국민들은 항상 은퇴를 꿈꾸면서 산다. 은퇴해서 안정적인 연금 소득으로 여행도 다니고 가족들과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삶의 목표이다. 그래서 연금개혁에 대한 반발이 상당히 강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자료를 보면 프랑스의 일반 퇴직연령은 62세로 다른 유럽 국가인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덴마크가 모두 67세로 프랑스보다 평균 5세가 더 높다. 프랑스는 사회주의의 영향과 강한 노조 때문에 은퇴연령이 원래 낮았다.
마크롱은 이에 의연하게 대처한다. 절대 물러섬이 없다고 말하면서 국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하였다. 프랑스 연금제도는 2030년부터 매년 13조 5000억원 규모의 적자가 예상될 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렸고 미래의 프랑스 미래세대를 위해 그리고 프랑스의 생존을 위해 연금개혁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설득했다. 그리고 연금개혁의 적자를 메꾸기 위해 예산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연금개혁을 통해 아낀 금액을 프랑스의 환경, 교육, 미래 산업 등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2019년 12월에 제가 처음 마크롱의 연금발표와 국민들의 총파업을 겪었고 거의 3년 뒤 다시 마크롱의 연금개혁 최종 초안이 발표되었다. 3년간 국민들과 소통하며 설득하며 합의점을 계속 찾았던 것이었다.
결국 마크롱은 국민들에게 당근책을 제시했다. 최저 연금을 10% 올려 월 1015유로 약 135만원이었던 최저연금을 월 1200유로 약 160만원으로 통 크게 올렸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 출산휴가 또는 육아휴직 기간에도 연금에 기여한 기간으로 포함시키고 장애나 일하면서 다친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쉬는 기간이나 치료 기간을 연금 기여 기간에 포함시켜 주었다.
하지만 마크롱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23년 1월 다시 한번 백만명이 파업을 하며 프랑스의 교통이 마비되었다. 하지만 마크롱은 연금개혁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시위는 점점 소강상태가 되었다. 이미 마크롱의 연금개혁을 이해하는 프랑스 국민들이 생겨났다. 3년 전에는 100%가 반대했다면 지금은 거의 찬성이 30~40%에 육박하고 있다.
이제 어느정도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이 생겼다. 마크롱은 만약 연금개혁법이 통과가 되지 않는다면 총리 책임 아래 의회 표결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헌법 제49조 제3항을 발동하겠다고 하였다. 이 법은 프랑스의 긴급 상황 시 발동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마크롱은 연금개혁이 프랑스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긴급 상황으로 본 것이었다.
이제 프랑스는 연내 연금개혁을 통과시킬 것이 유력하다. 나는 프랑스에서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 전 국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이는 리더는 처음 보았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는 옳음을 위해 국민들과 맞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는 대중영합주의 정책이 자주 나타나곤 하는데 이러한 리더십은 결국 나라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나는 마크롱의 이러한 리더십을 우리나라의 정치 리더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연금개혁은 이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연금개혁이 성공하려면 마크롱 같은 뚝심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과 설득을 잊어서는 안된다. 뚝심만 있고 소통과 설득이 없다면 독재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